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기대를 저버린 17대 첫 정기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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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기대를 저버린 17대 첫 정기국회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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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은 역시나 부질없는 헛된 것이었다.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남달랐다. 의회 권력이 교체되고, 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출한 것 뿐만 아니라,초선의원이 2/3를 차지할 만큼 전면적인 인물교체가 이루어진 지난 4월 총선은 한국 정치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선거였다. 연이은 선거를 통해 확인된 국민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요구를 더 이상 정치권이 외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7대 국회는 첫 정기국회부터 그러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오히려 최악의 정기국회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정기 국회 내내 정쟁은 과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았다. 소위 4대 개혁법안은 물론 여타의 민생, 개혁법안이 처리되지 못해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각종 개혁법안에 대한 정치적 입장을 떠나 17대 첫 정기국회는 예산심의와 입법이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예산 심의는 법정 처리 시한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졸속으로 진행되었고, 17대 국회에 제출된 916건의 법안 중 12월 7일까지 처리한 법안은 49개에 불과했다.

우선 과반의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이 49명의 미니 여당을 총선을 통해 87년 이후 처음으로 152명이라는 단독 과반수 여당으로 만들어 준 뜻은 개혁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였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이런 국민의 기대를 온전히 받아들일 능력도, 개혁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열린우리당은 문제를 한나라당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으나 이는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이 과반의 의석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개혁을 못한다면 도대체 더 무엇을 해달라는 말인가. 열린우리당은 정기국회 내내 갈팡질팡하며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였다. 한마디로 전략도, 정치력도, 끊임없이 제기된 내부 혼선을 수습할 지도력도 부재했다. 자멸한 셈이다. 이러다보니 이제 개혁의 의지마저 근본적으로 의심받는 형국에 이르렀다.

정기국회를 앞둔 시점에 이루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과거 청산,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은 그 내용의 정당성을 떠나, 여당이 입법적 차원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할 사안을 대통령이 언급함으로써 정국을 친노 반노의 구도로 만들어 정쟁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이해찬 총리의 국회 대정부 질의 담변은 한나라당의 지연전략에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되었다.

상호간 관련이 없는 법안을 소위 4대개혁법안이라하며 일괄처리 하겠다고 공언한 전략도 옳았는지 의문이다. 이런 전략은 오히려 야당과 보수세력에게 정치적 대립지점을 만들어 주고, 사안을 지나치게 정쟁화시킨 측면이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와 언론개혁법안은 그렇다 하더라고 대통령의 언급만 없었다면 과거사 청산법안의 경우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었고, 사학개혁법안의 경우도 수준의 문제이지 그 자체가 저지의 대상이 되기 어려운 사안이 아니었나 싶다.

4대 법안이 아니더라도 연기금의 90%를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주식투자가 허용되어있는 조건에서 사실상 상징적 의미밖에 없는 기금관리기본법안 처리에 매달려 정쟁의 대상을 제공하고 스스로 발목이 잡힌 대목은 정책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비롯된 전략적 오류라 아니할 수 없다.

한나라당과의 협상에만 매달리며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을 개혁의 우군으로 삼지 않은 것은 새로운 정치지형을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한 명백한 전략적 오류이며, 정치력 부재의 결과이다. 12월 2일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본회의에 불참하여 정족수 미달로 본회의가 무산된 것이나 12월 6일 국보법을 법사위에 어렵게 상정하고도 12월 7일 국보법 연내처리 유보방침을 밝힘으로써 임시국회 소집에 대해 민주노동당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한나라당의 문제는 말이 필요가 없을 지경이다. 과거에도 야당은 늘 법안처리, 예산안심의를 정쟁화하여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전략을 구사해 왔지만 그래도 대개의 법안은 입법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의 일부를 반영하는 수준에서 타협하고, 의사일정을 진행하며 몇개의 쟁점법안을 추려 막판까지 협상을 하는 것이 통상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소위 4대개혁법안의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법안심의와 의사일정을 지연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도대체 상대 정파가 제출한 법안을 철회해야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적 의회 정치체제에서 있을 수나 있는 주장인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한나라당이 기본적으로 반노정서에 기초한 네거티브 정치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 디제이 정서에 의존해 반대로만 일관하다 대선에서 패배한 것에서 아직도 한나라당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임시국회 운영에 있어 확고한 전략을 수립하고, 내부의 혼선을 정리하여 여당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무엇보다 과반을 만들어준 국민의 개혁요구에 부응하여 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해야한다. 한나라당도 지난 두번의 선거에서의 패배에서 교훈을 얻어 책임있는 공당으로서 정상적인 국회 운영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17대 국회 임기의 첫 해도 넘기기 전에 정치권 전체가 국민적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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