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극단 치닫는 집단이기주의, 좌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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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극단 치닫는 집단이기주의, 좌시할 수 없다
  • 강민홍 기자
  • 승인 2004.03.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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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의사결의대회


2.22 의사결의대회

급작스런 따뜻한 날씨. 겨울 내내 아니 2003년 내내 움츠렸던 의료개혁이 봄을 재촉하는 반가운 비와 함께 다시 기지개를 펼 조짐인가? 그러나 이내 봄을 시샘하는 강한 바람이 추위를 몰고 온다.

지난달 22일 한강 고수부지. 이렇듯 꽃샘추위를 몰고온 강한 바람을 환영이라도 하듯 의사결의대회는 3만여 의사 군중이 결집한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날 의협 집회의 공식 명칭은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 결의대회’였다. 어떻게 ‘의사만을 위한’이 ‘국민을 위한’으로, ‘후퇴’가 ‘개혁’으로 둔갑했는지는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교묘하게 포장된 요구안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1월 19일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가 공식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번 의협 집회의 취지는 ▲의료사회주의 타파 ▲건강보험 틀 재조정 ▲선택분업 실시로 요약된다. 이는 작년 2004년 수가협상 결렬 이후 의협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것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요구안에 선택분업 실시는 ‘국민의 선택권 보장’으로 의료사회주의 타파는 ‘사유재산 침해하는 독재적 발상 철회’로 그럴듯하게 포장됐다. 건강보험 틀 재조정 또한 ‘경쟁력 강화’와 ‘국민 선택권 보장’으로 미화됐다.

한번만 뒤집어 생각하면 뻔히 드러날 집단이기주의를, 자신들에겐 ‘국민의 이익이나 의료개혁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사실을 억지논리로 교묘하게 포장해가며 은폐하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도를 넘어선 억지논리

사실 현 의협의 강경한 태도 뒤에는 여러 노림수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기선을 잡기 위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건치 전성원 집행위원장은 “의약분업이 불완전하지만, 이미 정착돼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협도 이를 뒤집고 선택분업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이다”며 “공공연히 정치세력화를 거론하고 각 당 의료정책 검증을 추진하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 총선 이후 구성될 새 국회에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목표일 것”이라고 관측한다.

문제는 주장의 관철보다는 영향력 확대·기선 제압에 더 무게가 실린 듯해 보이는 작금의 완강한 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왜곡해 가며 끊임없이 의료개혁 흐름을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협 집회 당시 외친 구호들 중 ‘사회주의 건강보험제도 개혁, 공단 해체’란 문구를 예로 들어보자.

아직도 우리 국민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반공·반북의식을 자극해 현행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거부감부터 느끼게 만든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제도가 ‘100% 무상의료’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가?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국장은 “전체 의료에서 공공의료의 비율이 채 10%에도 못미치고 건강보험 보장성 수준이 너무 낮아 가족 중 누구 하나 중병을 앓으면 한 가계가 파탄에 이르는 의료 현실을 ‘사회주의’ 의료제도라니 어이가 없다”면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강력히 외쳐야 할 시기에 이는커녕 사회주의 운운하며 건강보험 틀을 깨자는 주장은 국민의 건강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사실 의협도 그간 낮은 수가나 건보재정 파탄의 원인을 의사들의 부당허위 신고와 과잉진료로 규정, 잦은 세무조사 등 정부 통제에 대한 불만이 없지는 않을 게다. 그러나 건치 김용진 사업국장은 “의협이 그렇게 증오하는 정부 ‘통제’의 보호를 받으며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득권을 누려왔는갚고 반문한다.

이처럼 의협의 현 태도는 오로지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심각한 사실 왜곡 등을 통해 전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집단이기주의의 전형이라고 밖에 볼 수 없을 것같다.

참여복지 5개년 계획

그렇다면, 왜 의협이 심각한 사실 왜곡을 동원하면서까지 강경한 태도을 취하고 있는가?
지난 1월 20일 보건복지부는 올해부터 오는 2008년까지의 종합복지계획을 담은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출범 첫 해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던 현 정부의 의료정책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추진될 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이 갖는 의미는 크다. 그러나 ‘경쟁력과 공공성의 조화’를 핵심기조로 한 5개년 계획의 기본 내용들은 기존에 나왔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공동대표는 “국민들의 현 의료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처방을 내렸다”며 비판적 입장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공공성과 경쟁력 강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5개년 계획 안에 ‘요양기관 계약제’와 ‘총액계약제 도입’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2008년까지 건보료가 6.05%까지 인상되는 부담이 있지만, 요양기관 계약제와 총액계약제가 도입될 경우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고 보험급여도 확대된다는 측면에서 별 불만이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의협에서는 “사회주의 의료를 도입하려 한다”며 펄쩍 뛸 수밖에 없는 극약처방이나 마찬가지다.

향후 의료계 태풍의 핵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의협이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지 ‘요양기관 계약제’와 ‘총액계약제’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애초 의협은 요양급여기관 강제지정을 철폐하고 완전한 자유계약제 실시를 요구해 왔다. 그리고 정부는 이 요구를 일단 수용한 셈이다. 즉, 건강보험 강제지정을 원하지 않으면 안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전국적인 요양기관의 분포를 고려해 특정 지역 내에서 일정한 범위의 강제지정이 필요하다”는 전제 하에 건강보험과 지역별 필요한 요양기관간 계약제를 실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지정을 원해도 의료기관평가제도를 거쳐 수준이 되는 곳만 지정받을 수 있다. 즉, 사회주의라는 의협의 주장과는 정반대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철저한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의료계에 도입되는 것이다.

심지어 정부는 의사와 약사의 경우에도 건강보험을 취급할 수 있는 자격을 검토해 ‘보험의사’, ‘보험약사’를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의료계의 경쟁과 이의 결과로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병의원·의·약사의 제외를 통해 건강보험의 경쟁력과 질을 높이고,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이후 민간의보를 도입하겠다는 것이 5개년 계획의 핵심 취지인 것이다.

또한 건보 재정의 부담이 가능한 범위를 정해놓고 진료비 총액을 설정하고 이에 따라 환산지수를 자동적으로 조정하는 ‘진료비 목표관리제’의 경우 2006년 시범사업에 이어 2008년 전면 시행하게 된다. 이의 기준이 되는 SGR(지속가능한 진료비 증가율)은 ‘2002년도의 진료비’를 기초로 향후 진료비 발생을 부담 가능한 목표치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게 된다.

이와 함께 진료별 총액목표를 각 부문별로 배분하고 이를 다시 세부적으로 분배하는 TOP-Down 방식이 병행된다. 예를 들어 의료비를 1차와 2차, 3차 기관으로 구분하고 다시 전문과목별로 세분해 부문별로 보험급여범위나 본인부담률, 수가를 조정하면서 진료비 발생규모를 조정해 나가는 것이다.

이 두가지 제도가 의료계의 편에서는 기존과 같은 안이한 자세나 과잉진료를 통한 부당이익 취득 등이 통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에서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때문에 의협이 지난 1월 31일 열린 대의원제도 등에서 ‘요양기관 계약제’와 ‘총액계약제’ 철회를 당면 핵심투쟁 목표로 설정하고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요양기관 계약제’와 ‘총액계약제’ 도입에 대해서는 시민사회단체나 진보적 보건의료운동 진영에서도 찬성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건치 김용진 사업국장은 “의료의 질 상승이나 진료비 절감 등 기본 취지에는 동감한다”면서도, “요양기관평가제 정착 등 구체적인 방법이나 준비가 치밀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사실상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또한 이것이 ‘민간의보 도입’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실패할 경우 의료의 시장적 성격만 강화하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 현 상황에서 요양기관 계약제가 도입되면 계약이 안된 병원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불편이나, 이를 거부하고 건강보험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병원들의 담합 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때문에 충분한 지역별 거점병원 확보 등 공공의료기관 30% 확충이 이뤄지고, 그 밖의 제반 준비를 갖춘 이후 도입해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의료개혁의 주체로 서야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달 17일 이번 의협 집회에 대한 성명을 통해 “의정간 살벌한 분위기가 의료계의 진료분위기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고 우려하고,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는데 적정부담·적정급여의 방향을 확립함으로써 의료의 질적 향상과 의료산업의 육성을 동시에 이루는 의료 선진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며 의료개혁을 위해 의정이 모두 화합할 것을 촉구했다.

내적·외적으로 변화하는 아니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의료환경 속에서 정부의 의료정책이 ‘국민 건강권 실현’이라는 지향에 부합되게 나갈 수 있게 비판하고, 한 편으론 힘을 보태나가는 것이 의료인의 자세라는 점에서 이번 치협의 성명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의협은 자극적 문구를 섞은 심각한 사실 왜곡이나 선동적 집단행동으로 의료인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즉각 중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의협은 더이상 국민과 의료계의 이름을 집단이기주의를 위해 팔지 않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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