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화에, 안녕하십니까?
상태바
민영화에, 안녕하십니까?
  • 박한종 논설위원
  • 승인 2013.12.16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박한종 논설위원

 

철도공사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추진으로 철도 민영화를 시작하였다. 박근혜 후보는 대선 기간에 철도 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물론 박근혜 정부가 공약을 저버린 것이 이것만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는 대선 전후 이렇다 할 경제적 변동이 없었음에도 뭐 하나 이룬 것 없이 포기되었고, ‘생애 맞춤형 복지’라는 공약은 ‘증세는 없다’는 구호에 밀려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다.

그러니 철도 민영화는 보는 마음엔 이것마저도 또! 란 먹먹함 없지 않다. 현대 산업 사회에서 대중 소통(/교통)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리고 철도의 민영화가 그것을 어떻게 얼마만큼 파괴했는가는 영국이나 다른 나라의 예가 잘 보여주고 있다.

민영화의 결과로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해서 오히려 철도가 꼭 필요한 지역은 수익을 이유로 선로가 끊어졌고, 철도 이용료뿐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보조금이 올랐음에도, 오히려 노동자의 감원으로 서비스의 질이 나빠져 사고가 급증했다. 오로지 그 차액을 민영화된 철도 자본이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 철도 노동자의 민영화 저지 투쟁과 이에 대한 시민사회의 지지는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물론 파업노동자를 집나간 자식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직위해제하겠다는 철도공사 사장의 발언이 박근혜 정부의 대답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더구나 그 와중에 정부는 의료마저 민영화 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이른바 정성을 다해 옷 깔 맞춤 하듯 이번에도 비영리의료법인이 영리법인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똑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화장을 하고 우회해서 가겠다는 것 일 뿐 그 목표는 불문가지, 불 보듯 하다. 그 민낯은 어엿한 의료 민영화 일뿐이다.

어느 부모도 용돈 챙겨주는 자식이 더 예쁜데, 하물며 자본에게서 더 말할 나위 없다. 한쪽 호주머니에 있는 제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의료법인의 수익을 비용으로 바꿔, 다른 한쪽호주머니로 자회사영리법인의 수익으로 바꾸어 넣는 조작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한번 풀린 고삐를 되잡기 어렵듯 민영화는 더 강화될 것이고 결국은 미국식 의료의 파국이 미국 이상의 파국으로 도래할 것이다.

사안이 이에 이르자 청년 학생들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울분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른 한편 대선 부정, 은폐의혹의 파렴치에 대한 저항을 종북몰이로 대응하는 집권층에 퇴진을 요구하는 종교적 양심 세력도 그러려니 하는 우리의 비상식적 안이함을 깨우고 있다. 이들의 주장이 현 정세의 힘의 관계에서 가능하다 싶지 않더라도 그것은 거짓과 폭력에서 우리의 사회적 삶의 상식을 지키려하는 것이자, 자본의 탐욕이 파괴하려는 우리 공동체적 삶의 연대성을 높이려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연말 연이은 송년의 황망함 사이의 맑은 정신에 담기엔 좀 묵직한 이야기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피할 수만은 없다. 부모의 품을 떠나 우리 아이들이 맞이하는 세상이 바로 이런 세상이라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