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비오는 산중의 처녀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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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비오는 산중의 처녀치마
  • 이충엽
  • 승인 2005.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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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화는 꽃보다 잎이 더 중요하고, 특히 처녀치마는 지면에 깔린 잎을 보고 지어진 이름이다
요즘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를 절실히 깨닫고 있다. 왜냐하면 14일에 한편씩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자유로이 쓰는 것이 아닌 정해진 기간에 글을 만들고 써야 한다는 자유롭지 못함이 강박감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핑계 저핑계를 피워대며 많은 날들을 도망 다녔으나, 이제 다시 글을 써야만 하는 일이 생겨 고통을 끌어안고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 일이 야생화이야기에 글을 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내가 좋아한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은 봄이 되어 하루가 멀다하고 새 꽃들이 피고 지며, 땅은 식물들의 생존경쟁으로 거의 전쟁 터로 변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상기온 현상으로 날들이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땅에 주는 메시지도 일정하지를 않으니, 식물 모두 빨리 꽃 피우고 열매 맺느라 하루가 바쁘기 그지없는 지경이다.

이 와중에 나는 후배와 함께 평일은 점심시간에 김밥 하나 달랑 들고 산을 헤메고, 주말은 꼭두새벽부터 산으로 꽃을 찾아 사냥(사진찍기)을 떠나니 몸이 거의 탈진할 지경이다. 그 와중에 텃밭에 감자 심고, 고추 심고, 나물 심고 난리니 몸이 빈사의 상태인 것이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탓할 수도 없다.

누가 거의 미친 수준이라고 한다. 골프 치는 선생들이 해외로 골프여행가서 골프만 치고 돌아오는 걸 보며 난 "미쳤지! "하고 되뇐다. 헌데 나는 야생화에 미쳐 남들이 보면 이해가 안된단다. 헌데 미쳣건 말았건 지금 안찍어 놓으면 내년을 기다려야만 하니 꽃 하나를 일년을 기다리며 사는 우리 맘을 남들이 알 리가 있나? 그러니 미친 듯이 돌아다닐 수밖에...

▲ 비온 날 찍은 사진이라 별로지만 꽃이 너무 앙증맞다
잡설이 너무 길어버렸다. 오늘은 얼마 전 찍은 처녀치마 얘기나 해보자. 처녀치마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표고 1,500m 안팎의 고산지대에 분포하며, 꽃은 3-4월에 피고 3-10개가 총상으로 달린다고 한다.

원래 이런 자료를 보고 나면 우리는 이 야생화의 분포지역이 어디인가를 다시 조사해본다. 울산 근처를 찾아 뒤지기 때문에 울산에서의 서식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ㅇㅇ산 정상근처나, ㅇㅇ산 정상부근에 서식한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산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은 이 글을 보고 서식지에서 야생화를 무자비하게 벌채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소식을 접하고 날을 잡았다. 날이 좋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얻으리라 생각했던 날짜-5월5일- 마나님한테 새벽부터 9시 30분까지 시간을 허락 받고 달려간 그날 이놈의 하늘은 새벽부터 약간씩 비를 뿌리며 우리의 입산을 방해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올라간 산 정상부근에서 후배가 전하는 한마디 " 여기 있심더, 행님!" 처음 본 처녀치마는 비에 젖어 있었지만 작년 잎을 땅에 기대고 꽃을 피우려 꽃대가 하늘로 향해 올라오며 그 자태를 요염하게 자랑하고 있었다." 아, 야생화여!" 꽃을 보며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말로는 야생화를 표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찰칵, 찰칵 연신 꽃을 찍어대며 여기저기를 다니다 보면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사실 사진 찍으며 느끼는 것이지만 산들 바람소리, 산새 소리, 그 맑고 깨끗한 공기, 이 모두를 사진 속에 담아 낼 수가 있다면 최상의 사진이 나오리라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하지만 사진에는 이런 소리와 땀 냄새, 공기를 담을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 비온후 산 위로 흐르는 구름이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정신없이 야생화에 빠져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산 정상을 오르니 비는 그치고 약한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온 몸은 땀에 젓고 비에 젓은 사진 몇 장 건졌건만 그래도 기분은 최고다. 생전 처음 처녀치마 봤으니 말이다.

요즘은 그래도 여유가 생겨 산아래 중생들의 마을을 쳐다보며 사진 한 장씩 찍기도 한다. 전에는 피곤하고 정신없이 하산해 하루를 마쳤지만 요즘은 약간씩 여유가 생기면서 사진에 자연을 담으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연을 찾아 자연이 갖고 있는 많은 것들을 뺏으려 하지만 자연은 아무런 말이 없다. 단지 우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준다. 특히 올해 같은 이상기온 현상으로 답해 줄뿐이다. 그래서 요즘은 자연 현상이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산을 찾아 처녀치마를 찍으며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며 하산한 하루였다.

처녀치마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알아보자.

처녀치마는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푸른 잎을 유지한 채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데 이것은 땅속의 온도를 이용하는 지혜 때문이다. 잎이 방석처럼 땅바닥에 바짝 달라붙어 땅속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지온으로 차가운 바람과 영하의 낮은 온도를 이겨내고 3-4월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 이끼 사이에 잘 서식한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은 잎이 땅바닥에 사방으로 둥글게 퍼져 있는 모습이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재배법으로는 거름을 좋아하므로 깻묵을 20일 간격으로 분 위에 올려주고 바람이 잘 통하는 반 그늘에서 관리하며, 증식법으로는 포기나누기하면 되고 잎 끝을 이끼에 묻으면 잘 자란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3월의 꽃으로 처녀치마를 지정했다. 다소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찬 겨울을 이기고 산 정상에서 봄을 맞으며 꽃을 피워내는 처녀치마의 고운 자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충엽(울산 하얀이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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