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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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사연]2012 여름, 몽골 의료봉사를 가다(1)
  • 고병수
  • 승인 2012.09.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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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수의 가슴앓이

해마다 오는 몽골 의료봉사지만, 언제나 진료하는 것보다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게 가장 힘들다. 올해는 인원이 많아서 3개 지역으로 나누어 봉사활동이 진행되는데, 우리 일행은 헨티 아이막(헨티道)의 운드르항이라는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아침에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저녁 6시 30분이었다. 우리보다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일행들은 밤 10시가 되어야 도착할 것이다(하지만 그 팀은 밤중에 초원에서 버스가 길을 잃어 헤매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고 한다).

처음 몽골에 갔을 때는 드넓은 초원에 감격해서 버스가 쉴 때마다 사진도 찍고 초원의 풀냄새와 들꽃에 취해 감동을 하곤 했는데, 여러 번 오다보니 이제는 그저 버스에서 책을 읽거나 잠만 자게 된다. 그것은 4년 전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와서 처음 산과 바다와 자연에 취해 감동받던 것이 이제는 심드렁해지는 무심한 적응 현상이다

     
 

몽골의 보건의료 현황

몽골은 세계에서 6번째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 인구는 280만 명 정도라서 인구밀도가 아주 낮다. 징키스칸에 의해 부족이 통일 된 후 원나라를 통해 강국이 됐지만, 이후 내부 분열과 중국의 간섭이 오래도록 지속되다 보니 1920년대까지는 후진국으로 전락해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1924년에는 당시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지원 아래 몽골인민혁명당을 유일 정당으로 해서 몽골인민공화국이 성립되어 독립국가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처럼 몽골도 처음에는 후진성을 벗고 경제적 발전과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가축 수가 증가하고, 공업도 이루어지는 한편 문화발전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하지만 경직된 국가사회주의 정책으로 인해 경제발전이 답보되고, 언론?출판의 자유는 억압받게 된다. 더욱이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소련의 붕괴는 몽골에도 자유화 바람을 불게 했고, 여러 정당들이 생기면서 1990년 7월에 비로소 민주적 절차에 의한 첫 자유선거가 이루어지게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몽골에서 진료를 하다보면 몽골의 보건의료는 사회주의 정부 당시의 영향이 크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 많다. 자유주의 국가들처럼 인구가 많고 수입이 되는 지역에 가서 병원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 주도 아래 각 아이막의 중심 도시에는 종합병원을 지어서 지역의 중심의료기관이 되게 하였고, 솜(한국에서는 군(郡)에 해당)에는 기본적인 일차의료기관(보건소 비슷)을 만들어서 지역 의료를 담당하게 하였다. 그들은 장티푸스, 천연두, 파라티푸스 등 고질적인 전염병들을 퇴치하는데 앞장섰고, 질병 예방을 위한 기초 검진이 중요시 되었다.

주민들은 누구나 자신의 ‘건강수첩’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의사들이 건강상황이나 이전 진료 내용을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몽골이 사용하는 키릴문자와 러시아 문자가 비슷하기 때문에 글을 모르는 내가 볼 때는 비슷해 보여도 주민들이 내게 펼쳐보이는 건강수첩을 보면 가끔 러시아어로 쓴 글들이 있다. 의사들이 주로 러시아로 유학을 가거나 러시아어로 된 의학서적을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미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그들의 의학서적을 가지고 공부하다보니 습관적으로 영어로 기록을 남기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 건강수첩 겉표지(왼쪽 그림)와 개인 의료기록이 자세히 정리된 내용(오른쪽 그림)
인구의 절반이 수도인 울란바타르에 거주하고 있고, 각 아이막마다 중심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인구 2~5만 안팎의 도시들이다. 그 외의 국민들은 대다수 아직도 유목 생활을 하면서 드넓은 초원에 흩어져 있기 때문에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사회주의 정부 아래에서는 모든 병원 이용과 치료는 무료였지만, 1990년대 자유화 이후 국가가 책임지던 보건의료서비스는 일부 개인 책임으로 바뀌게 된다. 여전히 응급치료, 예방, 임신부와 산모, 전염병 및 자연재해로 인한 질병 등은 무료이지만, 그 외는 많은 경우 진료를 받을 때 본인부담이 늘었다. 경제 발전은 더디면서 국가 책임의 의료시스템을 오래도록 하다 보니 국가재정에 부담이 가중되었고, 병원 시설이나 의약품 공급이 상당히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20년 사이에 사유화가 진행되면서 모두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이었던 것이 개인병원도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다. 의료 재정을 보완하고자 1994년부터는 의료보험이 시작되었다.

진료 준비

수도인 울란바타르에서 목적지까지는 400km밖에 안 되어서 서울과 부산 거리이지만, 길이 워낙 안 좋아 운 좋으면 10시간이고, 중간에 길을 잃거나 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새벽에 도착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 몽골에 올 때는 몽골의 역사책을 한 권 들고 왔다. 차 안에서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건의료 자료도 조사해서 가지고 왔기 때문에 미리 몽골의 보건의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에 우리 팀을 이끄는 단장님인 박형선 원장은 자꾸 공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 갈 때 꼭 책을 읽는 척 하더라 하면서 방해를 놓았지만, 나는 꿋꿋이 책을 놓지 않았다.

몽골은 아직도 결핵이나 바이러스성 간염, 기생충 질환 등 전염병 유병률이 많다. 게다가 그들은 육식을 주로 하면서 채소 섭취가 부족하고, 운동이 부족하다보니 심혈관계 질환들이 많다.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 당뇨가 정말 많다. 거의 생활습관병들이다. 우리 일행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초원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다. 같이 가는 통역이나 안내원들도 같은 점심을 먹는데, 그들은 그 정도로 양이 안 차는지 비닐에 싸서 가져온 양고기나 다른 육류를 꼭 먹어야 했다. 그들이 자주 먹는 양고기는 기름도 엄청 많다.

목적지인 운드르항에 와서 짐을 풀고 내일부터 있을 진료 준비로 부산하게 움직인다. 다행히도 헨티의 유일한 종합병원에서 일부 진료실을 이용하도록 허락 받았기 때문에 다소 편하게 진료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요한 장비들은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진료실로 가져다 놓고는 병원을 죽 둘러보고는 저녁을 만들어 먹고, 진료 준비 회의까지 마치고서야 숙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숙소는 근처 고등학생들이 학기 중에 묵는 기숙사였다. 침대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이 지역이 사람들이 많던데, 내일 너무 많은 주민들이 몰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가지고 온 약품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자원봉사자들이 제대로 움직여줘야 힘들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

그래도 구름 낀 밤하늘에 별이 반짝이면서 몽골의 이틀째 밤이 깊어갔다.
 

고병수(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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