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의 할매와 할배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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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할매와 할배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 김랑희
  • 승인 2013.06.17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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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맨몸으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어제도, 오늘도 사람들이 쫓겨난다. 쫓겨남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떠나는 사람도, 이렇게 쫓겨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저항하는 사람도 그 마음의 서글픔과 분노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있던 자리,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머무르고 싶은 자리를 지켜내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인 줄 생생하게 몸으로 느낀다.

쌍용차, 재능,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진주의료원의 병원노동자와 환자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무색한 임대상인들, 강정과 밀양의 주민 모두가 쫓겨날 수 없는 자리를 몸으로 지켜내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있을 수 없는 자리를 탐하며 돈과 권력을 이용해 그 자리를 차지하지만, 어떤 이는 맨몸으로 자신의 자리를 버텨낸다. 돈과 권력으로 유지하는 자리는 과시하며 사람을 업신여기지만, 맨몸으로 지키는 자리는 묵묵히 삶을 살아가며 서로 보듬는다. 가진 것이 몸밖에 없어서 몸으로 지키지만, 몸으로 지키기 때문에 그 어떤 가식도, 허영도 없이 진실하다. 그 진실함 때문에 내 몸도 그들의 몸에 보태고 싶어진다.

쫓겨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모욕

얼마 전 온몸으로,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밀양의 할매와 할배를 보고 많은 사람이 가슴 아파하고 분노했었다. 스스로 목에 줄을 매고 맨몸을 보이며 지키고 싶은 것은 ‘그냥 땅’이 아니다. 할매들의 몸은 그냥 나이 든 몸이 아니라 땅을 일구며 자식을 키워온 시간들과 바꾼 몸이고, 땅과 함께 살아온 흔적이자 기록이다.

할매들은 자신의 몸으로 송전탑이 세워지는 그 땅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한전과 경찰은 그 땅을, 할매와 할배를 모욕하고 무시하고 있다. 그 모욕은 한전직원이 내뱉는 욕설이나 비아냥, 폭력만이 아니다. 할매와 할배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것, 그들의 요구와 대안을 묵살하고 폄훼하는 것, 그들의 마음에 품고 있는 땅에 대한 애정과 소박한 삶의 희망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누군들 내가 살고 있는 곳에, 일구어 온 터전에 송전탑이 세워지는 것을 좋아할까. 그러나 나라를 위해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밀어붙이고 있다. 그럼 송전탑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일까? 그들에게 우리 모두를 위해 너의 것을 조금 희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때때로 도시에서 주거지 주변에 장애인시설이 세워 지려 할 때 반대하는 사람들을 님비(not in my backyard)라고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무리 보기 좋게 포장하여도(교육환경을 저해하고 위험하다, 주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등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유들이지만) 결국은 아파트값이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타인과 함께 살고 싶지 않은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재산가치를 지키거나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하지 않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돈의 가치로 환산한다. 그렇다면 밀양의 경우는 어떨까? 할매와 할배는 평생 가꾼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없다고 말한다. 도시 사람들처럼 세련되게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보상을 더 많이 해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 차라리 그 돈으로 지중화 개발연구를 해달라고 한다. 재산을 지키겠다는 분들이 돈은 필요 없다고 한다. 그들에게 땅은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다. 할매와 할배가 말한 자신들의 재산은 무엇일까?

할매와 할배의 소중한 재산

할매와 할배를 이야기를 듣다가 대학생이던 시절 농활을 간 기억이 떠올랐다. 처음 가는 농활이고 시골에서 살아본 적도, 농사를 지어보기는커녕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내심 긴장이 되면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열의가 있었다. 농활을 가기 전 교양이라는 것을 하고 가서 학생들이 농민들과 해야 할 활동, 이야기에 대해 교육도 받았다. 당시 우루과이라운드, WTO가 가장 중요한 이슈여서 이것이 얼마나 문제인가, 우리가 왜 막아야만 하는가에 대해 농민들에게 설명하자는 교육이었다.

처음 듣는 내용에 전에 전혀 몰랐던 농업 현실의 문제였지만 열심히 얘기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농민아저씨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육받은 내용을 알려줘야겠다는 계획은 나의 부끄러움으로 막을 내렸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 살던 할아버지에게서 땅의 이야기, 농민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어쩌자고 이들에게 뭔가 가르칠 생각을 했던 건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열심히 알려줘야지 했던 내 결심은 교만함이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그 땅을 정성껏 일구고 사는 농민이다. 농사가 잘되고 안 되고는 내 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에 땅을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한 번도 농민의 노동, 농촌과 농업의 문제에 관심도 없던, 농사지으며 시골에서 살 생각도 없던 내게 할아버지는 농부인 자신의 삶에 대한 당당함과 땅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셨다.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 땅과 자신의 노동이 할아버지의 삶의 힘이고 전체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밀양의 할매와 할배가 말하는 자신들의 재산이 바로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밀양 주민에게 “당신들은 전기 안 쓰고 사느냐”며 마치 이들의 저항을 지역이기주의로 몰아붙이기도 하고, 보상을 더 받으려고 한다고 한다. 한전 부사장은 밀양 주민의 반대가 종교단체들의 ‘세뇌’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할매와 할배는 국민 전체를 위해 희생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욕심쟁이가 되었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땅과 함께 한 노동과 삶을 그저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모욕적이었을까. 자신들뿐만 아니라 이 사회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의 의견이 국가의 이름으로 무시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

할매와 할배가 몸으로 던지는 질문들

송전탑과 밀양 주민의 기사들을 보던 중 나의 마음을 머물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인권활동가 류은숙이 소개한 ‘농민과 농촌지역에서 일하는 여타 사람들의 권리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the rights of peasants and other people working in rural areas)이었다. 선언은 농민은 자신들의 땅과 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어떠한 프로젝트, 프로그램 또는 정책에 대해서도 정책 구상, 의사결정, 이행과 모니터링에 참여할 권리를 갖고 있고(제2조 4), 농민에게는 현지의 농업 가치를 파괴할 수 있는 개입을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제9조 3), 환경 파괴를 일으킬 모든 형태의 착취를 거부할 권리(제11조 3)를 명시했다. 또한, 농민은 억압에 저항할 권리와 자신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평화적인 직접 행동에 호소할 권리도 가진다(제12조 5)고 선언했다. 할매와 할배가 이런 권리를 지식으로 알고 있지는 않겠지만 이미 그들은 행동으로, 몸으로 이 선언의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45층 건물 높이 140m의 거대한 765kV 초고압 송전탑이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묻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자력발전의 안전성과 필요성에 의문이 생기고 반성이 이어지고 있을 때 이웃나라의 비극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안전하고 깨끗한 전기라며 원자력발전소를 늘려가는 것이 우리의 해답인지 묻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시골에 세워진 발전소와 송전탑을 통해 편하게 전기를 쓰고 있다. 앞으로도 그들의 삶의 터전과 아름다운 풍광과 그들의 건강과 맞바꾼 발전소와 송전탑을 통해 전기를 써야 할까?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삶의 자리를, 땅과 함께 늙어가고 싶은 삶을 원자력발전소와 바꿔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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