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암 덩어리를 쳐부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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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암 덩어리를 쳐부수자
  • 이은경
  • 승인 2014.03.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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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Punch]

 

장면1. “우리 몸의 암 덩어리, 쳐부수자” 의료민영화반대 의사파업으로 혼란스러웠던 3월 10일 월요일, 청와대 회의 중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북한의 소위 ‘최고 존엄’께서 한 발언이 아닐까 싶었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 발언이시란다.

장면 2. 우리나라 의료인들은 참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다. 오죽하면 의사들이 민영화반대를 한다니 민영화가 되면 국민들에게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인술보다는 수익을 추구하는 이미지가 강해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의료인들이 파업을 했다. 2000년 의약분업 때의 대규모 파업은 의약분업제도 반대와 더불어 수가인상 등 추가적 목적을 위한 그들만의 파업이었다면 이번의 파업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하기 위해 돌입한 것이다. 점차 수위를 높여 24일 부터는 응급실까지 참여한 장기간의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장면 3. 한국사회를 흔들었던 또 다른 사건은 3모녀의 자살사건을 필두로 쏟아진 각종 자살보도들이었다. 3모녀 불행의 핵심에는 의료비가 있었다. 두 딸이 신용불량이 된 이유는 아버지가 암 치료비를 댈 수 없어서 무리하게 빚을 진 탓이었다.

젊은 나이에 신용불량자가 된 두 딸들은 고혈압, 당뇨를 앓았으나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지병과 신용불량에 시달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 따위뿐이다. 그런 그들이 살던 단칸방의 월세는 무려 50만원이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마저 부상으로 몸을 못 쓰게 되자 3모녀는 생계가 막막해졌다.

장면 4. 박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선언했다. 한국 사회 각종 암 덩어리인 ‘규제 쳐부수기’를 진돗개의 정신으로 물고 늘어져 끝끝내 달성하여 비정상의 한국사회를 정상화시킬 것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그야말로 대박이다.(이상은 모두 실제 대통령의 발언이다. 오해 없으시길.)

우리사회의 비정상은 과연 무엇일까? 아프면 자살을 떠올려야하는 사회,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과 가장 낮은 출산율을 갖고 있는 사회, 세계경제 7위, GDP 4만불 도입을 눈앞에 둔 한국사회의 속살은 처참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힘든 현실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있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이렇게 불안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건강하기만 하면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아프면 돈을 벌지 못할 뿐 아니라 의료비도 부담해야 하고, 식구 중 누군가가 돌봐주기도 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질병이다.

의료인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민들이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고용창출, 투자활성화, 의료관광 다 좋은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의료비는 비싸고 큰 병에 걸리면 막막할 뿐이다. 정부가 정상화시켜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암에 걸린다고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가족 대대로 빈곤층이 되지 않도록, 노인들이 아프면 자살을 떠올리지 않도록, 가장이 아프면 당장 수업이 없어져 치료비와 생활비 걱정을 하지는 않도록 하는 정상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대통령께서는 3모녀사건을 놓고 복지혜택을 잘 알아보고 잘 찾아서 받으면 되었을 거라고 하신다. 전형적인 피해자 비난하기이다. 몰라서, 무지해서, 게을러서 찾아먹을 수 있는 혜택도 못 받고 죽었다는 것이다. 너무나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생계형 자살을 “죽음의 고통에 비해 살아서 겪는 고통이 더 심할 때 선택하는 합리적 선택”이 많다고 분석한다.

젊은 나이에 극심한 우울증과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 내가 챙길 수 없을 때 홀로 남겨질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에 나온 발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다들 알고 있다. 알고 있기에 복지를 요구하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한다. 적어도 의료만큼은 돈벌이 수단으로 삼지 말고, 필요한 사람은 돈에 상관없이 치료받고, 아프다고 가난해지지는 않는 세상을 바란다.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기를 바란다. 대통령은 이런 국민들 모두를 “암 덩어리”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진정으로 싸워야할 한국사회의 암 덩어리는 과연 무엇인가? 

 
 이은경(새사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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