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42]야성의 사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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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42]야성의 사랑학
  • 전민용
  • 승인 2011.08.17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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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의 사랑학, 목수정, 웅진 지식하우스

 

저자는 “한국남자들은 왜 더 이상 거리에서 그녀들을 쫒지 않나” 라는 질문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 원시적, 야성적 연애 걸기의 수법”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 애석해 하며 그녀는 생물학적인 연애 충동마저 심각한 손상을 입은 다양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파고든다.

유럽의 68혁명은 여학생 기숙사에 남학생이 드나들 수 없게 한 대학기숙사의 반자연적인 규율로 인해 발발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슬로건들 중 하나. “사랑을 하면 할수록 난 더욱더 혁명을 하고 싶어진다. 혁명을 하면 할수록 난 더욱더 사랑을 하고 싶어진다.” 68혁명은 자유와 사랑을 확산시킨 위대한 운동, 사랑을 삶 속에서 더 많이 쟁취하기 위한 시민혁명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저자는 이 책을 쓴 목적이 완전한 야성의 즐거움을 누리던 벌거벗은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엄마와 맨살을 맞대며 직접적인 사랑을 교환하던 완전하게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결합한 빌헬름 라이히에 주목한다. 라이히는 성적 억압의 목표가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억압적 에너지를 오르가즘으로 방출할 수 없다면 인간은 마조히즘적 성향을 갖게 되고 파시즘에 스스로를 종속시키며 그들의 내부에 축적되는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강력한 외부적 압력이 그들을 제압해 줄 것을 호소하게 된다는 라이히의 주장을 성이라는 개인의 문제를 정치 사회적 문제와 연결시킨 탁견으로 평가한다.

삽질 공화국과 건설 마피아의 두목 이야기, 유교와 칠거지악 이야기, 영화 ‘셀러브레이션’이 고발하는 가족주의의 위선, 마광수의 독특한 ‘효도에’라는 시, 히딩크와 백기완의 만남 등 재미있고 개성 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에리히 프롬은 인류의 역사를 여자와 남자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고 본다. 6천 년 전 남성들이 부권제로 여성들을 장악했고, 남성 중심적 사회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에게 모권제 사회의 영감을 제공한 사람은 신화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바흐오펜이다. 바흐오펜은 고대 신화들과 상징 연구를 통해 부권제가 상대적으로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며, 어머니가 가장의 역할을 하며 공동체를 이끌고 여신으로 추앙받던 문화가 앞서 존재했음을 추론해 냈다. 부친살해로부터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프로이트와 달리 바흐오펜은 인간은 어머니와의 애착 관계로부터 진화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여성을 거세당한 남성으로 보았다면 바흐오펜은 근원적인 힘, 자연, 생에 대한 사랑과 긍정의 대표자로 보았다.

이 상반된 주장 중 역사적인 결과로 나타난 프로이트의 승리와 바흐오펜의 패배는 여성 진영의 패배의 기록이자 다시 한 번 성부정의 세계관이 성긍정의 세계관을 압도한 기록이기도 하다.          
성부정의 세계관 속에서는 인간의 본능은 억제되고 감시와 통제가 사회의 근간을 이룬다. 지배와 피지배의 과정이 이어지고 전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부권제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자기 파괴의 역사로 치닫는다는 것이다. 반면 모계사회는 사랑과 평화, 평등으로 가꿔지는 세상이자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는 어머니의 심성이 사회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는 젠더전쟁이 현재진행형이란다. 명품에 환장하는 허영을 규탄하고, 일도 안 하고 남편의 월급을 좌우하는 과도한 권력에 분통을 터뜨린다. 급기야 “(한국 남자는 모두) 외국여자들이랑 결혼해서 이런 여자들의 씨를 말려야한다”는 어이없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들을 보면 여성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남성들의 건강이 좋고 더 오래 살고,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면 여자보다 남자들이 더욱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한다. 여성과 남성이 반반인 그룹이 남성이 대부분인 그룹보다 훨씬 생동감 넘치고 활기 있다는 것도 상식이다. 성평등이 없으면 성긍정도 생에 대한 긍정도 없다.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운 공생만이 살 길임은 분명하다.

엥겔스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 강자에 대한 약자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어느 정도 원시적 야만성을 극복했는지 가장 명확히 알 수 있기 때문에, 여성의 자유와 양성 평등의 정도로 인류의 진보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높은 세금과 복지의 확대로 특히 출산과 육아, 교육의 문제를 공적인 영역에서 최대한 수용하고 있는 북유럽국가들과 저자가 살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양성평등의 지수는 엥겔스의 예측대로 높게 나타난다.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은 대체로 중단되고 애정만으로 결합된 결혼 없이 이루어진 가정도 절반에 이른다. 프랑스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재앙의 징후로 나타난 저출산을 극복하고 유럽 최고의 다산국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랑 없이 사는 것은 삶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은 과거에 권태를 느꼈던 그곳에서 지금은 열정을 느낀다. 무의미하던 세상은 의미와 모험, 위험, 선물과 이로운 우연들로 가득 채워진다.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솔직하고 대담하게 가면을 벗게 한다. 사랑은 체제전복적이고 기존 질서에 위협을 가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평생 한 번씩은 사랑을 한다?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단 한 번뿐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영원한 사랑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제발 꿈 깨 주시길. 그러나 사랑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만 온다? 그렇다. 결단코 그러하다.
사랑을 구하고, 사랑의 기쁨을 알고, 그것을 배가시키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다가온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을 성숙하게 가꾸고, 자신만의 견고한 세계를 축조해 가는 데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이 자신만의 향기로 같은 노력을 기울여 왔던 사람들을 만나 얻게 되는 인생의 가장 달콤한 열매이다.

저자는 이론과 경험을 총동원하여 느끼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외친다. 사랑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해방시키자는 이 목소리는 꼭 필요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던 틈새를 보여주고 열어주는 고마운 외침이다.

그렇다고 오늘부터 당장 길거리 헌팅부터 시작하지는 말기를 바란다. 사회심리학적인 연구에 의하면 저자가 언급한 원시적, 야성적 연애걸기 수법(길거리 헌팅)은  거의 효과적이지 않은 방법이다. 역사적으로도 개인주의 사회 이후에 가능한 일이라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닐 것이다. 여성이 남성에게 접근할 경우에는 대단히 높은 성공율을 보이지만 남성이 접근할 경우에는 대부분 실패하는 방법이란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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