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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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세계사회포럼
  • 한동헌
  • 승인 2005.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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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뽀르뚜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을 다녀와서 2

공간이냐 운동이냐

▲ 행사장 가운데 위치한 굴뚝에 세계사회포럼이라고 적혀있다
세계사회포럼이 ‘열린 공간’이냐, ‘운동’이냐는 논쟁은 이번 사회포럼의 뜨거운 감자였다. 첫날 오전, 우리는 F204호에서 열린 "새로운 정치를 향하여"에 참석하였다. 이 세미나에는 세계사회포럼의 쟁쟁한 인물들이 거의 다 모였고, 현재 세계사회포럼이 직면해 있는 쟁점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열린 공간‘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수직적인 기존의 정당이나 노조가 아닌 새로운 조직이 필요하며, 네트워크 조직의 정치적 행동을 대안으로 언급하였다. 세계사회포럼에 대해서는 개방과 다양화를 성공의 이유로 들고 '광장' '공간'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의 의미를 강조했다. 룰라에 대해서는 지배층에 의해 손발이 다 묶인 상태라며, 그를 이해하자고 했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자며 마무리했다.

한편 ‘운동’으로서의 세계사회포럼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모였던 세력이 힘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또한 혼란, 사기저하 같은 운동 내부의 문제를 인정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의 초국적 움직임에 대항하기 위해 운동의 전문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조직의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했다. 세계사회포럼에 정당참여가 배제되는데 따른 문제점도 지적했다.

▲ 5번에 걸친 세계사회포럼의 성장과 미래에 대한 고민, 세계화된 자본과 전쟁에 맞서는 행동이 논의되었다
한쪽에서는 세계사회포럼이 토론과 주장들이 자유롭게 소통되고 교류되는 말 그대로 ‘공간’(space)이 돼야 한다는 주장과, 다른 쪽에서는 공동행동을 위한 결의와 사회운동들 간의 조정 능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는 양상이었다.

이러한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와 관련해 이번에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이 셋째날인 1월 29일에 있었던 임마뉴엘 월러스틴 등 지식인 ‘19인 선언’이다. 이 선언의 핵심 문제의식은 세계사회포럼이 행동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선언은 외채탕감, 금융거래 과세, 완전고용과 사회보호, 공정무역, 생명체에 대한 특허금지, 물 사유화 금지 등 경제관련 권고와 국제기구 민주화, 외국군 주둔기지 철폐, 모든 형태의 차별 금지, 정보 접근권 보장 등 12개의 제안으로 이뤄져 있다.

▲ 세계사회포럼 신문인 TERRAVIDA 4호 1면 기사로 실린 19인 선언
이번 5차 세계사회포럼은 세계적 차원의 사회의제를 담아낼 수 있는 계기로 세계사회포럼이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는 기로에 서 있음을 확인시켜줬고, 포럼 기간중 있었던 각종 토론회와 ‘19인 선언’이 세계사회포럼의 미래를 둘러싼 또 다른 논쟁거리를 제기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권력의 장악 없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세계혁명을 둘러싼 전략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첫날 오후에는 F201호에서 '권력 장악 없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토론회가 진행되었다. 여기에는 존 할러웨이와 알렉스 켈리니코스가 토론자로 나섰다.

먼저 존 할러웨이는 "권력 장악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권력을 잡고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한 축인 국가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과거 혁명의 실패와 같은 우를 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필요하며 이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것들이 필요하며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다양한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혁명은 통공간적인(interstitial) 혁명의 형식에 대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이어 알렉스 켈리니코스는 "권력 없이 변화는 불가능하다. 국가의 개념은 변하며 자본주의하의 국가권력이 아닌 다른 형태의 조직으로 이는 가능하다. 정부에 고작 건의하거나 압력만 넣는 것으로 만족하는가? 과거 혁명의 실패와 같은 권력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준비된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 행사장은 십 여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곳은 A구역
다음날인 1월 28일 오전, G204호에서 ‘반제국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저항’이란 제목으로 세미나가 열렸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가 직면하고 있는 노동, 농업, 군사 등에 대한 공동의 문제에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논의하고 오는 12월 홍콩에서 열리는 WTO 정상회의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 아시아를 넘어선 민중들의 연대와 이라크의 미군 철수를 위해 오는 20일 열리는 반전공동행동에 참여하자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 다음날인 1월 29일 오전 G202호에서는 "평화적 공존에 대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교류"가 열렸다. 쯔나미의 피해가 있은 직후라 피해와 복구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

특히 피해지역 복구에 군대가 들어오면서 생기는 문제점들로 미국이 지원을 하면서 그 전까지 들어가지 못했던 지역인 인도네시아 같은 곳에 미군이나 일본 자위대가 주둔하게 된 점이라든지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에 인도네시아 군이 들어오면서 지원물품을 쥐며 반군 소탕의 기회로 삼으려 한다는 점, 미국의 피해지역 지원 비용은 이라크의 1주일치 전쟁비용도 안 된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기업이 피해지역의 복구를 맡으면서 지원 명목하에 휴양단지를 건설하거나 광고를 하는 점들도 지적되었고, 이번 피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조기경보체계와 사회복지시설이 미비한 지역일수록 더 큰 피해가 있었다는 점도 이야기되었다.

▲ 의약품 접근권에 관한 토론을 마치고 토론자들과 함께
그 외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소규모의 AIDS 관련 토론들을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많았다 한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행사가 동시에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의 모두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참가했던 몇 안되는 행사와 현지에서 발행된 신문을 보니 세계사회포럼을 둘러싼 고민과 논쟁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것 같다.

내년 세계사회포럼은 탈중심적인 방식으로 3~4개의 대륙별 포럼을 가능한 비슷한 시기에 조직하고, 2007년에는 아프리카에서 다시 전 세계 사회운동가들이 모이는 포럼을 열 계획이다. 포럼기간 중 보였던 상반된 두 가지 경향의 충돌이 어정쩡하게 봉합된 ‘타협’이라는 시각이 있다. 과연 새로운 세상은 가능한 것인가? 세계는 과연 ‘우리의 꿈’대로 고쳐질 수 있을 것인가?

한동헌(서울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방사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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