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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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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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평생 한발자국도 동프로이센 국경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나 그의 사상 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풍미한 예는 일찍이 없었다. 거의 60년 동안 외부와 단절하고 조용히 연구에 몰두한 쾨니히스베르크의 경건한 철학자는 1781년 《순수이성비판》으로 세상을‘독단의 잠’에서 깨웠고, 그 해부터 오늘날까지 그는 철학으로 세계를 지배해 왔다.

그의 삶에서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은 말년에 제국주의의 탐욕을 꿰뚫어보고 『영구평화론』을 제창한 점이다. 군국주의 원인이, 당시 유럽의 세력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팽창하면서 새로운 전리품을 둘러싸고 분쟁을 일으킨 데 있다고 판단했다.

“유럽의 문명국들이 이들 나라에서 자행한 부정은 우리를 전율시킨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은 발견과 동시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땅으로 취급하였다. 즉 원주민을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일은 부정을 자행하면서도 정통 신앙의 선민을 자처하고 경건하다고 주장하는 열강이 저질렀다.

 그래서 제국주의 정치체제에서 전쟁 여부의 결정은 세상의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이 경우 통치자는 시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소유자이므로, 전쟁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받을 필요도 없고, 성찬이나 사냥이나 호화로운 궁중 축제 등의 쾌락을 희생할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그는 마치 사냥이라도 하는 듯한 가벼운 기분으로 전쟁을 결심한다. 그리고는 전쟁의 명분 따위는 주저없이 목적을 위해 언제든지 준비를 갖추고 있는 외교단에게 떠넘길 수 있다.”

이 얼마나 현대적인 진리인가. 왜냐하면 18세기에 유럽이 자행한 국제적 강도 행위와 약탈이 21세기인 지금도 미국의 부시에 의해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위대한 노인은 예속이나 착취가 없고 평화를 약속하는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국제질서가 확립되기를 간절히 기대했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의 기능은 개인을 돕고 발전시키야 하는 것이지 개인을 이용하고 혹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절대적 목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인간을 그 밖의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인간 각자에게 부여된 존엄성을 파괴하는 범죄행위이다.” 내 목숨이 소중하다면 남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그 유명한 칸트의 정언적 명령이다. 절대적 도덕 명령인 정언적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종교도 위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가엾은, 너무나 가엾은 김선일씨는 “Your life is important, my life is important”라며 절규했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김선일씨는 한국군이 여기서 나가 준다면 한국에 가서 곧 있을 아버지 칠순 잔치도 치러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한국군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거기에 보내겠다고 오히려 확고한 다짐을 했다. 조선일보는 “아무리 치밀한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테러를 완전히 막아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며 “테러 예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테러가 일어나고 난 뒤 정부와 국민이 얼마나 성숙한 대응자세를 갖는가 하는 졈이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테러에 굴복하는 것은 또다른 테러를 불러들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석방 협상을 하기도 전에 내뱉은 작태들이다.

설마, 설마하며 실날같은 희망을 간직하며 애태운 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마침내 찢겨진 시신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는 목적이 어디까지나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돕자는 것이기 때문에 테러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내가 하면 ‘합법적 선제공격’이고, 네가 하면 ‘테러리즘’이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고방식과 어쩌면 그렇게도 닮아 있는 것인지…. 노무현의 이런 태도를 조선일보는 물론 부시도 흐뭇한 마음으로 기특하게 보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한때 미국에 대해 처녀의 순결성을 간직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부시와 접촉하자마자 이 기둥서방에게 복종하는 매춘부로 돌변했다.

“인간의 행위가 타인의 의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없다”는 칸트 선생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대통령을 잘못 만난 김선일씨에게 진정 깊은 애도를 표한다.

- 송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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