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초보 장애인치과의사의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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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초보 장애인치과의사의 성공담
  • 황지영
  • 승인 2013.05.16 17:1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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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치과병원의 하루]

 

2005년, 처음 장애인치과병원이 개원했던 당시에는 사전 준비과정에서의 홍보를 접하고 전화 예약을 하고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너무 많아서 6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서울시 아니 전국에서 처음 생기는 장애인만을 위한 전문치과병원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 게다.

그동안 장애 때문에 일반 병원에서는 진료를 받기가 어려웠던 관계로 치과치료를 포기하고 있다가 소식을 듣고 기대감을 가지고 예약을 한 환자도 많이 있었고, 경제적인 문제로 치과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진료비 할인혜택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예약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도 많았다.

사실 처음 장애인치과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당시, 장애인 진료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곤 치과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배운 기본적인 [장애인 치과학]의 내용이 전부였고 함께 근무하는 사람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병원의 규모와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환자 수에 비해 전체시간을 근무하는 치과의사는 나뿐이라 턱없이 부족했고, 수탁을 맡은 서울시치과의사회 임원진들이 돌아가면서 환자를 보는 가운데 새로운 의사를 뽑는 면접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경험을 가지고 이끌어 주는 선배 없이 시작한 병원생활은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긴 기다림의 시간만큼 더욱 커진 기대감을 가지고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분들을 만나고 주소를 확인하고 구강건강상태 및 전신건강 상태, 장애 정도 및 경제적인 상황을 파악하여 치료계획을 세우는 일은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환자를 만나게 된 나에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나 병원의 특성상 내원하는 환자의 대부분이 장시간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탓에 매우 불량한 구강상태를 가지고 있었으며 치료에 대한 협조도 역시 좋지 않았으니...

지금 그 시절을 생각하면 하루의 모든 시간이 환자를 위한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파노라마와 진단인상모델을 가지고 책과 함께 씨름하고, 동기와 선후배와 전화로 상담하고 직접 모델을 들고 찾아가기도 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 아니 무모함이 나와서 겁도 없이 환자를 만났던가 놀라게 된다. 물론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닐 터이니...

아무튼 비록 힘들긴 했지만 직접 몸으로 부딪히면서 익힌 것들은 참으로 빠르게 나의 것이 되어 갔고, 조금씩 병원의 구성원도 충원돼 갔다. 지금처럼 안정적인 진료진이 갖추어진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의 일이었지만, 처음 개원 당시를 생각하면 조금씩 아주 천천히 병원 구성이 형체를 이루어가던 시절이었음이 분명하다.

그 멋모르던 시절을 함께 시작한 환자가 있다. 차트번호 3번, 2005년 8월 16일이 첫 내원일인 환자 A씨. 차트번호 1번이 Test 번호였고 차트번호 2번의 환자가 첫 내원 후 재진 기록이 없음을 감안한다면 정말 우리 병원의 첫 번째 환자이며 이후 정기검진을 통해 지금까지도 병원에서 관리를 받고 있는 환자이다.

A씨는 내원 당시 만 43세로 지적장애 2급 환자였다. 병명은 ‘딱딱하거나 질긴 것을 잘 못 씹는다’ 였는데, 파노라마와 구강검진 소견을 보면 상하악전치부 4전치를 제외한 모든 치아에 깊은 치경부 우식증을 가지고 있었고, 상악 좌우측 제1,2대구치와 하악 좌우측 제1대구치는 우식으로 인한 잔존치근상태였다. 구강위생이 매우 좋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치석침착과 치주염 소견을 보였다.

치과를 방문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특이한 가족력은 없었으나 현재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정신과 약을 복용 중에 있었다. 환자는 투약에 기인한 듯한 구강건조증 소견을 보였고, 대화를 전혀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동반한 보호자는 남동생의 부인이었는데, 혼자서 살고 있는 환자를 데리고 함께 병원에 내원한다고 했다.

환자는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병원 내원 시에도 반드시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보호자는 아직 어린 자녀가 있어 장기간의 치료와 많은 내원회수를 어려워하였으며 denture의 사용 및 관리 가능성에도 매우 회의적이었다. 결국 현실적인 면을 고려해 short dental arch 수복을 계획하여 상하악 대구치를 모두 발치하고 나머지 소구치와 견치의 신경치료와 포스트 및 금관수복을 끝으로 치료를 종료했다.

치료와 함께 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TBI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내원시마다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재교육과 주의를 반복했으나 쉽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결국 보호자와 지속적인 상의 끝에 환자의 남동생이 매일 저녁 직접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칫솔질 상태를 확인하고 하루 한 번씩 이를 닦아주며 적극적으로 관리에 협조해 주었다.

이런 노력의 결과였을까? 치료가 끝나는 시점에서 환자의 구강위생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고 남동생의 방문도 더 이상 필요 없어졌으며 이어진 1개월 검진은 2개월, 4개월 검진으로 점점 간격이 벌어졌다. 치료 종료 2년 후, A씨의 차트에 ‘Oral Hygiene Good!'이라고 힘차게 쓰인 메모와 함께 이후에는 가까운 병원에서 검진을 시행하고 1년, 2년 주기로 방문하도록 하였다.

그 사이에 A씨의 말랐던 얼굴에는 하얗게 살이 올랐고, 어둡던 얼굴의 인상도 바뀌어 간단한 질문에는 대답도 하고 가끔은 수줍은 듯한 미소도 보여주게 되었다. 처음 치과 방문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느낌을 받았던 보호자 분은 그 치료와 검진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고 꾸준히 A씨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고, 구강위생관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병원에 그렇게 모시고 오기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 아유.. 힘들었지요. 동네 치과에서는 치료해주기 힘들다고 겁을 내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애들 때문에 시간 내기도 어려웠고...  남편한테도 제가 화내면서 당신도 형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하지 않겠냐고~ 그때 남편도 매일 고생했지요. 그래도 아주버님이 병원 오는 거 좋아해요. 나들이 하는 것 같나 봐요. 담당선생님 계속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하고 대답하며 웃었다.

사실 처음 보호자의 상황에 맞추어서 치료계획을 세우면서 치료에 조금 더 적극적이지 않는 보호자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결정된 치료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협조와 서서히 쌓여가는 믿음 속에서 능력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었기에 더욱 기쁨으로 남았다.

나와 우리 진료팀, A씨와 남동생 그리고 그 부인... 분명 우리가 한 팀이 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완전 초보였던 장애인치과병원 의사의 몇 안되는 성공담이다. 

황지영(서울시립장애인치과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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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충상 2013-05-27 01:45:13
^^ 즐겁게 읽고나니 제 자신을 반성하게 하는 글이네요~

조승호 2013-05-21 13:26:10
의술은 모든의사가 똑같은 인술이라 생각합니다 의사가 환자입장에서 환자를 도본다면 그 이상의 고마운일이 어디에 또 있갯습니까 황지영 원장님은 용모도 미인인데 마음까지 아름다우시니까 대성공을 하신겁니다 앞으로도 더욱 좋은일이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전양호 2013-05-20 10:47:18
제가 보기엔 A씨의남동생부인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은데요...좋은 원고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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