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켜야 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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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몇 가지
  • 류재인
  • 승인 2011.08.02 11:1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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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류재인 논설위원

 

미국이 망할 수도 있다?

미국을 부도에 이르게 할 뻔한 부채 한도 증액 협상이 디폴트(채무불이행) 시한을 이틀 앞둔 7월 31일 밤 극적으로 타결됐다고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디폴트 시한을 넘겼다는 것이 앞으로 문제없음이 아니라, 고작 부채 한도를 2조 천억달러 증액하기로 타결했다는 말이라 결국 빚만 더 늘어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천하의 미국이 왜 이런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는가...전문가들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가까스로 끌어올린 재정건전성이 부시 대통령의 냉전시대 같은 국방비 증액과 부자들 감세 정책으로 그 바닥을 드러냈고, 결국 국가의 재정 관리 부실능력로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한다.

커가면서 한 번도 미국이 망할 거라고는 생각해본 역사가 없는 필자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운 뉴스일 따름이다. 미국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어쨌건 세계 주요무대에서 미국은 팍스아메리카라고 불릴 만큼 항상 강대국이었다. 합리적인 작은 정부의 상징이라고 불릴 만큼 모든 시장주의의 본연체이기도 하면서 세계 모든 국가주의자들의 자유 수호 상징국가에서 국정운영의 실패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란 말이다.

‘자유’ ‘시장’ ‘경쟁’ 그 뒤에 숨은 모호함

이야기를 돌려 상반기 베스트셀러였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한번 살펴보자. 이 책의 저자인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은 ‘시장은 자유로워야 하고, 정부가 개입하면 자원이 적재적소에 쓰이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 ‘자유시장이라는 것은 없고, 모든 시장에는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과 한계가 있다. 자유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전의 저서에서 성장위주의 담론을 펼쳤던 그는 이번에는 ‘시장에서 무엇을 사고 팔수 있는지, 누가 참여할 수 있는지, 거래와 관련된 조건은 어떤 것인지,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등 이 모두에 규제가 있다’고 말한다.

거시경제학이든 미시경제학이든 모든 경제학 강의 첫 번째 수업에서 배우게 되는 경제학의 원리는 ‘free market’ 즉 자유시장이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므로, 규제가 아니라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즉 공급이 증가하면 가격이 떨어지고, 수요가 증가하면 가격이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자유로운 시장인 줄 알았던 그곳에서도 규제와 개입이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진정한 자유시장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우면산은 사유지라서 서초구가 아니라 소유자가 관리해야’

지난 7월 27일 서울에서만 하루에 300mm를 넘긴 기록적인 폭우로 강남 한복판은 물에 잠기고, 우면산 일대에서는 18명의 사망자와 31명의 부상자를 냈다. ‘지구온난화’와 ‘100년만의 폭우’ 때문이라는 서울시의 발표와 달리 인근 주민들은 이번 참사가 ‘천재’가 아니라 ‘인재’라 말하고 있다.

우면산 산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지난해 9월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이미 한차례 산사태를 겪었으나, 당시에도 서울시와 서초구청은 지난 10개월여 동안 예방대책을 세우는 데 소홀했으며 우면산을 '자연재해위험지구'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 서초구청은 ‘우면산 대부분이 개인 사유지라 구청이 임의로 나무를 베거나 뽑을 수 없을 뿐더러 자연재해위험지구 지정 문제는 재산권까지 걸려 있어 생각만큼 처리가 쉽지 않다는 것 즉, 재해위험지구가 될 경우, 집값 하락 등 개인 사유지에 대한 재산권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허나 이는 필자가 듣기에 뱀의 발보다 못한 변명이 아닐까 한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해도 서울시와 구청은 결국 ‘재산권’이 ‘재해방지’ 즉 인명피해를 줄이는 일보다 더 높은 결정 순위라고 스스로 밝힌 꼴이 된 것이다.

인천공항도 민영화, 의료도 민영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8월 1일 ‘인천공항공사의 민영화와 관련해 포항제철과 같이 국민주 공모 방식의 매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천공항공사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서민정책인 데다 특혜 매각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국부 유출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인천공항 민간기업 매각논의가 관철되지 못하자 국민주 방식으로 무마시켜 결국은 ‘민영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4400만명이 이용하는 인천국제공항은 2001년 개항한 이후 10년 만에 동북아시아의 허브공항으로 자리잡으며, 매출 1조원에 6년 연속 흑자, 6년 연속 공항서비스 평가 1위를 기록하고 있고, 매년 순익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최근 영업이익 5332억원을 내는 초우량기업이 되었다. 그럼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인천공항을 팔아야 하는가.

인천공항 지분 매각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 직후 공기업 선진화 방침에 따라 민영화하겠다고 나서며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세계적 허브공항이 되기 위해 선진운영 방법을 배워야 한다며 설립 당시부터 공기업 민영화법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는 인천공항을 팔아야 한다는 주장했다. 그 주장을 상황이 바뀐 지금도 관철시키겠다고 당·정·청이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얘기 같지만 정부는 또한 지난 7월 11일 당·정·청 실무협의를 통해 `제주특별자치법 개정안` 및 `경제특구 투자병원 설비절차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5년간 ‘영리의료법인’ 도입 관련법으로 기획재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왔던 보건복지부마저도 입장이 달라졌다. 진수희 장관은 최근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도입하는 것은 괜찮다’고 밝혔다.

이들이 괜찮다는 제주특별자치법 개정안은 △의료특구 지정과 영리병원 △외국 의료기관 개설 △의료기관 광고 △응급의료 등에 관한 특례 △상법상 모든 회사의 의료특구 내 의료기관 개설 허용 등이 포함돼 있다.

그동안 제주도와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 투자개방형 병원 설립 관련 법안은 여러 반대에 부딪혀 2~3년째 국회에 갇혀 있었다. 제주도 의료특구에 투자병원을 설립하도록 허용하는 제주특별자치법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경제특구 투자병원 설립 절차법은 보건복지위원회와 지식경제위원회에 묶여 있었던 셈이다.

이런 법안을 뜬금없이 8월까지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한다. 왜 그럴까. 도대체 무슨 꼼수가 있는 것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지만 말이다.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뱀파이어 효과’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려는 영리병원운영형태는 현재 의료인과 비영리법인만이 투자할 수 있는 병원에 민간 자본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나라 병원은 인력과 시스템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대규모 자본 투자가 봉쇄돼 있어 산업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말하며,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 외국인 의료관광객 유치 등을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논리를 접한 혹자는 이것이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은 결코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이러한 운영형태는 대형병원을 거쳐 의원급에게까지 파급될 것이다. 상상이 잘 안된다고?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수많은 폐해를 일으키고 있는 불법네트워크 운영형태에 지역의 많은 치과의원들에 멍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영화 ‘식코(sicko)’를 통해 알게 된 미국의 의료행태에 대해 하버드 의대 힘멜스타인 교수는 이를 ‘뱀파이어 효과‘라고 일컬었다. 비영리 병원이라 해도, 종국에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의 진료마인드를 쫒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민영(民營)화’는 ‘민(民)의 영화(榮華)’를 위한 정책’이어야

이야기를 다시 돌려, 미국으로 가보면 현재 대통령인 오바마의 첫 번째 개혁과제는 ‘의료보험’이었다. 그것도 ‘민간의료보험’을 ‘국민의료보험’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가입할 때는 ‘세상 모든 병으로부터 지켜줄 것’처럼 굴다가 막상 질병에 걸리면 이런 저런 이유로 ‘어떤 병으로부터도 지켜줄 수 없을 것’이라는 통보만 하는 ‘민간’의료보험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국민을 지킬 수밖에 없는 ‘국민’의료보험이 그들에게는 더 좋은 제도로 보였나 보다.

물론 이런 제도에도 여러 가지 운영상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보장수준과 제공되는 의료시술보다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올바른 운영방법으로 극복해나가야 하는 문제이지, 근본적인 체계를 뒤바꿈으로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돌이켜보면 우리에게도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셈이다. 산사태로 무너진 우면산, 세계1위의 인천공항, 그리고 미국도 따라하려는 국민건강보장체계.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게 떠맡기는 ‘민영화(民營化)’가 아니라 국민의 영화를 위한 ‘민영화(民榮華)’가 되기 위해서는 말이다.

류재인(본지 논설위원, 신구대학 치위생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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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욱 편집위원 2011-08-02 14:30:12
비영리 병원이라 해도, 종국에는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병원의 진료마인드를 쫒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부분과 관련하여 영리병원이 어떻게 영향을 줄지, 그 이후 의료체계가 어떻게 변해갈지... 요즘 분위기를 보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의성있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양정강 2011-08-02 11:59:29
류교수님,
한국 건강보험제도, 이가운데 치과영역에 대한 소견을 들려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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