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속을 짓밟는 이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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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속을 짓밟는 이들에 대하여
  • 김철신
  • 승인 2013.09.23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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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철신 논설위원

 

얼마 전 주요 일간지 논설위원의 칼럼이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칼럼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글이 버젓이 지면에 실려 전국으로 배포되었다.

칼럼의 제목은 ‘아버지 전상서’. 칼럼의 저자가 추석을 맞아 아버지에게 띄우는 글이 아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총장과 관련된 일이다. 그렇다. 가상으로 설정된, 검찰총장의 아들이 아버지에게 띄우는 편지형식의 글이다.

최 모라는 논설위원이 11살 어린아이가 되어 ‘나는 검찰총장의 아들이며, 어떻게 살아왔으며, 아버지에 대한 심경은 이렇다.’라고 편지를 띄우는 것이다.

물론 이 논설위원은 칼럼의 화자인 어린이를 만나본 적도 없을 뿐더러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한 적도 없다. 그저 11살 아이의 심정을 자신이 대변하여 글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충격적이 이글은 수많은 곳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혹자는 ‘한국 언론 역사상 최고의 문제작’이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논설위원을 가리켜 ‘변태 중의 변태’라고도 했다.

이 칼럼은 언론이 사건의 맥락을 파헤쳐 진실을 알려내야 한다는 아니, 한국사회에서 그저  최소한 팩트만이라도 전달해달라는 국민들의 상식을 보기 좋게 비웃어 버렸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도무지 알아내기 어려웠을 사정들을 슬쩍슬쩍 흘리면서 논설위원의 상상을 뒤섞어 전개된 글을 읽다 보면 무엇인가 부도덕하고 비겁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필자뿐이 아니리라.

이미 쓰레기통에 처박힌 듯 구차한 모습의 언론에 더 이상 공정성이나, 비판의식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 그것도 아니면 사회의 일반적 상식이라도 지켜줄 것을. 적어도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금기라도 지켜줄 것을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기라는 것도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하나둘 처참히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길러낸 최고의 엘리트들을 골방에서 야당인사 비방하는 댓글 다는데 낭비해버린 국정원의 코미디 같은 정치개입 사건조사 중에 한 신문사의 1면을 가득 채우며 등장한 검찰총장 관련 논란은 엄청난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힘없는 서민들이 난생처음 검찰의 수장을 걱정하고, 그 뒤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손, 아니 훤히 보이는 손에 대해 혀를 차고 있다.

11살 어린아이까지 어처구니없는 정쟁의 수단으로 도구화하며 마음대로 휘둘러 대고 있는 이들에 대해 오죽하면 변호사단체가 고발을 검토하고 아동단체가 성명서까지 냈겠는가, 보수적인 다른 일간지도 사설을 통해 질타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일간지 논설위원이란 이가 어린아이로 빙의하여 적어낸 아버지 전상서라니...

자기주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민망한 글을 써내려가는 이나, 그것을 버젓이 신문지면에 실어내는 언론사나 보통의 상식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이들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가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무참히 짓밟는 이들의 모습을 본다.

많은 국민의 상식적이고 정당한 주장에도 꿈쩍하지 않는 이들의 모습, 상대의 조그만 빈틈을 물고 늘어져 거대한 몰상식을 정당화하는 이들의 모습, 한 번도 책임을 추궁당해보지 않은 이들이 가지는 뻔뻔한 모습들이다.

이들이 이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마저도 보기 좋게 날려버리고 있다.

자신들만의 이념과 목적을 위해 어렵게 이뤄낸 소중한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는 이들은 이제
민주화를 외치다 희생된 사람을 마음껏 모욕하고, 수십일 단식을 하며 다른 이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려 한 이들을 조롱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아무런 제재 없는 폭력들을 행사하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이들은 정치적 대립과 충돌을 원시적인 폭력과 약탈행위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금기가 깨지는 것이다.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것, 범하면 자신은 물론 공동체에 재앙을 초래할 일이라 삼가야 할 것들, 이를 위한 우리 사회의 약속들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금기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공동체가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 금기가 무너지고 약속이 깨어진 사회에 대한 처벌은 누구도 피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 사람들이 마을 신령을 서운하게 하거나 노엽게 했을 때, 특히 마을신앙과 관련한 각종 금기를 어기거나 부정을 저질렀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지벌을 받는다고 믿었다. 마을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한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내 이것을 참았으니 무엇인들 못 참으리’라며 한탄만 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못 참을 일들을 끊임없이 해댈 것이다.

 

 

건치신문 논설위원 김철신(인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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