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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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①
  • 이상윤
  • 승인 2013.07.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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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대 이후 지난 140년간 전지구적으로 평균수명이 늘고 사망률이 줄어들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이는 평균적인 것이고 신자유주의가 휘몰아친 1980년대 이후 지역간, 국가간 격차는 오히려 증가하여 사망 불평등은 증가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지구적으로 평균수명이 향상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이 극적인 사망률 감소가 가능했던 것은 생산력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와 ‘공중위생운동’ 덕분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드라마틱했던 이 상황에 의료 혹은 생의학이 기여한 바는 극히 적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50년대까지 사망률 감소에 있어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공중위생운동이다. 소득이 오르고 그에 따라 영양상태가 나아진 것이 주된 이유라는 설명이 최근까지 우세했지만, 다른 역사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역시 사망률 감소에 기여했던 바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1). 사망률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1870년대 이후 공중위생운동이 본격화되면서 하수 처리를 통한 깨끗한 상수도 보급, 더 나은 주거 환경과 오염되지 않은 음식물이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질병에 대한 예방적 접근 수단의 발전에 따른 것이지, 치료 방식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1950년대를 전후하여 소위 ‘치료 혁명’이 일어났고, 이 이후 의료와 생의학에 대한 집중적 투자와 발전이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전한 현대의료와 생의학의 효과 역시 논란이 있다. 엄청난 규모의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었지만 전체 사망률 감소에 기여한 비율은 10~15%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과학 분야의 공공 및 민간 연구개발비는 총 GDP의 0.2%에 불과했고, 생의학 연구는 이 중에서도 지극히 일부를 차지했을 뿐이다.

오늘날 생의학 연구 규모는 상당히 커졌으나, 그로 인한 사회적 효용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비효율과 낭비가 극심하다.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현대의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달한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과 화학을 적극적으로 의료와 접목시키면서 효과를 극대화시켜 왔고 몸집을 불려왔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사망률 감소와 같은 ‘순수한’ 의료적 효과보다는 생산력 발전과 이윤 추구라는 가치와 이러한 경향이 합치했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유전학, 생명공학 등과의 결합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며 이제는 다른 산업에 대한 연관 부문으로서만이 아닌, 독자적 이윤 창출 부문으로서 ‘건강/생명’ 산업으로 부상하기에 이르렀다.

다소 투박하게 정의하면 건강/생명산업이란 ‘질병 치료/예방, 건강 증진, 생명 연장,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사용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들로 이루어진 산업’이다. 이러한 산업 부문은 의료기관, 제약기업, 의료기기기업 등과 같은 전통적 행위자들 외에도 민간의료보험기업, 치료재료 생산 기업, 치료기술 생산 기업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광의의 의미로 보면 식품기업, 화장품 등 미용 관련 기업까지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건강/생명산업은 독자적 이윤을 창출하고 이윤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각종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여 왔고, 이제는 물리학, 화학, 유전학, 생명공학과 더불어 나노기술, 줄기세포기술, 정보통신기술 등 소위 ‘첨단기술’과의 융합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여느 과학기술 영역과 마찬가지로 의료와 이러한 첨단과학기술의 융합 역시, 그 효용의 크기보다는 이윤 창출의 크기 및 가능성의 관점에서 취사·선택되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 이다.

이에 이 글에서는 이러한 융합 중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는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에 초점을 맞추어, 그러한 융합이 시도되는 범위와 영역을 개괄하고,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 드라이브의 주된 동력이 무엇인지를 밝힌 다음,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융합의 현장에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이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의 융합, 그 범위와 영역

의료와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는 영역은 서비스 대상이 환자냐 건강인이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뉘고, 서비스 방식에 따라 네 가지로 분류된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서비스냐 건강인을 대상으로 하는 질병 예방 및 건강관리 서비스냐에 따라 두 가지 구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서비스 방식에 따라, 첫째, 환자/건강인과 의료/건강관리 서비스 공급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위한 영역이 있다. 이는 이른바 ‘원격진료’, ‘원격의료’, ‘원격건강관리’ 라고도 불리는 영역이다. 환자의 진단, 상담, 치료 과정에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환자들의 생체정보를 모니터링하는 기술, 그렇게 모니터링된 정보를 전송하는 기술,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과 지시를 의료인이 환자에게 전달하는 기술, 환자와 의료인간 상호 소통을 도와주는 기술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에는 불특정 다수의 의료인과 환자가 서로 소통하는 체계인 의료정보 포탈 등도 포함된다.

둘째는 의료기관 혹은 건강관리 서비스기관간 정보 교환 및 전달을 위한 기술이다. 이는 환자 혹은 건강인의 의료 혹은 생체정보를 표준화된 방식으로 디지털화하여, 서로 다른 기관간에 공유하고 소통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술의 영역이다. 전자 의무기록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셋째는 환자간 혹은 건강인간 상호 소통을 위한 영역이다. 이는 의료/건강 정보네트워크 및 정보 포탈 등이 해당된다.

넷째는 의료인간 상호 소통을 위한 영역이다. 각종 검사나 생체정보를 디지털화하여 전송하고 이를 공유하는 시스템과 더불어 원격 교육, 원격 의료 자문 등의 영역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의료와 정보통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의료/건강 서비스 모델을 창출하려는 노력은 미국에서 가장 활발하고 최근 들어 일본, 영국, 호주 등에서도 그러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도 발전한 정보통신기술 인프라를 여기에 접목 시키려는 노력이 2000년대 중반부터 지속되고 있다.

이 중 의료와 정보통신기술 영역 모두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부분은 전자의 무기록, 원격의료, 원격건강관리서비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건강정보 신상품 개발 등의 영역이다.

전자의무기록은 의료기관에 존재하는 방대한 양의 의료/건강 정보를 표준화, 디지털화하여 집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의료 시스템 자체를 규격화, 표준화하려는 시도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개별화된 의료/건강 정보에 대한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 이용자의 편의 등을 내세우며 도입되었지만, 의료/건강 정보의 특성상 표준화되거나 디지털화하는데 있어서의 한계, 의료/건강 정보 보안 문제 및 정보유출에 따른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 이를 매개로 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이 이루어거나 노동강도 강화 및 노동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 등으로 미국을 제외한 각국에서 여러 가지 반발에 직면해 발전이 더뎌지고 있다.

원격의료는 주로 의료인의 수가 부족하거나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 접근성이 문제가 되는 미국, 제3세계 등에서 적극적으로 도입이 시도되고 있다. 더불어 고혈압,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나 노인성 질환을 관리하기 위한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다. 이는 물리적 거리와 잦은 의료기관 방문으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도되고 있다. 상시적으로 환자의 의료/건강 정보를 모니터링하여 그 정보를 의료기관 혹은 의료인에 전송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의료인은 적절한 처치를 원격으로 전달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의료기관에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 역시 아직까지 그 효과가 증명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경우처럼 보편적 의료서비스 제공을 기반에 깔고 일부 사례에 대해 그것에 부가적으로 이를 활용했을 경우 효과가 있는 것이 보고되었지만, 이마저도 비용대비 효과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기존에 존재하는 직접 대면에 의한 환자-의사 관계에 의한 의료 및 진료를 대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기기 오작동 및 전력 문제로 인한 정보 손실 및 소통 왜곡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성 및 안정성 문제도 늘 지적되고 있다.

원격 건강관리서비스 영역은 아직까지 널리 상용화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확장성과 상품성에 대해서는 더 많은 장밋빛 전망이 제출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상담, 교육, 운동처방, 식단관리, 생활습관 교정 등의 서비스에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하여, 보다 대규모로 보다 표준화된 방식으로 이를 상품화하려는 전략이다.

일상생활 중에 생체정보를 모니터링 하는 기술을 바탕으로 집적된 건강/생체 정보에 근거하여 상담, 교육, 운동, 생활습관 교정 등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증가하는 의료비를 절감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업 차원에서 민간의료보험회사와 더불어 이러한 서비스를 실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한국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모방하려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건강’ 혹은 ‘웰빙’을 매개로 한 과도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라는 비판과 더불어 원격 의료와 마찬가지로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발달한 의료/건강 정보 확인 및 진단 기술을 바탕으로 이러한 정보를 취득하여 제공하는 것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영역 역시 활성화되고 있다. 이는 의료기관을 매개하기도 하고 독자적인 실험실 혹은 진단실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유전자 검사, 고가의 영상진단 장비 검사 등을 해주고 이에 대해 별도의 돈을 받고 파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언뜻 보면 이는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되어 있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상품 수요에 대한 마케팅과 홍보, 정보 전달이 주로 온라인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간접적으로 정보통신기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건강/생체 정보는 아직까지 의료적으로 그 의미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검사 과정에서 오히려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한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 시장은 넓어져 가는 실정이다.

위 글은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의 '이슈페이퍼'에 실린 글 입니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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