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010년 5월 대한민국이 슬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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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2010년 5월 대한민국이 슬픈 이유
  • 김기현
  • 승인 2010.05.25 16:3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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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가장 잔혹한 고문으로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속죄하고 있는 저 무고한 사람의 유령이 가득한 밤 말이지요.

대통령 각하, 정직하게 살아온 한 시민으로서 솟구치는 분노와 더불어 온몸으로 제가 이 진실을 외치는 것은 바로 당신을 향해서입니다. 저는 명예로운 당신이 진실을 알고도 외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는 독일의 간첩이라는 죄명을 받고 유배되어 있던 드레퓌스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 글을 일간지에 발표하고 나서 사법당국의 체포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 된다.

졸라의 이글은 1894년 유대인 출신 프랑스 육군 대위였던 드레퓌스가 군사기밀을 유출시킨 반역죄를 저질렀다며 종신형을 선고하고 악마섬으로 유배를 보낸, 일명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보유출 문건에 기재되어 있던 암호 ‘D'는 드레퓌스가 범인임을 확증해준다는 프랑스 사법당국의 주장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것이었지만, 프랑스인들의 반유대인 정서와 계속 날조된 당국의 거짓 증거로 인해 많은 프랑스 국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켜 버리고 만다.

곧이어 그 거짓 증거에 대한 수많은 반박이 제기되었고, 실제 간첩이 체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고한 죄명으로부터 벗어나기에는 10여년의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이 사건은 진실공방의 과정에서 수많은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체포되었으며, 프랑스 사회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나뉘는 심각한 분열을 낳기도 하였다.

결국 권력에 의해 자행된 거짓은 그 내용의 허무맹랑함에도 불구하고 사회구성원에 합리적 사고를 무력하게 만들만큼 파괴적인 것이며 또한, 사회의 혼란과 분열을 급속도로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0년 5월 천안함 사건을 마주하고서 이 ‘드레퓌스 사건’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무려 110여 년 전의 사건에서 느껴지는 이 데자뷰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이 땅의 권력도 110여 년 전 프랑스처럼 정직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심,

그래서 그들이 내세운 증거라는 것들이 국민들의 반북정서를 이용해 모두 날조된 것이라는 의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은 권력의 거짓과 속임수에 속아 넘어갈 것이라는 의심.

이런 의심은 결국 현실로 되고야 말 것이라는 의심.

주권자인 많은 국민들이 권력과 이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현실,

2010년 대한민국 5월이 슬픈 이유이다.

 

 

김기현(건치신문 논설위원, 건치 광전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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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5-28 11:02:27
편집 실수로 기사가 메인에서 없어졌네요. 곧 복구한다고 하네요.

정택수 2010-05-26 15:43:14
어쩜 이렇게 믿음가는 구석이라곤 하나두 없는지 모르겄습니다...

이금호 2010-05-26 12:22:34
보수단체 회원들이 이글을 보지 않기를.....

전민 2010-05-26 11:32:27
더 무섭고 암담한 일은 전쟁위기와 경제위기라는 직접적인 사건의 파장이 남북의 무한 군사대결을 배경으로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권은 눈 앞의 선거를 위해서라면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어떻게 되든 신경쓰지 않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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