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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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ad Not Taken (가지 않은 길)
  • 신순희
  • 승인 2005.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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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의 건강한 자유, 영국 UCL대학 박사과정 류재인 선생

"부럽다, 혹은 한심하다. 뭐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그건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해 품는 동경과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요."

겨울이 끝자락인 어느 일요일 오후, 서울에서 다시 만난 류재인 선생은 자신의 유학생활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을 그대로 들켜버린 것 같아 흠짓 민망하면서도 그 말이 주는 편안함에 나도 따라 금방 편안해진다. 대학 후배인 그를 오랫동안 안다고 생각했으나, 그날 나는 새로운 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오랫동안 그를 바라다 보았다.

'숲 속의 갈래길에 서서 가지 않는 길'(The Road Not Taken)을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던 누군가의 시선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2000년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한 젊은 여성치과의사 류재인 선생은, 졸업 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의 '구강보건정책연구회' 회원으로서 활동하며, 성균관대학교 보건소 등에서 임상치과의사 일을 하다가 2001년, 영국 UCL대학에 구강보건을 전공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는 박사학위 과정에 있다.

방년 32세의 비혼여성, 치과의사 면허가 있는 가난한 영국 유학생, 구강보건 연구자 등이 현재의 그를 지칭하는 사회적 표현들이다.

유학

'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다양한데, '유학생 류재인'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다. 우선 전공이 소위 '인기' 과목도 아니고, 학위취득 이후가 보장되는 길도 아닐뿐더러, 그렇다고 든든한 경제적 뒷받침으로 떠난 '유람성 유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듯 부드럽지만은 않고, 수줍은 듯 수줍지만은 않은 그의 모습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고등학교 시절 기계공학과만을 목표로 공부했다는 그는, "여자가 기계공학을 전공하면 여러모로 힘들다"는 담임선생님의 권유와 아버지의 동의로 치과대학에 입학한 말 잘듣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치과대학 공부가 재미있을 리는 없었을 터, 선배의 '재밌다'는 권유로 우연히 따라간 농활의 경험을 계기로 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선배가 좋아 사람이 좋아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대학 생활 내내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그에게 운동은 '사람'과 분리되지 않는 신념이다.

학생회 편집위원회 일원이었으며 자칫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구선대(시위사수대의 일종) 단과대 대장을 맡아서 활동하기도 했던 것도 그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함께 한 '생활'이었다.마침내 졸업을 하고 치과의사가 된 그에게도 다른 누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회적 기대가 주어졌다.

 즉,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치과의사라는 직업, 그리고 여성의 결혼적령기로 불리는 20대의 나이 등이 그것인데, 결과적으로 그는 지금 '응당 그러하리라 여겨지는 삶'에서 벗어나 있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산다면 결국에는 가족과 자신을 포함해 그 누구도 정말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했다고 한다.

민중의 건강권을 고민했던 학생시절의 연장선상에서, 그가 '구강보건'을 전공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유학에 '도피성' 목적 또한 없지 않았음을 스스로 인정한다.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삶의 문제로부터도 벗어나고 싶었나봐요. 외국으로 떠나면 그게 가능할 줄 알았는데, 근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눈앞에서 멀어진다고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래서 초기에는 방황 좀 했죠."

떠나보지 않고서는 그 소중함을 알기 힘든 게 사람일까? 소중한 것들을 떠나본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그가 편안하게 회상하는 '방황'은 이제 그에게 훌륭한 자산으로 남은 듯하다.

사랑한 것들에 대한 깨달음과 감사의 마음이 유학으로 얻은 큰 자산의 하나라면, 영국(서구문화)의 철저한 합리성에 대한 감탄이 또 하나이다. 철저한 능력 위주의 학문 조직, 인용보다는 독창성을 더 평가하는 학문 풍토 등은 학문이 탄탄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로서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 서구식 합리주의를 4년간 지켜본 그의 평이다.

선택과 깨달음

그는 런던거리의 자취집에서 산다. 점심 도시락을 싸들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가끔씩 클럽에 가고, 자주 혼자서 걷고, 때때로 좋아하는 찻집에 앉아 홍차와 갓 구워낸 케잌을 먹는 걸 즐긴다.

어떤 날은 나이 든다는 것에 조바심이 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직 인생 시작도 안한 듯싶다. 어떤 날은 남들 다 해본걸 나만 안 해본 것 같아 비참해지려다가도, 또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중고세탁기 사는 법도 알고, 영어 못 알아들을 때 대강 분위기 맞추는 법도 알고, 한국 쌀대신 먹을만한 게 뭔지도 아는 자신이 기특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선택한 서른두 살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스무살이 넘어서 맞게되는 삶은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결과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것이 스스로의 적극적 선택이었건,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인 소극적 선택이건, 그 상황을 허용하고 받아들인 스스로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자칫 선택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잔인한 책임추궁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택이 없다면 변화도 불가능하다. 현재의 삶을 선택의 결과로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삶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과 동력도 존재 가능하다는 면에서 내부동력을 긍정하는 의미로 읽힌다.

방황의 과정을 지나 자신의 삶을 가감없이 바라보며 받아들이는 그의 말이어서 그런지 묵직한 진실이 느껴진다.

응당 그러하리라 여겨지는 삶을 넘어, 누구나 한번은 꿈꿔보지만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그의 힘은, 이렇게 현재 자신의 상황을 편견없이 바라보고, 그 상황을 만든 스스로의 선택을 부정하지 않는 자세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이 요구하는 비용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다.

지금 그는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며 미래는 불확실하다.

한국에 올 때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학비를 충당하는 그는 '가난'이라는 불편을 감수하고 때로는 '정상적 기준'이라는 어색함과도 마주쳐야 한다. 그래서 가끔 우울해하고, 또 가끔 불안해한다.

내가 본 그는 두렵고 무섭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확신에 차서 뚜벅뚜벅 걷는 존경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주저하면서도 한걸음씩 끊임없이 내딛는 사람이었다.

상상속의 고통이 아닌 실제적인 고통만을 마주하는 그에게서 담백함이 느껴진다. 차라리 그가 특별한 신념이나 남다른 용기를 보여줬다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했을까?'삶이 조금 더 안정되면, 여건이 조금 더 성숙하면'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묻어두었던 나의 꿈들이 문득 부끄러웠다.

여성성의 발견

류재인 선생은 학생운동 시절, 머리를 묶어도 안될 것 같은 자기검열이 있었다고 한다.

치열한 운동의 현장에서 무성의 요구, 실질적인 남성중심적 문화에의 동화요구는 매우 흔한 일이었으므로 졸업 이후 연애를 하면서야 처음으로 '치장'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의 말에 씁쓸하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자기치장이 상품가치를 지닌 미혼여성의 '보여주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의 추구이고자 한다는 그의 말에 다시 한번 크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3년 말, 그가 한국에서 박사연구를 진행 할 당시 단국대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고, "가해자가 불쌍하다"는 주위 분위기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내가 폭력을 당해도 저런 처지가 되겠구나'는 각성으로 건치의 비상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다시 영국으로 가면서 많은 도움은 못되었다고 자평하지만, 그의 활동은 학생운동시절 고민했던 사회적 약자에의 동일시와 연대를 여성주의적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그때의 경험은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인식수준을 알게된 충격적 계기였고, 왜 '급진적 페미니즘'이 '급진적'인지를 이해하게 된 계기였다고 한다.

5%의 자유

사회의 통념에 대한 거부로서의 자유가 아니라, 자신의 선택을 삶에 구현하는 방식으로서의 자유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건강하다. 건강하므로 자유롭고, 자유로우므로 더욱 건강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꿈으로 가는 비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사회의 시선과 스스로의 시선에 얽매여 자유롭지 않거나, 건강하지 않은, 혹은 건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삶을 본다. 억압적인 사회의 기준이 좀 더 많이 요구되는 여성의 삶에서는 특히 그렇다.그래서 더욱 사회가 치과의사에게, 여성에게 요구하는 정형에 휘둘리지 않고 제 발로 단단히 땅을 딛고 서있는 건강한 전문직 여성을 보는 일은 참으로 즐겁다.

최근 통계학 수업을 들으면서 그는 자신이 정규분포 곡선의 '기각영역'에 있는 게 아닌지 생각했다고 한다. 종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에서 신뢰도 95%안에 드는 '정상분포도'에 있지 않고, 일명 '비정상'이라서 기각되는 5% 영역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어느 교수의 충고처럼 그는 "분포도 밖으로 뛰쳐나가는 일은 하지 말고, 기각영역에 머물면서, 기각영역을 넓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대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한 운동을 여태하고 있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전히 뭔가에 빠지는 사람으로 살고싶기 때문이란다.

통계학에서 5%를 기각영역으로 규정하는 객관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욱이 삶의 정규분포곡선에는 그 어느 자리에나, 그것이 한가운데 건 혹은 0.1%의 맨 끝자락이건, 각기 다른 얼굴의 사람과 삶이 있을 뿐이리라. 때로 우리는 '남들처럼'살고자 중심을 지향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남다르게'살고자 주변으로 치닫기도 한다. 삶이 언제는 고정불변이었던가.

늘 갈래길을 만나는 우리 삶이 지금 어느 위치쯤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진정 원한 삶이었는지 먼 훗날에는 알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류재인 선생의 건강함을 보면서 나는 많은 용기를 얻었다. 그가 사는 '기각영역'은 아마도 '용기가 가득찬 영역'인가보다. 용감한 왕자의 용기가 아니라 건강한 공주의 용기가 가득찬 그런 곳.

그가 그곳을 많이 넓히기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가지 않은 길 - 로버트 프로스트(피천득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원문>

The Road Not Taken -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신순희(서울 이대푸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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