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변화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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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청년의 변화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 홍수연
  • 승인 2012.04.20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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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홍수연 논설위원

 

그는 1978년에 태어난 젊은이다. 준수한 외모에 사회단체 활동가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1년 전 내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주위 어르신의 소개로 병원에 찾아왔을 때의 놀라움이 나에게는 아직도 생생하다.

얼굴은 20대의 풋풋함을 겨우 벗어난 것 같은데, 치과병원에 처음 내원했다는 그의 입 속은 70대인 내 아버지보다도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만성 성인형 치주염'이라고 부르는 잇몸질환으로 흔들리지 않는 치아가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방사선 사진촬영을 했더니 치아를 붙잡고 있는 뼈(치조골)가 위 앞니의 경우 치아뿌리 끝에서 겨우 2-3mm  밖에 남아있지 않은 매우 심각한 상태였다. 게다가 앞니가 많이 벌어져서 입 다물고 있으면 장동건인데 입 벌리면 영구 같았다. 참 웃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난감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치아를 모조리 다 빼야 할 지경이라고 말해 버릴까? 아니야, 그 상실감을 어떻게 감당하나? 게다가 정기적인 급여도 제대로 못 받는 단체 일꾼인데…. 상실된 치아를 해 넣으려면 치료비도 감당하기 어려울 게 뻔했다.

우선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고, 그는 울었다. 나도 먹먹해져서 처음 보는 그 젊은이 앞에서 눈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제안했다. 어차피 치아를 모두 잃을 각오를 하고 한번 도전해보자. 각각의 치아들이 따로따로 있으면서 견디기 어려운 힘을 받는 경향이 있으니 서로 의지할 수 있도록 묶어보자. 기왕 각오하고 하는 일이면 묶은 김에 앞니들은 위치를 움직여서 보기라도 좋게 해보자. 물론 교정장치가 보여서 신경 쓰이기는 하겠지만, 이를 닦기 편한 쪽인 바깥쪽으로 붙여서 한 번 해 보자. 10개월가량 해보고 아닌 것 같으면 그때는 포기하자.

이런 말들을 주고받는 동안 그와 나 사이에 순간 갑작스런 오기와 팽팽한 긴장이 생기는 게 느껴졌다.

기초적인 잇몸치료부터 시작했다. 치석제거, 치근활택, 치주소파, 부분판막…. 말이 쉽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병원에 와서 마취주사 맞고, 한 사이클을 마치는 데 2개월 이상 걸리는  치주치료의 단계를 통과하기는 정말 힘들다.

차라리 어느 부위가 너무나 아프다든지, 생사가 갈리는 질환이라면 모를까 평소에는 아무런 증상도 없다가 치아를 상실할 지경까지 되어야 뭉근한 통증이 있는 잇몸병을 치료하는데 이다지 노력을 해야 하는 건가?

많은 치과 환자들이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결국은 치아를 다 잃고 후회하는 것을 나는 20년 동안 많이 보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기초 치주치료를 마쳤다.

다음은 교정치료의 단계였다. 위아래 앞니 12개에만 교정장치를 붙이고 월 1회 병원에 와서 힘조절을 해주는 치료이다. 성인들에게 치주를 위한 부분교정 치료를 할 때는 치아의 배열이 아름다워지는 것 보다는 치아가 움직이다가 빠져버리지는 않을지 무척 신경이 쓰인다.

결국 성패는 교정치료 기간 동안 환자가 얼마나 이닦기에 목숨 걸고 도전하는지, 의사가 이를 어떻게 배려하는 지에 좌우된다. 물론 치아의 움직임이 더디더라도 아주 약한 힘을 주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환자와 만나는 건 월 1회이므로 나머지 29일 동안 그가 이를 잘 닦는지, 장치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았는지 병원에서는 알 수가 없다. 내 생각에는 결국 환자의 노력이 치료를 완성해가는 게 성인 치주교정의 핵심이다. 의사가 할 일은 정확한 진단과 치료과정에서의 칭찬과 격려, 그리고 공감 정도라고나 할까?

어제, 10개월 만에 교정장치를 제거했다. 유지장치를 붙이고 치료전후를 비교할 수 있는 자료들을 채득했다. 1년 전 처음 내원했을 때의 전악 방사선사진과 어제의 사진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았다. 정말 놀라웠다. 치조골이 전반적으로 3mm 이상씩 새로 생겼다. 전체적으로 치조골이 수평으로 새로 생기는 일은 정말 드문 일이라고 한다. 어떻게 이렇게 행복한 결과가 생겼을까?

앞니에 교정장치를 붙이고 월 1회 치과에 와서 인사를 나누는 것 이 외에 내가 따로 한 일은 없다. 교정 전 잇몸치료를 제외하고는 따로 치료적 간섭을 하지도 않았다. 1년 사이에 그 친구의 사회경제적 처지나 전신적 상태가 특별히 달라진 것도 아니다. 단지 죽을 각오로 하루 세 차례 열심히 이를 닦았을 뿐이라고 한다.

가진 건 젊은 몸과 견결한 의지 뿐인데, 그사소한 이닦기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 앞으로 인생에서 뭘 할 수 있나 싶더란다. 여기서 물러서면 사회적 삶도 잘 할 자격이 없다 생각했더란다.

참 대단하다. 아니, 대견하다. 그리고 나도 너무 행복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함께 거울을 들여다 보며 웃었다. 영구에서 장동건으로 변한 그의 웃음이 참 예뻤다.

홍수연(서울이웃린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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