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과 ‘장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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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과 ‘장사꾼’
  • 양정강
  • 승인 2012.04.16 16:34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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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양정강 논설위원

 

언제부터인가 병의원에서 진료를 통해 발생하는 수입을 ‘매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매출’은 ‘방매’ 즉, ‘물건을 내 놓아 팖’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이들이 스스럼없이 진료 수입을 ‘매출’이라고 칭하니 참으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유수한 일간지에 실린 글 제목조차 “병원매출, 쑥~쑥~ 키워드려요”이고 그 내용인즉, “지금은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병원이 유지되는 시대는 지났다”거나, “이미 2003년부터는 병원도 광고를 통해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등등 사전에서 풀이한대로 병원이 물건을 파는 곳이라 매도하니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병원이 상점이 되었다는 2003년, 그 이전인 2000년 8월1일 필자 나이 환갑에 폐업신고를 하여 ‘장사꾼’ 노릇을 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최근 치과신문 사설에도 “대다수의 치과에서 줄어든 환자와 매출로 원장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때이기도 하다”라고 ‘매출’이라는 표현을 치과의사들조차 쓰고 있으며, ‘의료서비스’라는 표현을 앞세우고 병의원 ‘경영’ 강의를 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변호사, 세무사, 치과계 전문지 기자 등 모두가 ‘매출’이라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병원이 물건을 파는 곳으로 전락하다보니 ‘흙탕물’로 뒤범벅된 시커먼 유디치과나 룡플란트치과의 유명 일간지 전면 광고로까지 자연스레 표출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절을 지나고 있음이다. 하긴 “안경 세 개 값으로 ‘라식’을”이라든가, “착한 가격 00만원으로 라식을”이라는 광고를 온라인 배너 광고나 지하철역 등에서 본 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 보면 우리 주위에는 드러내지 않을 뿐, 착한 마음과 성실한 생각으로 환자와 이웃을 보살피는 동료 치과의사들도 많다. 어찌하면 우리 치과의사들이 이 사회로부터 조금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동료 치과의사들을 볼 때면, 그들이야말로 이즈음의 난국을 헤쳐 나갈 해답이요 복병이라 생각되기도 한다. 

흔히 ‘말이 실체를 규정 한다’거나 ‘말을 정화하면 행동이 예뻐진다’ 또는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하는데, 우리들 역시 우리 스스로를 나타내고 평하는 말이나 단어, 용어에 좀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불과 며칠 전 치러진 선거에서도 ‘막말’의 위력(?)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필자는 초고속으로 바뀌고 스마트하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매출’이라는 단어는 피하고만 싶고 ‘입소문’을 제일로 치는 고리타분한 치과의사다. 아니 아픈 이들을 보살피는 ‘성직’까지는 언감생심이더라도, 제발 ‘장사꾼’으로는 타락하고 싶지 않은 노구인 것이다.

많은 것을 돈으로만 가늠하는 천박함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더 횡행할지 두렵고 염려스러울 뿐이다.

양정강(대한치과보험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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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2-04-22 18:30:03
의료가 무슨 성직까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굉장히 장사라는 말 자체에 너무 비하의 의미를 담아 쓰는 거 같아 좀 그렇네요. 의료도 장사일 수 있죠. 다만 정직하고 선한 장사꾼들만 존재하는 게 아닌 거 같아서 그렇지...

송필경 2012-04-22 14:49:18
원로의 고민과 공력이 흠뻑 베인 글입니다.

이종갑 2012-04-19 10:17:36
좋은 생각입니다 현재 치과계의 돌아가는 모습이 한스럽기만 합니다

강민홍 2012-04-18 16:58:45
저도 그런 단어를 종종 썼던 것같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고...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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