'친노' 대 '반노'의 장미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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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 대 '반노'의 장미전쟁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1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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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한 장만이 달랑 남아 있다. 열한 장의 달력 속에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러면서 한 해를 되돌아본다. 계절마다 계절다웠다. 봄은 싱그러웠으며 여름은 화끈했다. 가을은 몹시 길고 청명하였으니 단풍이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가뭄도 홍수도 없었으며 그 흔한 태풍도 모두 비켜나갔다. 올해와 같은 날씨는 흔치 않은 자연의 축복이었다.

그러나 인간세에 몰아친 태풍은 좀처럼 보기 힘든 특급이었다. 올해처럼 우리 사회가 갈등으로 날카롭게 대립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자 총선에서 여당이 소수당에서 다수당으로 역전하였다. 그러자 헌재는 탄핵을 기각했다. 행정수도이전을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하여 야당 손을 들어주어 이슈공방에서 여야가 서로 한방씩 크게 주고받았다.

무엇보다도 이른바 '4대 개혁법안(국가보안법·과거사규명법·사립학교법·언론개혁법)'을 둘러싸고 여야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양극화되어 사생결단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중심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캐릭터에 대한 애증, 다시 말해 '친노'냐 '반노'냐의 선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현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계층들을 한칼로 양분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친노'와 '반노'로 단순하게 구분한다면, 이들이 갈등하는 핵심 원인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논란이다. 분열되고 산산조각이 난 20세기 우리역사를 '친노'는 1930년대부터 반성하자고 주장하고 '반노'는 1950년의 역사에서 뒤틀렸다고 주장한다.

일제는 1930년대부터 식민지 관리를 조선인에게 맡기는 분할지배 전략을 선택하여 너무나 많은 조선인을 유혹하거나 변절시켰다. 그리하여 우리가 인정하고 싶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조선인들이 식민독재에 부역했다. 그러한 친일협력자들이 지금까지 남한 사회에서 기득권을 움켜잡고 있다.

1930년대는 이처럼 아주 고통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어떤 기록에서도 입증될 수 없는 저항의 신화가 흠뻑 젖어 있기도 했다. 조선인 전체에게 공산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희생은 민족주의자들이 이따금 행한 폭탄투척보다 훨씬 더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고문을 당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은 초췌해 보였으나 일본을 향한 그들의 단호하고 엄격한 태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

해방 뒤 미국은 남한을 지배하면서 반공을 외치는 자면 과거의 어떠한 죄악도 묻지 않았다. 남한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익으로 돌아선 것은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친일 협력자들이 설치는 것에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의 술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지속적으로 환기하는 반일애국의 기억 때문에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친노'는 그때의 역사를 규명하고 일제 잔재인 국가보안법을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당시 세대들은 애간장을 쥐어짤 악몽을 겪었다. 그런 경험을 한 세대들에게는 공산주의자들이 힘을 구축하면 민주주의는 붕괴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히틀러가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나찌즘으로 이행한 것처럼 공산주의를 막을 수 있다면 파시즘이 권력을 장악해도 용인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들은 자본주의식 경제성장에 자신감이 충만해 있어 도덕적 가치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시하고 있다. 그래서 '반노'는 어쩔 수 없이 굴욕했던 일제시대 역사를 규명하는 것 보다 공산주의 확산을 막을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우리의 현대사가 모든 경험, 모든 사건, 모든 사실, 모든 낱말이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개의 렌즈를 통해 굴절된 채 세계의 다른 어떤 국가보다 더 가혹하고 더 오래 지속된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겪고 있다. 우리가 냉전에서 연상하는 모든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분단들이야말로 '친노·반노'의 숨은 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 '반노' 진영에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언했다. 영국의 장미전쟁 그리고 미국의 남북전쟁이 그랬듯이 국가는 내란을 통하여 성숙한다고 한다. 누가 이길 것인가? 이 전쟁을 비켜나갈 정치적인 중간 노선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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