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앙증맞은 고산의 꽃 설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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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앙증맞은 고산의 꽃 설앵초
  • 이채택
  • 승인 2005.05.19 0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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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앵초. 고산지대 바위틈에 주로 자라는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올해는 꼭 보리라 다짐하던 것 중의 하나가 처녀치마와 설앵초이다. 고산식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꽃이 아니기 때문에 야생화를 탐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기 있는 식물이다. 자생지를 확인하고 개화시기를 기다렸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개화기간이 2주정도 될 것이므로 두 번의 일요일 중 한번 시간을 내 다녀와야 한다.

일정을 잡아보니 5월 1일 밖에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또 다른 일정이 그날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 현안인 핵발전소에 대한 대응으로 천 배 행사를 시작했고, 우리는 일요일에만 참여할 수 있으니, 5월 1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날짜였다. 선배와 숙고 끝에 새벽에 등산을 하고 11시부터 시작되는 천 배 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다.

▲ 처음 만난 설앵초. 고산에 자라는 풀과 나무는 모두 키가 작다
새벽 6시에 만나 출발하면 5시간의 여유가 있다. 부족한 시간이지만 가능한 날짜가 없으니 무리해서라도 다녀오기로 했다. 하루 전 예정했던 장소를 변경해 다른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차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고, 처녀치마와 설앵초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른 장애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비가 온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새벽,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가랑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고, 밤새 제법 많은 비가 온 모습이다. 오후부터 비가 그친다 했으니 이 정도면 곧 비가 그치리라 기대하며 강행하기로 했다. 다행히 산으로 올라가는 도중 비가 그쳤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아래로 보이고, 구름이 아래쪽에서 산허리를 감고 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등산을 좋아하지 않은 탓에 처음으로 올라보는 산이다.

이곳은 바로 영남알프스의 대표중 하나인 00산이다. 정상을 향한 등산로로 접어드니 공비토벌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진 커다란 입간판이 서있다. 여기도 빨치산의 활동이 왕성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인 것이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주변에 노랑제비꽃이 꽃밭을 이루고 있다. 좌우에 암벽으로 이루어진 절벽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드디어 처녀치마를 한 포기 발견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점점 더 많은 개체의 처녀치마가 보인다.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모두 물방울을 달고 있다. 사진에 담기에 적당한 개체를 찾아 바위를 타고 이동하는데...

바닥에 조그만 뭔가가 보인다. 자세히 보니 설앵초이다. 어떤 이가 표현하기를 키가 백 원짜리 동전 두 개 정도라 했다. 실물을 보니 적절한 표현이라 여겨진다. 꽃이 둘 달린 왜소한 개체로 식물체에 비해서는 꽃이 엄청나게 컸다.

▲ 한 무더기의 풀을 둘러싸고 자라는 설앵초. 이날 만난 것 중에서 가장 많은 개체이다
설앵초 군락을 찾아 계속 올라가니 주변에 처녀치마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편평한 길이 나타나고 능선을 따라 정상 쪽으로 가니, 꽃을 제법 풍성하게 달고 있는 설앵초가 하나 보인다.

드디어 1,209m 라고 적혀있는 정상 푯말이 보이고, 우리는 안내받은 설앵초 군락을 찾아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설앵초 군락이 있는 늪지대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해 하산하기로 했다. 다시 올라오면서 주변을 뒤져보니 풀 섶에 한 무더기의 설앵초가 드디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이것으로 오늘 우리의 목표는 달성했다.

정상에 다시 서니 어느새 조그만 전을 펼친 상인이 있다. 선배와 나는 등산으로 허기진 배를 4,000원 짜리 동동주 한잔으로 채우고 넉넉한 마음으로 하산했다. 이미 시간은 11시가 다가오고 있고 빨리 오라는 전화가 온다. 서둘러 천배를 하기로 한 시청으로 가니 먼저 온 회원이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날, 허리. 무릎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거의 중상상태이다. 아니, 그 보다도 꽃을 찾아 헤매는 두 사람의 정신세계가 더 중상상태 일지도 모른다.

이채택(울산 이채택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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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택 2005-05-23 18:17:21
흔히 보이는 것도 처음 대면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한 번 보이면 그 뒤로는 이곳 저곳에서 보입디다.

어제는 다시 그 산을 뒤졌습니다. 큰앵초 찾아서...
4시간 정도 길도 없는 고산지대를 헤메다가 못찾고 하산했습니다.
올해는 안 보여 주는가 보다하고 내년을 기약하며 차로 내려오는데,
차창 밖으로 주변을 쳐다보다가 희미하게 절벽위에서 보이는 꽃 비슷한
것이 의심스러워 차를 세우고 올라가보니...
결국에는 큰앵초를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드디어 앵초. 설앵초. 큰앵초를 모두 보았습니다.

임종철 2005-05-23 11:06:54
앵초류를 한번도 야생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봄에 높을 산을 올라갈 정성이 부족한게 가장 큰 이유겠죠. 비슷한 이유로 난초종류도 산밑에서 다른 사람이 '주워온'-채취가 아니라- 것만 몇번 보았습니다. 올해도 이 경력은 변하지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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