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불평등 초래한 강대국 이권 속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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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불평등 초래한 강대국 이권 속셈
  • 르디플로
  • 승인 2013.07.2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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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로]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 7월호

 

강대국들이 세계인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타주의나 박애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자국의 안보, 경제, 지정학적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국제기구에 할당된 기금을 향후 수십 년간 모든 문제가 집중될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지역을 위해 우선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 유엔 193개 회원국과 23개 국제기구는 8개의 ‘밀레니엄 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MDGs)를 설정했다. 지금부터 2015년까지 빈곤, 기아, 불평등을 감소시키고 보건의료 서비스, 안전한 식수, 교육 접근을 개선하는 데 ‘최소의 발전수준’을 달성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시 세계보건기구(WHO)의 그로 할렘 부룬틀란 사무총장은 즉시 도전에 걸맞은 재원 확보를 우선과제로 설정하고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특별고문인 제프리 삭스에게 ‘거시경제와 보건 위원회’의 의장직을 맡겼다. 위원회의 임무는 보건 분야에서 밀레니엄 개발목표가 신속히 실현될 수 있도록 재원을 찾는 것이었다.(1)

2000~2007년, 백신과 의약품 제조회사들도 참여한 세계 민관 공동기금의 모금액이 4배로 증가했다. 2001~2010년에는 3배 증가했는데 2010년에 282억 달러로 최고에 달했다. 미국의 민관 공동기금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2012년에 빌앤멜린다 재단만 약 9억 달러를 기부했다. 가장 큰 수혜자는 아프리카로 2010년에 전체 기금의 56%를 지원받았다.(2) 2000~2007년에 개발원조액은 61% 증가했고, 2010년에는 1억4840만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밀레니엄 개발목표의 실현은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만큼이나 멀리 있다. 재정의 부족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2015년부터 추진하게 될 ‘새로운 목표’를 준비하기 전 이 요인에 대해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3) 원조금 공여 기준이 전염병, 국가 또는 질병의 심각성뿐 아니라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강력한 동기인 상업적 이익, 역사적·지정학적 관계도 고려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 보건의 역사를 살펴보면 19세기에 보건 관련 첫 국제회의가 열리게 된 동기는 페스트, 콜레라, 황열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무역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검역조치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의료계, 보건분야, 산업계, 정치권 사이의 긴장은 세계 공중보건 문제에 내재하는 역설적인 등식을 만들어 냈다.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으로 야기된 빈곤층의 의약품 접근에 관한 문제는 힘겨루기까지로 치달을 수 있는 긴장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었다.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세계기금(약칭 세계기금)의 설립자들과 협력기구들은 세 가지 질병의 퇴치전략이 모든 나라에 적용 가능하고 ‘필요한 것은 재원뿐’이라고 전제했다. 보건문제에 대한 재정적 시각과 제한적인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계기금이 설립되었을 때 상황으로 돌아가야 한다.     

 

▲ <문장(紋章)>, 2009-잔 수스플라가스와 알랭 데클레크
미국, 글로벌 보건에 위협 느껴

1996년,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은 전염병에 더욱 중점을 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타주의의 발로가 아니라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가 이유였다. 미 행정부는 이미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부터 전염병의 확산, 그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더딘 새로운 분자개발, 더욱 강해지는 항생제 내성, 인구 이동, 도시화, 최빈국의 취약한 보건위생 체계 등에 위협을 느꼈다.

1997년 미 의학협회는 세계 보건에 ‘미국의 중요한 국익이 달려있다’고 지적한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보건’(Global Health)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보건을 국내 문제로 국한시키기에는 세계 여러 국가가 너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글로벌 보건’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한 이유는 보건 문제가 국경을 초월하고 한 나라에서 발생한 일에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최고의 해결책으로 협력을 고려해볼 수 있다.”(4)

에이즈가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 놀라운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199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방부가 발간한 보고서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보고서는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군인들의 HIV 바이러스 감염률이 매우 높고, 그래서 각국의 국방력이 단기적으로 국내외의 분쟁을 해결하는데 충분하지 않을 것으로 지적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nternational Crisis Group)도 많은 국가들이 “곧 평화유지 능력에 문제가 생길 것(5)”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1999~2008년 미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전례 없이 세계 보건 문제에 관한  6개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보건 문제를 전 세계에 군사기지가 있는 미국의 ‘비전통적 위협요인’으로 규정했다.              

이 ‘위협’은 유엔에까지 미쳤다. 역사상 처음으로 2000년 1월 10일 열린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분쟁의 위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주제인 ‘아프리카 정세: 에이즈가 아프리카의 평화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이 의제로 채택되었다. 미국이 회의를 주도했다. 부통령 알 고어가 오전에, 주 유엔 미국 대사 리차드 홀부룩이 오후에 회의를 주재했고, 여러 개의 결의안이 채택 되었다. 2001년 6월 27일 유엔 총회 특별 회기에서 채택된 결의안 90조는 세계 보건과 HIV, AIDS를 위한 기금 창설을 촉구했다. 기금을 통해 예방·관리·지원·치료 등 총체적인 접근 방식으로 에이즈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재정지원하고 각국의 에이즈 퇴치 노력, 특히 에이즈가 가장 심각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중남미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퇴치 노력을 지원하자는 것이었다.

세계 기금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주도로 주요 8개국(G8) 회원국이 참여해 설립되었다. ‘보건 및 에이즈 기금’으로 제안된 것과는 달리 민관합동투자 (PPP)의 임무는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이 세 가지 질병에만 국한되었다. 미국의 국가안보정책은 공산주의, 테러리즘, 질병같이 싸워야 할 대상에 대한 공포에 근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미국 국방정책에 영향을 주는 미국인들의 ‘트라우마’이다. 미국은 세계 보건 이권에 자국의 위치를 보호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마저 도구화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제약업계에 유리한 패러다임

아프카니스탄전과 이라크전으로 점철된 10년을 보낸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새로운 전략은 미국을 ‘외국에서 일어나는 분쟁’에서 다른 전장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른바 ‘미국의 세계적 리더십 회복’으로 질병 통제도 새 전략에 포함되었고, 2010년 국가안보전략에도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2012년 7월 미 정부는 국무부 내에 세계보건외교국(Office of Global Health Diplomacy)의 신설을 발표하면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퇴임하기 바로 전에 신설됨) 보건 분야에서 통제력과 지배력을 갖기 희망한다고 밝혔다. 당시 관련 보도자료는 “미국은 내부적 리더십(다시 말해, 국내 보건협력 기구 사이의 리더십)에서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세계적 리더십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관계 역사가 조지 헨리 수투는 ‘미국이 오늘날의 진정한 강국은 정부 간 그리고 초국가적 두 영역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라고 분석했다.(6)

지난 수십 년간의 보건정책의 기조를 분석해보면 세 가지 개념을 도출해볼 수 있다. 경제적 투자로서의 보건, 안보 도구로서의 보건, 외교정책의 기본요소로서의 보건이 그것이다 (여기에 자선사업과 공중보건을 추가할 수 있다. 데이비드 스터클러와 마틴 매키는 이 두 요소가 더해져 보건정책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7)).

정치에서 안보개념은 보건체계를 제도화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포괄적이며 체계적인 접근 방식이 아니라, 단기적 위기상황과 질병통제를 의미한다. 거의 15년 동안 추진되었던 재정지원 정책의 미래가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러한 고찰은 재정지원의 한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세계기금이나 미 정부가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 (Prefar)(8)을 통한 지원이 금액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현장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 예방에 중점을 둔 지원정책이나 인구, 도시, 사회, 경제, 분쟁의 역학에 따른 그리고 질병확산의 국가별 차이 등에 따른 정책조정과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고려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즈가 처음 보고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지역적인 차원에서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전염병학적·인류학적·경제적 연구에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2명이 치료를 받으면 5명의 감염환자가 새로 생겨나고 있고, 무력분쟁이 확산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성폭력이 여성 에이즈 환자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의 가설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몇 백만 달러의 세계기금 유용사건이 터졌을 때 효율적인 전략으로 정평이 나있는 나라에서조차 상황에 대해 분석하지 않고 화만 냈다. 외부 영향력에 좌우되고 있는 자금 지원의 우선순위는 HIV 바이러스의 전염 예방이 아니라 제약업계에 유리한 치료 중심의 패러다임이다. 

개발 원조와 관련해 많은 기구와 단체들이 일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의사결정자’와 ‘협력기구’ 사이에 생긴 거버넌스 문제로 둘 사이의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졌다. ‘협력기구를 통한 자금 배분이든 혁신적인 지원 방식이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에 대한 책임은 세계기금 사무국이 아니라 이사회가 져야한다. 기술과 전략적 부분은 각국과 협력기구 (유엔에이즈계획, 유니세프, 세계보건기구)에서 다뤄야 한다. 그렇다면 유엔 기구가 세 가지 전염병 퇴치를 위해 기술 지원할 때 국가별 차이를 고려했는가? 답이 부정적이라면 이제 실수를 인정할 때가 되었다.

아프리카, 프랑스, 유럽은 앞으로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050년까지 아프리카의 인구는 10억명에서 20억명으로 2배로 늘어나 전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게 된다. 경제학자 프랑수아 부르기뇽이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불평등의 세계화’에 대한 자신의 저작을 소개하면서 “빈곤은 (엄밀한 의미의) 지금부터 2040년 혹은 2050년까지 전적으로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9)

현재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아프리카에서 암, 당뇨병,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정신 질환, 환경오염 관련 질환과 같은 만성 질환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아직 그 규모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너무 늦게 진단을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해 새로운 전염병처럼 번져가고 있다. 여기에 도로 사고가 더해져 이미 부족한 인력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의료담당자들의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보건의료 불평등은 경제적·사회적 불평등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보험제도와 사회보장제도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고 지역별 편차도 크다. ‘보편적 의료보험’이 국가 우선정책이 되고 특히 예방정책에 바탕한 것이라면 빈곤층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프랑스와 유럽 사이에 이어져온 수세기 동안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와 통상관계를 고려해볼 때 아프리카는 여전히 유럽으로부터 정치적 기여, 경험, 재정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정한 우선순위에 유럽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프랑스어권인 서부 및 중앙아프리카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심각한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개발목표를 2015년 이후의 ‘지속 가능한’ 세계 개발 목표와 통합할 때 다시 한 번 취약국과 취약한 국민들을 소홀히 하고 전 세계의 공동이익에만 관심을 가질 위험이 있다. 취약국과 취약계층을 위한 우선정책은 여자아이들의 교육 (고등교육 단계까지), 산모의 건강, 알려지지 않은 열대 질환 그리고 복잡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에 집중되어야 한다.

 

부족한 재원 마련이 과제

보건의 중요성을 변호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보건이 개발의 좋은 수단인가라고 묻는 사람은 보건과 개발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를 만들기 위해 건강을 도구화할 필요는 없다. 다시 말해 건강이 경제성장에 공헌한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고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은 강조하고 있다. 지속적인 개발 방법으로 소개되는 보편적 의료보험이라는 단 하나의 재원 마련 메커니즘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지속적인 보건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글•도미니크 케루에당 Dominique Kerouedan
주요 저서로 <세계 보건의 지정학> (Fayard, 파리.2013), <세계 보건:개발도상국에서의 보건 문제>(Presse de Science Po. 파리. 2011) 등이 있다.

번역•임명주 myjooim@gmail.com

(1) Philippe Rekacewicz, ‘Défis du Millénaire en    matière de santé' (보건 분야의 밀레니엄 과제),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 6월호.
(2) ‘Financing global health 2012. Has the golden    age of global health funding come to an end ?’, <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 시애  틀, 2013년 2월호.
(3) 2008년 세계기금 5년 평가보고서, 2009년 EU 집행  위원회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보건의료 지원에   관한 유럽회계감사원 보고서, <Institute for Health Metrics and Evaluation>이 발간한 다수의 연구 자료.  
(4) ‘America’s vital interest in global health: protecting our people, enhancing our economy, and advancing our international interests’, <Institute of Medicine>, 워싱턴 DC, 1997.
(5) ‘HIV/AIDS as a security issue’, <International    Crisis Group>, 2001. 6월 19일.
(6) Georges-Henri Soutou, ‘Le nouveau système    international’(새로운 국제적 시스템), <아킬롱>, 5호, 파리, 2011년 7월 1일자.
(7) David Stuckler et Martin McKee, ‘Five metaphors about global health policy’,    <The Lancet>, vol. 372, 9633호, 런던, 2008. 7월호.
(8) The United States’ President Emergency Programme for AIDS Relief,
www.pepfar.org
(9) François Bourguignon, ‘Towards the End of Poverty’, <The Economist>, 2013. 6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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