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은 치유제인가? 각성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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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은 치유제인가? 각성제인가?
  • 이두찬 기자
  • 승인 2013.01.0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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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영화산책…대선과 레미제라블과 미래

 

2012년에 이어 2013년에도 힐링이 한국사회의 핵심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 레미제라블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지난 연말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치유제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까지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둔 것 같다. 누적 관객수가 이미 지난 주말로 400만이 넘었다. 내 주변에도 관람 후 감동과 최루의 후기를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1914년 한국에서 육당 최남선에 의해 레미제라블은 처음 번역된다. 당시 제목은 ‘너 참 불쌍타’이다. 어찌보면 훌륭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다시 번역이 된 책 제목은 ‘애사‘ 이다. ’청춘예찬‘으로 유명한 민태원씨가 신문에 연재를 한 것이다. 그리고 신문연재의 마지막 날이 1919년 2월 8일 바로 도쿄에서 처음 독립선언서가 낭독된 날이다.

영화는 정말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은 것 답게 거대한 스케일로 시작한다. 160여 명의 죄수들이 몸으로 배를 끌어당기는 모습과 파리시내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일전을 준비하는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명장면 이다.

영화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은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자베르이다. 원래 주인공을 별로 좋아 하지 않기도 하지만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을 하는 지독한 원칙주의자 이다. 법 맹신론자에 가깝다.

그런 그의 죽음은 단순히 자신의 원칙이 깨진 것에 대한 분함 혹은 영혼파괴가 아닌 법리주의와 권위주의로 상징되는 봉건시대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 같다. 혁명에 실패해도 한 시대는 끝났다고 보여준다.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내 머릿속에선 광주를,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입안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4.19를 통해 대통령을 하야 시키지만 독재자가 재집권을 하고 독재를 끝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향해 어린아이를 향해 발포하는 모습 그리고 최후의 순간 모두 떠나지 않기를 각오하고 노래를 통해 언젠가 있을 승리를 확신하는 모습 등 광주를 연상시키는 장면은 많다.

어쨌든 영화는 한평생 숨어다니고 죽어라 열심히 살았던 장발장이 자신의 딸과 사위의 품안에서 행복하게 죽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끝으로 이 영화가 단순히 선거의 후유증을 치유하는 역할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한해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고 더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각성제의 역할도 했으면 좋겠다.

이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1년을 그리고 이후 5년을 힘껏 살아야겠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the song of angry men?
인민의 노래가 들리는가,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노래라네.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져 북을 울리고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내일이 밝으면 새로운 삶이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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