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골프장이 학교를 잡아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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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골프장이 학교를 잡아먹는다!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5.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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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역사에는 이른바 ‘엔클로져운동’이라는 것이 있다. 운동이라고 해서 무슨 스포츠나 사회운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지주들이 공유지를 사유화하고 소작인을 내몰아서 ‘프롤레타리아’로 만들었던 것을 뜻한다. 한자로는 ‘종획운동’이라고 번역하는데, 우리말로는 ‘울타리치기’로 옮길 수 있다. 공유지 곳곳에 울타리를 쳐서 소유를 구획하고 소작인을 내몰았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엔클로져운동’이 가장 활발히 펼쳐진 곳은 바로 영국인데, 영국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이 운동이 펼쳐졌다고 한다. 첫번째는 1200년대에 펼쳐졌고, 두번째는 1500년대에 펼쳐졌으며, 세번째는 1800년대에 펼쳐졌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1500년대에 펼쳐진 것인데, 양을 기르기 위해 지주들이 소작인을 대대적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당대의 최고지식인이었던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는 이 꼴을 보고 “어진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탄식했다.

여주의 한 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서 나는 문득 에라스무스의 탄식을 떠올렸다. 여주에서는 지금 골프장이 학교를 잡아먹고 있다. 주민들이 나서서 이 사태를 막으려고 했고, 여주군에서도 이런 주민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런데 행정심판위원회에서 나서서 주민들의 안타까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 학교 뒤에 골프장을 짓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5년 4월 6일치 「한겨레신문」은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골프장 옹호 판결로 말미암아 경기도 여주의 송삼초등학교가 처한 사정을 이렇게 전한다.

하늘소와 딱따구리가 살고 있는 학교 뒷산에서 가끔씩 노루도 운동장에 내려와 어린이들과 뛰놀았던 경기 여주군 가남면 송림리 송삼초등학교. 그러나 이제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조차 사라질 위기에 몰렸다.

송삼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서 불과 6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9홀짜리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한 주민들은 학교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6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면, 이 작은 학교가 지금처럼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 될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크게 세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첫째, 골프장으로 드나드는 길이 폭 5m 정도의 어린이 통학로로서 어린이의 통학이 크게 위험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골프장과 학교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골프공이 학교로 날아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세째, 골프장의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농약 때문에 지하수며 하천이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골프장은 ‘위험시설’이다. 소수의 쾌락을 위해 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위험천만한 녹색 들판’이 골프장이다. 주민들의 지적은 모두 올바른 것이었다. 경기도교육청도 수질․대기오염 문제를 들어 골프장 건설은 학교보건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냈고, 이에 따라 경기도는 올바르게도 골프장 사업승인 반려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골프장 회사에서는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했고, 이곳에서는 주민들과 경기도의 의견을 완전히 뒤집는 판정을 내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공공복리에 대한 판단 없이 단지 주민 반대 민원을 이유로 내린 (골프장 사업승인 반려) 처분은 위법․부당하다.

행정심판위원회는 경기도가 분명히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공공복리에 대한 판단’을 근거로 골프장 사업승인 반려처분을 내렸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단지 주민 반대 민원을 이유로’ 그런 처분을 내렸음으로 ‘위법․부당’하다고 판정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한 판정이 아닐 수 없다. 행정심판위원회는 골프장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인가?

‘엔클로져운동’이 그저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지주들은 각종 법을 만들어서 합법적으로 소작인들을 내쫓았다. 그렇게 해서 지주들이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 기가 막힌 세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지금 여주의 송삼초등학교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골프장 건설은 아마도 합법적으로 추진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법의 맹점을 이용해서 학교를 내쫓고 지역주민을 내모는 것이다. 행정심판위원회는 골프장이 학교를 잡아먹도록 부추기고 있다. 분노할 일이다.

2005년 4월 8일치 「한겨레신문」에는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의 판정에 관한 법제처 공보관의 ‘해명’이 실렸다. 그는 「한겨레신문」의 기사가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경기도가 허가신청을 받은 후 이에 대한 아무런 실체적 판단은 하지 않은 채 단지 민원이 야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허가신청을 접수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고 판정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기도가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행정심판위원회는 경기도의 반려처분이 이러한 절차상의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정했을 뿐이고, 골프장 건설을 허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경기도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는 것이다.

이 ‘해명’에 따르면, 행정심판위원회의 판정으로 골프장 건설이 허가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경기도의 반려처분이 ‘단지 민원이 야기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는 주장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 주민들이 2년이 넘도록 이의를 제기하고 항의를 해왔으며, 경기도교육청에서도 환경문제를 이유로 학교보건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냈다. 법제처 공보관의 ‘해명’에는 2005년 4월 6일치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러한 ‘실체적 판단’의 근거를 논박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이 기사를 ‘사실과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해명’은 좀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법제처 공보관이 생각하는 경기도가 했어야 하는 ‘실체적 판단’은 어떤 것인가? 절차의 적법성이 내용의 위법성보다 중요한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기만 한다면, 학교가 폐교되고 지역사회가 파괴되어도 좋은 것인가? 주민들이 2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지적한 많은 문제들을 행정심판위원회는 어떻게 다루었는가? 왜 주민들은 행정심판위원회의 판정에 대해 ‘탁상행정’이라며 분노하는가? 법제처 공보관은 과연 이런 사항들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여 ‘실체적 판단’을 내려서 그런 ‘해명’의 글을 썼는가?

이헌재씨는 투기의혹에 앞서서 ‘골프경제론’으로 ‘악명’을 얻었다. 전국에 240개의 골프장을 건설해서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에 많은 사람들이 혀를 내둘렀다. 골프장은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소수의 유한계급을 위해 지역의 자연과 사회를 파괴한다. 이 정권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소수의 유한계급을 위한 골프장이 아니라 다수의 보통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지역의 학교를 살리는 것은 그 중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학교가 사라지면서 ‘떠나는 농촌’의 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학교가 없으니 자녀들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송삼초등학교를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대단히 값진 것이다. 그것은 골프장을 한 축으로 하는 토건국가에 맞서서 지역을 지키고 자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마음 속에 새겨야 할 ‘실체적 판단’이다.

홍성태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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