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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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할미꽃
  • 이채택
  • 승인 200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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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미꽃. 잎, 줄기, 꽃 모두 털로 덮혀 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할머니가 두 손녀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가난했지만 부지런히 일을 하며 어렵게 두 손녀를 키웠다. 큰 손녀는 얼굴이나 자태는 예뻤지만 마음씨가 아주 고약했고, 작은 손녀는 비록 얼굴은 못생겼으나 마음씨는 비단결처럼 고왔다.

어느덧 큰손녀와 작은손녀는 나이가 차서 시집갈 때가 되었다. 얼굴이 예쁜 큰 손녀는 가까운 이웃 마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고, 못생긴 둘째 손녀는 고개 넘어 있는 마을의 아주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다. 둘째 손녀가 홀로 남게 된 할머니를 걱정하여 모시고 가겠다고 하자, 큰 손녀는 남의 눈도 있고 해서 가까이 사는 자기가 할머니를 돌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큰손녀는 할머니를 소홀히 하게 되었고, 할머니는 끼니조차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말았다. 할머니는 마음씨 고운 둘째 손녀가 그리워 산 너머 마을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식사도 제대로 못한 할머니가 높은 고개를 넘어 갈 수가 없었다. 탈진한 할머니는 둘째 손녀가 살고 있는 마을이 가물가물 내려다 보이는 고갯마루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 꽃대의 허리가 구부러졌다 하여 노고초(老姑草)라 불리기도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둘째손녀는 할머니를 시집 뒷동산의 양지바른 곳에 묻고 늘 슬퍼하며 바라보았다. 이듬해 봄이 되자 할머니 무덤가에 이름 모를 풀 한포기가 자라 할머니 허리같이 굽은 꽃을 피웠다 한다. 둘째 손녀는 할머니가 죽어 꽃이 되었다고 믿고 이 꽃을 할미꽃이라 불렀다.

할미꽃은 동아시아와 유럽에 30여종이 자생하고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된 식물의 하나이다. 이름의 유래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기도 한다. 예전의 할머니의 모습은 허리가 구부러지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꽃대가 구부러져 꽃이 핀 모습이 할머니의 구부러진 허리를 닮았다고 할미꽃이라 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정설은 흰 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할머니의 하얀 머리카락같이 보이기 때문에 할미꽃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옛적에는 백색 털로 덮인 열매의 모습이 할머니의 흰머리카락과 닮았다하여 백두옹(白頭翁), 허리가 구부러졌다 하여 노고초(老姑草)라 불리기도 했다.

꽃은 비교적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한다. 뿌리를 재래식 변기에 넣어 여름철에 벌레가 생기는 것을 예방했을 정도로 뿌리에 강한 독성이 있다. 복통, 두통, 부종, 이질, 심장병, 학질, 위염 등에 약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임산부가 복용하면 낙태할 수가 있다. 옛날에는 할미꽃 뿌리를 사약으로 쓰거나, 음독 자살할 때 달여 먹기도 했다 한다. 꽃말은 슬픔과 추억이다.

▲ 꽃이 지고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는 모습
옛적에는 할미꽃이 흔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요즘은 지역에 따라 귀한 녀석이기도 하다. 관상용으로 인기가 있다 보니 인간들의 채취대상으로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 가을에 어느 무덤가에서 할미꽃을 발견했다. 할미꽃이 잘 자라는 곳은 햇빛이 잘 들고 배수가 잘되며 키 큰 풀들이 가리지 않는 환경이다. 그러다 보니 무덤가가 최적의 서식 환경이다.

봄이 되어 처음 들렸을 때 꽃봉오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두 번째 들렸을 때 포기가 실한 개체는 모두 채취당해 이사 가고 없었다. 아쉽게도 부실하고 어린개체에 한 두 송이 달려있는 꽃을 카메라에 담고 왔다. 세 번째 들렸을 때 대부분의 할미꽃이 파헤쳐져 캐내어 가버리고 한 두 포기도 찿아 보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제 어디 가서 다시 할미꽃을 찿아야 하나? 대량으로 채취해 간 것으로 볼 때 분명 야생화를 취급하는 상인의 소행이리라.

어느 날 식물학의 고수분을 만나 야생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다시 자라서 올라올 것이라 했다. 분명 뿌리가 잘려 남아 있을 것이고 남아 있는 뿌리에서 다시 잎이 자라 올라온다는 것이었다.

▲ 털로 덮인 열매의 모습이 할머니의 흰머리카락과 닮았다하여 백두옹이라고도 한다
몇 달 후 다시 들려서 보니 할미꽃 새순이 여기저기 예쁘게 올라와 있었다. 내년에도 꽃을 다시 볼 수 있어 기쁘다. 하지만 세력 좋은 개체를 보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여러 해 자란 개체는 한 포기에 꽃이 10송이 이상 피는데, 계속 채취당하면 그러한 모습을 보기가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채택(울산 이채택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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