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건치]함께 나누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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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건치]함께 나누고 싶은 책
  • 신이철
  • 승인 2012.09.17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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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이편한치과 신이철 원장의 추천도서

 

1.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 마이클 샌델

재작년 한국사회에 정의의 열풍을 몰고 온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었을 때 조금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불의의 실체를 파헤치는 획기적인 내용도 아닌데다가 유행처럼 번지는 '정의론' 독서 열기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책의 영향으로 정의에 대한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사회적 논의의 수준이 올라갔을지는 몰라도 한국사회가 더 정의로워졌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갈망이 좋은 책을 통해 번져나가는 현상은 바람직한 변화임은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된 마이클 샌델의 신작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샌델의 주장을 요약하면 시장 즉 돈이 사회 전체를 잠식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샌델은 시장이 인간의 모든 면을 지배하게 된 현실을 분석하면서 시장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우리의 삶을, 도덕을, 규범을 변질시키는 힘을 가진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건강, 교육, 공공안전, 국가보안, 환경, 여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영역으로 시장의 논리가 침투하는 현상을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샌델의 문제제기는 자본의 탐욕이 판치는 이른바 '시장사회'를 정확히 겨누고 있으며 시장지상주의를 극복하는 도적적이며 정치적인 과제를 우리에게 숙제로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샌델의 주장하는 깊이에 비해 책의 내용은 그리 심오하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다양한 예시가 반복되면서 지루한 느낌도 든다. 시장을 극복하자는 도덕적, 공동체적 접근법은 자본과 시장에 정면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쉬운 접근과 다양한 사례 덕분에 잘 읽히고 공감도 크다. 특히 의료민영화 음모를 생각하면 이 책의 문제제기는 우리에게 더욱 밀접하게 다가온다.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는 소리가 사회의 통념이 되어가고 인센티브가 남용되는 시장사회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시장에게 먹히기 때문이다.

5.18 광주를 다시 생각하며...

2. 시민 K, 교회를 나가다  - 김진호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의 지배자들에게서 그 신은 곧 자본이었다. 게다가 대형 교회의 신神도 자본과 점점 동일한 존재처럼 되고 있다. 한데 이 신은 불안을 해소하는 신이 아니라 불안을 조장하는 신이다. 그리고 승자만 독식하도록 베푸는 축복의 신이다." <시민K, 교회를 나가다> (김진호)
 
지금 한국사회에서 주류 기독교는 탐욕과 기만의 상징이다. 세계 유례없는 폭발적인 성장은 잘못된 신앙과 인간의 욕망이 교묘히 결합한 우상숭배의 결과이다. 돈과 성장이라는 우상. 필자는 한국 개신교의 특징인 성장지상주의, 극우반공, 친미, 배타주의를 한국 현대사의 흐름에서 읽어낸다. 십자가와 성조기를 양손에 들고 미국만세와 좌파척결을 외치는 교인들, 추악한 세습과 매매가 판치는 대형교회, 레이디가가 공연 반대로 놀림거리를 자처하는 종교에 과연 희망이 남아 있을까?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병들어 썩어가는 교회를 떠나간 시민K. 교회를 사랑하기에 결코 내버려둘 수 없는 시민K는 저자의 다른 이름이 아니었을까? 배제된 자들과 함께하는 작은 교회가 한국의 개신교를 살릴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적어도 작은 희망이 되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진보정당에 걸었던 희망이 대못이 되어 날아왔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허탈과 분노에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썩은 곳을 도려내고 대수술을 한다면 죽어가는 '진보'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3. 점령하라  - 슬라보예 지젝

"그들은 우리가 모두 루저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루저들은 저곳 월 스트리트에 있다. 우리가 낸 돈으로 수십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아닌가. 우리는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는다. 우리는 시스템이 그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목격자일 뿐이다.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당신을 부패하게 만드는 것은 시스템이다. 당장의 의료 혜택을 위해서는 약간의 추가 지출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 이런 세상은 무언가 잘못된 곳이다. 우리는 높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수준의 생활을 원하는 것이다." (2011년 10월 9일 주코티공원에서 슬라보에 지젝의 연설중에서)
 
<점령하라> (슬라보예 지젝 외) 세계를 뒤흔든 월가점령운동의 현장을 생동감있게 전해주는 책이다. 제어되지 않는 자본주의와 금융의 권력화에 대항하는 99%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들려준다. 점령운동의 생생한 경험은 한국의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현장에서도 도움이 될 만하다. 다양한 시선의 정제되지 않은 글들이라 중구난방 어지럽게 느껴지지만 슬라보예 지젝과 주디스 버틀러의 명연설은 읽어 볼 만하다. 굳이 사서 읽을 정도는 아니니 지젝의 연설문을 한 번 찾아 읽어보시도록. 확성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인간확성기로 소통하는 지젝의 연설 장면도 인상적이다.

4.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데이브 마고쉬

"국민의 경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며,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저는 배가 고픈 자가 영혼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또한 치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美나 善과 같은 것을 생각할 여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데이브 마고쉬 / 건강과 대안 기획) 캐나다 무상 의료제도의 초석을 마련한 토미 더글러스의 일대기를 다룬 책. 진보적 정치세력과 진보정당, 그리고 위대한 정치인이 자본과 권력을 뛰어넘어 무상복지를 실현해 낸 과정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특히 지금 한국사회에서 무상의료가 갖는 의미와 한미FTA의 문제점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한 우석균 선생의 해제는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기획한 '건강과 대안'에 창립 때부터 회비를 낸 회원이면서도 그간 활동에 무심했던 것은 반성해야겠다. 무상의료와 무상복지로 가는 길... 멀지만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의료서비스에는 가격표가 붙어서는 안 되며, 누구나 개인의 경제력에 관계없이 필요한 의료서비스는 무엇이든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17)

5. 사도 바울  -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알랭 바디우) 급진적 철학자 바디우의 글은 언제나 명쾌하고 도발적이다. 무신론자인 그가 그리스도교 교회의 중심적 인물 사도 바울의 텍스트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교회라는 굴레를 벗겨낸 바울의 담론은 사실 반철학적이다. 하지만 바울은 제국과 율법에 맞서서 보편주의를 전투적으로 실천한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바디우가 바울에게서 '사건적 진리를 단호하게 선언하는 주체의 전투적 사유'를 발견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바디우가 위대한 철학자라는 사실을 함께 발견하게 된다. 역시 좋은 책.
 바울은 교회에 삶을 주었지만... 지금 기독교의 모습을 보면 바울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교회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6.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 박노자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박노자 교수의 책은 '종족적 한국인'들이 읽기에는 심히 불편하다. '민족=국가'라고 배워 온 우리들이 그의 삐딱한 시선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이 그가 주는 메세지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권위주의, 군사주의 치하에서도 국가라는 환영을 떨치지 못했다. 국가는 그저 지배계급의 사무총국이었음에도 병역거부는 커녕 국기훼손조차 엄두도 내지 못하는 소심한 한국인으로 순화되어왔다. 전쟁과 군대에 맞선 여호와의 증인 등의 용기있는 저항을 또라이라고 여기는 집단 따돌림에 동참해 온 것이다. 온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군사문화를 극복하지 못하면서도 군대가는 연예인 얼짱에 환호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진보라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안보를 들먹이며 평화와 반전을 외면하기도 했다. 국가는 권력관계의 중심이자 국민의 생사여탈권을 독점한 국가폭력의 주체이다. 하지만 시장의 목력을 잠재울 사회정책을 펼칠 선의의 주체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경제발전에 국가의 주도적 열할을 강조하는 장하준 교수의 책이 인기를 얻고, 사회 경제의 합리적 조절자를 자부하는 유시민류의 자유주의자에 기대를 갖기도 하고, 복지국가로 개조하는 꿈을 국가의 힘에 의존하는 심상정류의 사민주의 우파정치인에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에게 국가는 자본주의의 수호자고 전쟁의 주체이며 적과 외국인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살해하는 기계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국가에 기대를 갖는 것은 애시당초 무의미하다고 주장한다. 그런 점에서 아직도 국가라는 힘에 눌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부르는 진보정치세력보다도 여호와의 증인의 원칙주의가 낫다고 말한다. 진정한 진보란 처음부터 끝까지 무조건적인 평화주의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폭력으로 유지되는 국가와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노자 교수가 정당에 참여하고 총선에 뛰어든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급진적 변혁이 불가능한 시점에서 어쩔 수 없이 국가라는 체제와 의회정치를 선택한 박노자 교수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책으로 여러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특히 이 나라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 16번을 찍겠다 맘 먹은 분들은 꼭!

7. 다윈지능  - 최재천

진화란 생물의 형질이 유전자라는 정보물질을 통하여 전파되는 과정이다. 진화론은 인간의 정신과 생명의 문제까지도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길 요구한다. 몸을 이루는 물질은 죽음으로 해체되지만 유전자는 영원히 살아남아 다시 조합되고 새 생명으로 전해진다. <다윈 지능> (최재천)
 최재천 교수의 글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이해가 쉽기 때문에 설득도 쉽다. 최재천 교수는 항상 통섭을 주장하지만 과학 이외의 영역은 통섭이라기보다 포섭의 대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진화론에서 진화란 진보적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방향성이 없는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하지만 사회의 진화는 뚜렷한 방향을 필요로 한다. 진보의 가치를 담아내는 진화만이 지구와 인간의 미래를 위한 길이다.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과학이 신의 기원까지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리석다. 과학과 종교의 다툼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투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의 업적으로 물신화된 종교를 무력화하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대한 과학의 책임을 면키는 어렵다.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된 지구온난화와 원전의 문제를 과학적 확률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다행스럽게도 최재천 교수는 열린 시각을 갖고 있는 과학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진화론뿐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진화론도 진보적으로 진화할 때만이 살아남는다는 점도 기억하자.

8. 필경사 바틀비  - 허먼 멜빌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어구가 반복되고 변주될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묘한 느낌을 주는 인물 바틀비. 소외된 근대인의 전형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인물로, 혹은 현대인의 삶의 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물이라 해석되기도 한다는데... 아감벤이 월스트리트의 기이한 필경사에 왜 그리 집착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어쩄건 바틀비는 더 이상 부조리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수동적 저항이 가져온 결말을 보면서 지금 우리 주변의 수많은 바틀비들은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처음엔 내가 또 다른 바틀비라고 착각했지만... 돌이켜보니 온순하나 비타협적인 바틀비보다는 우유부단하고 현실적인 변호사의 모습이 내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이 1853년에 쓴 소설임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전혀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세계문학사에서 최고의 단편소설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할 정도라니 모두들 한 번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창비판은 미국단편소설 모음집에 50쪽 정도 들어있으니 서점에서 그냥 읽어 보셔도 된다. 소장하고픈 분들은 문학동네에서 나온 예쁜 단행본을 구매하시도록.

9. 반대자의 초상  -테리 이글턴

'낭만주의자가 세상을 자기들의 욕망에 순응시키는 사람들이라면, 현실주의자는 정신을 세계에 순응시키는 사람들이고, 혁명가는 이 둘을 동시에 다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반대자의 초상> (테리 이글턴) p142

이 시대 최고의 급진적 문화비평가로 불리는 테리 이글턴의 서평모음집. 번뜩이는 재치와 독설 그리고 유머가 있는 비평서라지만 대부분 잘 모르는 책과 저자에 대한 서평이라서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젝과 바디우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평가는 읽어 봄 직하다. 저자는 지젝이 고집 센 은둔자적 파리지앵인 라캉과는 달리 명쾌하고 친근한 접근으로 대중에 다가서는 모습에 대해 높이 평가한다. 심오하면서도 정치적 진지함을 잃지 않는 지젝을 고고하고 위압감만 주는 프랑스 이론가들 대한 암묵적 비난이라고 말한다. 바디우에 대한 평가도 무척이나 후한 편이다. 우리 시대 다른 도덕적 사상가 중 바디우처럼 정치적으로 명확한 시각을 지녔거나 용감하게 논쟁적인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밖에 프랑크푸르트학파나 루카치, 베컴에 대한 비평 등등 몇몇 눈에 띄는 좋은 글들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무거운 글들이고 난해해서 다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테리 이글턴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10. 의지와 운명  - 카를로스 푸엔테스

잘려나간 '머리'가 잔혹하게 떨어져 나간 '몸뚱이'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억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섞여있다. 이성적인 머리가 판단하는 내 몸뚱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욕망 덩어리? 운명의 상징? 어쩔 수 없는 숙명?

인간은 누구나 자유의지로 자신을 설계하고 살아가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은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소설 속의 여호수아와 예리고도 '카스토르와 폴룩스'로 살아가고자 했지만 '카인과 아벨'의 운명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무자비한 역사와 폭력적 사회 속에서 개인의 의지는 정말 하잘 것 없는 것인가?

'멕시코 태생으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지성 카를로스 푸엔테스. 멕시코의 암울한 역사와 현실에 파고들면서, 멕시코인의 정체성에 대해 끝없이 성찰해온 저자의 탐구를 집대성한 장편소설이다. 멕시코 연안에 굴러다니는 잘린 머리가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20세기 멕시코의 그림자가 그대로 반영된 음모와 배신의 드라마를 펼쳐지고 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악마의 거래한 대부호의 일그러진 욕망과 그의 세 아들에게 강요된 피비린내 나는 숙명 속으로 초대한다. 한 개인의 비뚤어진 욕망이 폭력적 사회에 악을 낳아 비극적 역사로 이어지기까지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책소개 중에서)
 
모처럼 (긴)장편소설을 읽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소설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구석이 있다. 기구한 역사와 처절한 삶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구성과 신화적 상상력이 그것이다. 재미  있었나? 글쎄... 신화와 종교 속의 인물들이 수없이 나오고, 멕시코의 현대사도 꽤 복잡한데다가 선과 악, 의지와 운명이라는 존재론적 질문들이 끊임없이 나오니.. 좀 복잡해서 집중하기가 어려웠지만 나름 재미는 있었다.

11. 세속화 예찬  - 조르조 아감벤

"환속화는 억압의 형식이다. 환속화는 자신이 다루는 힘을 그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기만 함으로써 이 힘을 고스란히 내버려둔다. 따라서 정치적 환속화는 천상의 군주제를 지상의 군주제로 대체할 뿐 그 권력은 그냥 놔둔다. 이와 반대로 세속화는 자신이 세속화하는 것을 무력화한다. 일단 세속화하고 나면 사용할 수 없고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 그 아우라를 상실한 채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려진다. 세속화는 권력의 장치들을 비활성화하며, 권력이 장악했던 공간을 공통의 사용으로 되돌린다."
 <세속화 예찬 - 정치미학을 위한 10개의 노트> (조르조 아감벤)
 

아감벤이 보는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환속화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종교적인 현상이다. 종교의 폐해를 없애자는 리처드 도킨스의 세속화나 종교의 급진성을 되살리자는 지젝이나 테리 이글턴의 주장과는 달리 아감벤은 세속화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대 유럽을 대표하는 철학자 아감벤의 독창적이고 현란한 수사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대단한 집중이 요구된다. 140쪽에 10개의 글이 실려있음에도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 방대한 주석과 사진, 옮긴이의 긴 해제가 함께 실려있는 것은 난해함에 헤매는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천만 다행이다. 아감벤, 그리고 호모사케르의 개념을 잘 모르는 독자들은 옮긴이의 글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12.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 홍기빈

2012년 한국에서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설계하고 건설한 비그포르스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 지구적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자본주의의 파탄을 목전에 두고 1930년대의 자본주의의 위기를 돌파해낸 스웨덴의 경험은 지금 한국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풍요로운 삶이라는 목표 어느 것 하나도 희생시키지 않고 난관을 돌파해낸 비그포르스와 스웨덴 사민당과 같은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것.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그 속에서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 대안적 사회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대중적 정치운동을 조직하는 것. 부패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이라는 생각.

13. 공이란 무엇인가  - 김영진

<공이란 무엇인가> (김영진) 우리는 '색즉시공'이라는 말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심오한 말이겠거니 하며 넘겨짚었다. '공'이란 그리 쉽게 정의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불교에서는 팔다리가 움직인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갇힌 존재다. 사고에 갇히고, 감정에 갇힌다. '나'라는 실체 없음을 터득해야 하는 이유이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신을 만나고 인도에서는 자아에 내재된 우주의 실재를 만난다. 하지만 열반은 초월적 절대자를 상상하지 않는다. 붓다는 우주적이며 철학적 시시비비가 아니라 종교적 구원에 집중한다. '삶이 고해'라고해서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충 살지 말라는 충고이다. 대승불교의 중요한 개념인 '공'을 바라보는 책이다. 불교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던 만큼 '공'과의 첫만남은 신선했다.

신이철(김포 이편한치과 원장 건치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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