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청법 ‘무조건 10년' 면허박탈 불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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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법 ‘무조건 10년' 면허박탈 불합리
  • 윤은미 기자
  • 승인 2013.09.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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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 외 성범죄까지 의료인에 과도한 윤리 적용은 ‘부당’…차등처벌 조항 개선 필요‧사전설명 의무 강화 등 자정노력도

 

성범죄 전력이 있는 의료인은 10년간 의료기관 개설 및 취업을 제한토록 하는 일명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일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의료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뜻을 함께 했다.

혐의의 경중에 따라 차등처벌하는 방식의 개선점과 진료 특성상 고의성 없이 가해진 피해 예방에 대한 방안 마련 등에는 다수가 동의했으나, 의료인에 한한 취업제한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놨다.

무엇보다 의료인의 고의적이지 않은 성범죄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전 설명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대안에는 다수가 동의했으나, 병원 인력 대비 환자 수 등의 현 진료환경에서는 의료인 당사자에만 책임을 국한하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새누리당 박인숙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아청법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고, 대안 모색에 나섰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간호협회, 대한병원협회가 공동주관한 이날 토론회에는 주관단체인 의료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법조계, 언론계, 여성가족부 관계자 등이 패널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의료분쟁 증가 방어진료로 이어져”…의료계 불안 가중

먼저 주제발표에 나선 대한의사협회 임병석 법제이사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관련 기관에 취업을 제한하는 아청법의 본래 취지는 사회적 추세를 감안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그 대상자를 성인 성범죄자까지 포함시키고 있으며, 처벌 대상도 형평성 차원에서 과도한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의료인 성범죄자에 대해 10년간 의료기간 개설 및 취업을 금지하는 조항에 대해 “의료인이 면허를 취득하는데 투입되는 개인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처벌로 인해 초래되는 피해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임 이사는 의료행위가 환자에 대한 침습을 기본 전제로 하는 만큼 실제로 치질 수술, 유방미용성형, 산부인과 내진 등 통상적인 의료행위에서도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켰다는 이유로 의료분쟁이 발생하기 십상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성범죄 경력 조회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방어진료 확산 등을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덧붙였다.

임 이사는 의료계를 대표해 처벌 대상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로 한정하고, 취업제한 대상을 벌금형에서 금고형 이상으로 축소할 것을 제안했다. 아울러 성추행을 성범죄 범위에서 제외할 것과 성범죄자 의료인을 아동청소년 대상 의료행위에만 제한하자는 제안은 공감을 얻지 못했다.

진료실 내 성범죄 가중처벌은 타당…설명의무 강화

특히 시민사회단체는 의료인의 경우 ‘직무 중 범죄’인 진료실 내에서 범해진 성범죄에 한해서는 취업 제한이 마땅히 필요하다고 주장해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단, 진료실 밖에서 벌어지는 성범죄까지도 의료인에만 과도한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취업제한 처벌 조항을 범죄 경중에 따라 차등 적용하는 필요성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단체는 공감의 뜻을 표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사업단 박용덕 정책위원은 “의료인의 취업제한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범죄는 무겁게 처벌한다는 원칙에 부합된다”면서 “환자의 신체와 안전을 의사에게 전부 위탁하는 진료실 내 특징을 감안해서 별도 규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진료의 특성 상 비고의적으로 발생되는 성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선행과제로는 사전 설명 의무를 강화할 것이 강조됐다.

박 위원은 “환자의 이해수준에 맞춰 의료인의 안내 의무를 훨씬 강화해야 한다”며 “설명과 안내는 의료인의 선의가 아닌 의무이자 환자의 권리로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적 수치심은 예고되지 않은 접촉 등으로 인한 주관적인 판단이므로 사전 안내가 이뤄지면 이같은 불상사를 줄일 수 있다는 것.

그는 최근 논란이 된 산부인과 진료실 내 인턴 입회 역시 환자 사전 동의 없이는 성추행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사전 안내 과정을 행해 법적인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설명 내용에 대해 환자의 서명을 받거나, 진료실에 스텝 및 보호자를 입회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의료인당 진료해야 할 환자 수 등 현재 열악한 진료환경에 대한 개선 또한 중요하다는 전제가 덧붙었다

 
직무 관련 취업제한 등 ‘위헌심판’ 필요성도 제기

법조계는 아청법의 획일적인 처벌 기준과 악용 사례를 우려했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훈 교수는 “의료인의 10년간 취업제한은 성범죄에 대해 극단적인 여론에 편승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면서 “성범죄의 경중에 관계없이 포괄적으로 10년간 취업 및 개설을 금지하는 조항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법무법인 청파 장성환 변호사는 ▲성범죄 범위 축소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한정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해 취업제한 ▲취업제한 적용 세분화 ▲아동청소년 대상 의료행위만 제한 등 의협의 다섯 가지 제안을 중심으로 위헌법률심판을 받아볼 것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연세대 김소윤 의료법윤리학과장은 의료인에 대한 아청법 처벌 조항을 분리해 의료법으로 이관하고, 의료인의 취업 및 개설 금지 조항으로 인한 과도한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의 입장은 단호했다. 고의수 아동청소년성보호과장은 먼저 아청법 적용 대상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성범죄자 전체가 재범의 우려가 있는 만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의 취업을 막고 예방하는 아청법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바가 없다”고 밝혔다.

의료인 등 직무와 관련된 성범죄에 한정한 취업제한 역시, 의료기관 역시 아동‧청소년이 방문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제외시키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성범죄 경중에 따라 차등처벌하는 방안과 진료실 내외에서의 성범죄를 구분하는 방안 등의 의견은 우선 수렴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세영 회장은 이날 개회식 축사에서 “아청법이 의료인에 대한 취업 제한 등 직업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면서 “성범죄를 예방코자 제정된 아청법이 환자와 의료인 간의 불신을 키울 뿐 아니라 의료인의 기본권과 최소한의 생존권 마저 위협하고 있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성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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