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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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노동자가 없으면 음악도 없고, 음악이 없으면 삶도 없다.
  • 김랑희
  • 승인 2013.05.2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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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아름다운 기타와 해고된 노동자 그리고 공장

2007년 인천 부평의 콜트 기타공장에 갔다. 정리해고가 된 기타노동자들을 연대하기 위해서였다. 공장 앞마당에서 집회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장 안에는 정리해고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작업대 앞에서 기타를 만들고 있었다.

▲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밴드 '콜밴'

그들은 정리해고에 분노한 동료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공장이라는 곳을 들어간 나는 그날의 광경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높은 천장으로부터 내려온 형광등은 노동자의 머리맡에서 작업대를 비춘다. 작업대에는 각 공정에 필요한 기계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대부분 손으로 작업하는 공정을 도울 뿐 예상했던 현대식 공정의 기계가 아니었다.

처음 알았다. 기타는 사람의 손으로 깎고, 문지르고 칠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공장 안은 나무가루가 날리고 기타의 색을 입히는 곳에서는 독한 화약약품 냄새가 났다. 공장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낡고 열악해서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 병이 들 것 같았다. 공장 안을 한 바퀴 돌면서 구호도 외치고 설명도 들었다.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작업과정의 기타들은 점점 완성된 모습을 갖추어 갔다. 마지막으로 예쁘게 색을 입고 광도 나는 다양한 색깔의 기타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기타들이 너무 예뻐서 공장은 더 초라해 보이고 기타노동자들이 더 안타까워 보였다. 해고된 노동자와 살아남은 노동자가 마주한 그 시간과 공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 혼자 빛나던 그 기타들 때문에 내 마음은 아릿한 슬픔에 잠겼다.

 

2310일의 시간

콜트기타를 만드는 주식회사 콜텍은 인천과 대전에 공장이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공장(창문이 있으면 밖을 쳐다보느라 일을 게을리한다는 이유로)에서 나무분진에 폐가 망가지고, 기계에 손가락이 잘리며, 성추행이 일어나던 곳. 최저임금에 마스크도 1주일에 1개만 지급되어 빨아서 써야했던 그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타는 아이바네즈, 펜더, 깁슨, 토비아스, 나인식스, 파커 등등… 뮤지션들이 열광하는 기타 브랜드로 팔려나가 세계 기타 생산량의 30%를 생산하는 기업이 되었고 박영호 사장은 한국 120위의 부자가 되었다.

그동안 기타노동자들은 몸이 망가졌고, 받아야 할 정당한 임금은 받지 못했고 받지 말아야 할 모욕은 늘어만 갔다. 기타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회사와 맞섰다. 10분의 휴식시간을 따낸 노동자들은 기뻐하며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극도로 혐오하는 사장은 얼마 뒤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는 이미 준비된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 기타를 만들고 있다. 그렇게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다시 기타를 만들지 못하게 된 지 오늘로 2310일째다.

2310일의 시간이란 해고된 노동자의 딸이 중학교에 입학해서 대학에 진학하게 되기까지의 시간이며, 해고된 채 거리에서 정년퇴직을 맞이하게 된 시간이고, 6번의 해외원정 투쟁과 철탑고공 단식농성을 진행하면서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낸 시간이다. 기타노동자의 이야기가 두 편의 장편영화로 만들어진 시간이고, 수많은 뮤지션이 기타노동자를 응원하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시간이다. 그리고 용역의 폭력과 잔인한 사장의 태도에 분노하고, 30년을 노동한 공장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울음을 흘리면서 복직을 되새김질하는 기타노동자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켜낸 시간이다.

▲ 불매운동에 참가한 시민들
 

여전히 투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싸우고 있나요?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 물음에 답하기는 쉬우면서도 어렵다. “부당하니까요.” 질문한 사람은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고민하다 내가 해고되었을 때가 떠올랐다.

첫 직장에서 7개월 만에 해고되었다. 장시간 노동에 여성에게 차별적이고 노동자에게 무례한 회사였지만,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었고 또래 동료와도 즐거웠다. 사장입장에서만 가족적인 분위기 강요가 맘에 안 들고 권위적인 상사가 너무 싫었지만 계속 회사에 다닌 것 월급 때문만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 얻는 성취감이나 나의 삶을 스스로 일궈나간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해고는 나의 지난 노동의 시간과 회사에 대한 기여를 부정하고 내가 그린 미래의 삶의 계획을 박탈한 것이었다. 해고의 이유(사장에게 커피를 가져다주지 않아서)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 모욕적이었고, 그동안 참아온 것에 대한 배신감이었다. 그러면서 그동안 왜 참았을까 후회하면서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는 해고를 인정할 수 없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자신들이 만든 기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던 그들은 기타만 보면 어느 기타인지 확인하고 자신이 만든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자랑했다. “내가 만든 기타야.” 해고된 이후에도 그들은 기타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몸값은 기타 한대보다 싸다고, 눈물을 참아가며 기타를 만들어서 기타를 누르면 눈물이 나온다고 말한다.

기타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기타에 대한 애정과 낮은 임금이지만 미래의 삶을 계획하면서 고된 노동을 견뎌왔다. 성실하게 일하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단순한 노동의 믿음으로 살아온 그들의 삶과 노동을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해고다. 그래서 인정할 수 없는 부당한 해고, 그렇기 때문이 긴 시간을 싸울 수밖에 없는 이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불매운동에 참가한 시민들[출처:콜트콜텍 공동행동]

기타 노동자가 없음 음악도 없고, 음악이 없음 삶도 없다.

정리해고 투쟁 7년째에 기타노동자들은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말을 시작한다. ‘콜트기타불매’ 언제가 다시 돌아갈 공장이기에, 여전히 자신의 손으로 만든 기타를 사랑하기에 꺼낼 수 없었던 말을 사람들에게 외친다.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기타를 사랑했기 때문에 ‘콜트기타불매’를 호소한다.

음악은 삶과 사랑을 노래하며 인간다운 삶의 세상을, 희망의 미래를 그린다. 음악은 착취와 폭력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타노동자들의 착취로 만들어진 기타로는 노래할 수 없다. 기타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착취와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매운동을 함께하자고 한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기타가 사장의 탐욕을 채우는 이윤의 도구가 아니라, 자유와 삶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길 원한다. 

얼마 전 불매캠페인에서 만난 사람이 콜트기타를 안다고 했다. 그에게 기타노동자들 이야기를 하며 곁에 있는 해고노동자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콜트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라고 알려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는 해고노동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마치 기다려온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는 듯이. 아마도 그는 콜트기타를 아끼는 사람인가 보다.

그렇게 그는 기타노동자의 노동을 존중하고 고마워했다. 그가 보여준 태도처럼 인간의 삶을 자유롭게 만드는 음악은 노동에 대한 존중과 정당한 가치, 악기노동자의 사회적 권리가 존중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들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 삶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는 기타를 만들길 원한다.

▲ 불매운동에 참가한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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