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야기(histoire)는 곧 역사(Histoire)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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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야기(histoire)는 곧 역사(Histoire)다”
  • 르몽드디플로마티크
  • 승인 2013.09.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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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디플로]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3 9월호

 

정치적 투쟁과 문학적 참여를 긴밀하게 결합하는 데 성공한 작가는 많지 않다. 자국은 물론 해외에도 이름을 알린 한국 작가 황석영(70)이 그중 한 명이다. 거리에서 그에게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유머가 넘치는 그는 관심 있는 주제가 등장하면 곧바로 목소리를 높인다. 남북 관계, 한국 정치·사회적 상황, 한국·이주노동자의 삶의 조건 등, 사실상 모든 게 그의 관심사다. 대표적인 예가 그의 소설 <바리데기>(2007)다. 지난 8월 최미경과 장노엘 쥐테 공역의 프랑스어판 <Princesse Bari>(1)이 나왔다.

한국의 한 전설에 등장하는 바리공주는 왕의 일곱째 딸이다. 아들이 아닌 데 실망한 왕은 바리공주를 내버린 후 병이 들고 만다. 그럼에도 공주는 아버지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생명수를 구하기 위해 세상을 돌아다닌다.

황석영은 무속신앙이 깃든 전설을 능숙하게 이야기로 풀어내는 동시에 이민, 문화·종교적 충돌, 착취와 빈곤 등 오늘날 현실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소설의 주인공 바리는 북한의 비교적 넉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식량난을 겪고, 정치적 혐의와 숙청의 바람에 휘말리고 만다. 바리는 자신에게 신기를 물려주고 굿을 가르쳐준 할머니와 함께 북한을 탈출해 두만강 너머 중국으로 향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바리는 생존을 위해 자연의 품을 떠나 도시로 내려간다. 바리는 다른 언니들처럼 몸을 팔기에는 너무 어려서 마사지 기술을 배운 후 우여곡절 끝에 영국 런던에 도착한다. 런던은 이민자들이 누추한 거처라도 얻기 위해 비싼 집세를 내야 하는 곳, 불법체류자들이 단속을 피해 도망다니는 곳이었다. 또한 방글라데시나 파키스탄 출신 난민, 인도 출신의 힌두교도, 불교도, 무속신앙을 믿는 한국인 등이 서로 도우며 사는 곳이기도 했다.

황석영의 이야기(histoire)는 언제나 역사(Histoire)와 만난다. 바리와 파키스탄 젊은이의 결혼에 뒤이어, 9·11테러 사건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타나모, 재판 없이 수감된 죄수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다양한 사건이 긴박하게 펼쳐지는 소설 속에는 이따금 매혹적인 시적 장면이 삽입되기도 한다. 특히 바리가 사고로 딸을 잃고 사자들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여기에 신앙과 문화의 다양성과 조화에 대한 섬세한 철학적 성찰까지 더해진다.

황석영은 자신의 풍부한 상상력이 현실 속에 발 딛고 서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심청(프랑스어판 <Shim Chong, fille vendue>(팔려간 소녀, 심청))에서 열다섯의 나이에 중국인에게 팔려가 대만의 사창가에서 일하고, 일본 오키나와의 유곽에서 게이샤로 일하다가 나가사키를 거쳐 조선으로 돌아오는 소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보여줌으로써 19세기 가난한 자들의 운명을 말하려 했다. <바리데기>를 통해서는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 이민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굴곡 많은 작가의 인생 역정이 없었다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황 작가는 1943년 일제 치하의 만주에서 태어났다.

굴곡 많은 인생이 소설의 자양분

해방이 되자 그의 가족은 평양을 거쳐 서울에 정착한다. 당시 한국은 전쟁 중이었다(1950~53). 나중에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하여 미국편에 서서 싸운다. 그는 1985년 베트남전의 어두운 속내를 철저하게 해부한 소설 <무기의 그늘>을 발표한다. 귀국해서는 현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독재정권에 맞선 투쟁에 앞장섰으며, 무엇보다 분단 종식과 남북 간 대화 재계를 위해 활동했다. 

작가는 1989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대변인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그는 그 순간 이미 남한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 베를린(그곳에서 독일 통일을 목격한다)과 미국 뉴욕에서 망명생활을 한다. 독재체제가 종식되고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처벌을 면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귀국 후 ‘국가안보를 위협한 혐의’로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5년간의 복역 끝에 김대중 정권하에서 석방되었다. 황석영은 망명생활의 고단함, 투옥의 고통,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조국을 둘로 쪼개고 4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한국전쟁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으며, 38선 이북에도 같은 민족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한씨 연대기>(1970)에서 <손님>(2001)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황석영은 남과 북을 편가르기하며 사랑과 우정, 사회적 관계와 가족관계까지 파괴하는 이데올로기 대립과 분단의 아픔을 이야기해왔다.

이런 흑백논리에 줄기차게 반대해온 황석영은 자주 ‘빨갱이’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심지어 그를 ‘북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민주화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정권은 지식인들을 공격하기 위해 간첩 사건을 조작해왔다”고 한다. 사실상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평양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건국 당시 북한 정권이 매력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950년대 정부의 탄압을 받던 남한의 지식인 중에는 토지개혁과 사회발전을 지지하며 월북한 경우도 있었다. 황석영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진보적인 지식인에게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었다. 해방 직후 친일 부역자들이 남쪽으로 피신해왔다.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독재정권이 자리 잡았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죄다 ‘북한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런 위협에 굴하지 않는 것이 지식인의 자존심이었다. 일방적인 강요에 저항하기 위해 북한을 좋게 말하는 경향도 존재했다. 그건 일종의 윤리적 입장이었다.”

남북 간 대타협에 한국 정부가 나서야

오늘날에도 북한을 찬양·고무하는 행위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받는다. 마녀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황석영이 말을 잇는다. “물론, 나는 북한의 참혹한 인권유린 사태를 부정하지 않으며 동의하지도 않는다.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주위 여론에 동조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북한 체제를 내부에서부터 이해할 필요도 있다.

북한 처지에서는 핵무기 보유가 국가 안보를 위한 값싸고 확실한 방법이다. 북한은 20년 넘게 미국에 대화를 요구해왔다. 북한은 미국에 ‘우리를 조용히 내버려달라’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안전을 보장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는 어차피 별로 효과도 없는 모든 종류의 협박에 반대한다. 대신 남한의 다른 지식인, 연구자, 민주세력과 함께, “한국 정부가 평화 구축을 위한 남북간 대타협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1953년 체제 속에 살고 있다. 당시 정전협상(평화협정이 아니다)의 주체는 미국과 북한이었다. 남한은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이제 전쟁을 끝낼 때가 되었다. 그러나 2003년 이후 황석영은 북한의 지식인과 더 이상 연락을 주고받지 못한다. “수차례에 걸쳐 남북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했지만 남측과 북측에 이용만 당했다. 모두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는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다. 아직 그에게는 글쓰기라는 무기가 남아 있다.
그가 관심을 갖는 영역이 또 있다. 그는 남한 사람, 그중에서도 젊은이의 삶 조건에 관심이 있다. 그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등장하는 부유한 강남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강남스타일이 경제발전을 향해 광적으로 질주해온 남한 사회를 요약해서 보여준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가난한 동네였던 강남 지역에 백화점이 들어섰는데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건물주는 직원과 고객의 경고를 묵살했다. 결국 백화점은 무너졌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그 후 그곳은 말끔히 정리되어 비싼 값에 땅이 팔렸다. 이 사건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다가 1997년 위기를 맞은 한국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일부 사람들은 위기를 틈타 새로운 부를 축척했다. 금융비리 사건이 반복적으로 터져나오는데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싸이는 한국의 오랜 전통인 자조 방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다.

배금주의 한국 사회에 비판적 시각

황석영은 돈을 향해 미친 듯 질주하는 한국 사회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암에 걸린 환자나 다름없다. 암세포들은 체내에서 자라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우 위험하다. 제자리에 멈춰서 숨을 고르고 어떻게 하면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거대 산업에서부터 동네 카페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거대 재벌의 전횡을 막아야 한다. 감히 혁명을 얘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그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한마디 덧붙인다. “지난해 대선 때 한 야권 경선 후보가 직장인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저녁 먹을 시간조차 없는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한국은 참으로 놀랍게도 특정 후보에 투표하라고 독려하는 행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선거유세에 적극 개입했으며, 초반부터 야권 후보 단일화를 위해 노력했다. “나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했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내 책 3천 권을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큰 소리로 웃어재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행히 야권이 패배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이런 약속을 하고도 별탈이 없었지만, 정권 교체를 바라는 137인 선언에 서명한 젊은 작가들은 공권력에 의해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이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지역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다. “당연히 그런 일을 당하면 겁을 먹게 된다. 그들 중에는 다음부터는 그런 종류의 서명을 하기 전에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는? 그의 눈에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젊은이들에게 정권 교체가 절실한 시점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차례로 열거한다.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인가?(하루 43명) 그는 낮은 음성으로 또박또박 묻고 답한다.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는? 폴란드를 제치고 한국이 1위다. 노동자 수 대비 노동재해가 가장 빈번한 나라는? 한국이다. 대학 등록금이 가장 비싼 나라는? 이번에도 역시 한국이다. 미국은 최소한 장학 제도라도 잘 갖춰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곳에서 젊은이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젊은이들은 행복하지 않을뿐더러 죄책감까지 짊어져야 한다.

젊은이들의 머릿속이 오직 소비 욕구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 다른 많은 지식인과 달리, 황석영은 그들이 “하나로 결집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소셜네트워크상에서 매우 민첩하게 반응한다”고 평가한다. “그들은 개인주의적이지만 자유로우며, 이데올로기와도 무관하다. 그들은 무언가에 분노하면 들고 일어난다.

가령 그들은 강요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여 시위를 벌였다. 혹은 천안함 사건에 관한 정지영 감독의 영화제작비 모금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46명의 사망자를 낸 천안함 침몰 사건이 북한군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라는 공식 발표에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 정부는 계속해서 자신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8월에는 해군장교와 유가족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황석영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젊은이들의 용기는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감안할 때  가상하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자기 세대의 고유한 정체성이라 할 만한 정신을 창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그는 언젠가 그들의 정신이 형태를 드러낼 그날을 꿈꾼다.

글•마틴 뷜라르 Martine Bulard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주요 역서로 <리듬분석> 등이 있다.

(1) Hwang Sok-yong, <Princesse Bari>, Choi Mikyung & Jean-Noël Juttet 번역, Editons Philippe Picquier, 아를, 2013, p.254, 19euros(황석영, <바리데기>, 창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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