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국민 모두에 부담 지우는 산재 은폐 문제
상태바
사회·국민 모두에 부담 지우는 산재 은폐 문제
  • 이상윤
  • 승인 2012.08.27 10:07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이상윤 논설위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1년 산재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 해 동안 산재보험을 이용한 산재 환자는 93.292명이었다. 산재보험을 적용받는 노동자수가 1400만 명이 약간 넘는데 그 중 0.65%만이 산재를 당해 산재보험을 이용했다.

전국민이 거의 1년에 한번 이상 이용하는 건강보험에 비해 산재보험은 전국민 중 9만 명 정도가 이용하는 사회보험이다. 그러다보니 이 사회보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고, 여기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 적절한 현황 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실제 산재는 이 수보다 훨씬 많다. 흔히 ‘산재 은폐’라 불리고, 정부는 ‘산재 미보고’라 부르는 사례가 산재 적용 사례보다 훨씬 많다.

어느 나라나 산재 은폐 사례는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주 입장에서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동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규모가 너무 큰 것이 문제다.

일례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국제 비교를 위해 새롭게 산출하여 비교한 지표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노동자 십만명당 사고사망자는 2007년에 8.81명으로 EU15개국의 평균 사고사망 십만인율인 2.9명의 3배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고 손상률은 0.58%로 EU15개국의 평균 사고사망 십만인율인 2.9%의 5분의 1 수준이다. 유럽 국가에 비해 사고 손상은 적은데 사망은 많다는 것이다.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사고는 중상, 경상, 아차사고 순서로 피라미드 구조를 띠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패턴은 산업화된 사회에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유독 사고에 비해 사고성 사망이 많다는 것은 많은 사고성 재해가 은폐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은폐되는 산재 규모를 집계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그 규모를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공식적인 자료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산재보험으로 치료해야 하는데 건강보험으로 치료해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환수 조치한 사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노동자가 산재를 당하고도 건강보험으로 진료를 받은 건수는 총 9만 3000건으로 180억 원이 부당하게 건강보험 재정에서 쓰여 환수조치했다고 한다. 이 자료만 봐도 1년에 발생하는 산재의 약 30%가 은폐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가천의대 임준 교수 등과 함께 본인이 2007년에 시행한 연구에 따르면, 2006년 한 해에 일하다 다친 업무 중 사고 사례는 108만 건으로 추정되었다. 실제로 2006년에 산재보험 적용을 받은 사례인 8만 9천여 건에 비해 12배나 더 많았다. 이는 건강보험으로 사고 치료를 받은 이들에게 일하다 다쳤는지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고, 그들 중 자영업자, 산재보험 미적용 노동자 사례, 산재보험 미적용 사고 재해 등을 제외하여 상당히 보수적으로 추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산재 은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고 있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

첫째는 경제적 부담이다. 산재로 처리해야 할 것을 건강보험으로 처리하면, 기업이 부담해야 할 사고 재해자의 치료 및 재활의 부담을 사회로 떠넘기는 것이 된다. 산재보험료는 100% 기업이 부담하고 건강보험료는 노동자, 지역가입자, 기업, 정부가 나누어 부담한다. 다시 말해 100% 기업이 부담하여야 할 치료비를 국민과 정부가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부당하게 전가된 치료비는 곧바로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게 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일종의 ‘보험 사기’다. 명백히 사업주의 부도덕한 ‘단물 빨아먹기’ 행위인 것이다.

둘째는 산업재해 예방 정책 수립에 혼란을 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예방 정책은 거의 현행 산업재해 통계에 근거하여 수립되고 추진된다. 그런데 이 통계가 실제 통계의 10분의 1만 잡힌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일단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 정책의 우선순위가 밀리게 된다.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것이다. 더불어 정확한 통계에 따른 정확한 정책이 불가능해지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산재가 이렇게 광범위하게 은폐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사업주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산재가 많이 발생하면 정부의 지도, 감독이 늘어나고 산재보험료가 오를 것을 염려하여 산재 은폐에 대한 유인 동기가 형성된다. 노동자는 산재 신청하겠다고 하면 사업주에게 받을 따가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산재 신청을 꺼리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산재 은폐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소위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더 많다. 정작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은 산재 은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큰 방향은 두 가지다. 일단 재해자 본인이나 사업주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하다 다치면 무조건 산재로 적용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산재 보고에 대한 사업주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이를 어겼을 때 강하게 처벌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산재 은폐 문제, 결코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상윤(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전양호 2012-08-27 10:34:00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