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회와 학생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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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와 학생자살
  • 김광수
  • 승인 2014.03.31 11:1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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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광수 논설위원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돈을 추구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누구나 그렇게 행동하고, 그런 가치관이 온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지상명제이고, 그 명제는 어려서부터 학습된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빨간펜과 구몬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다.

이러한 학습은 누가 시키는가? 엄마가 학습시키고, 사회가 학습시킨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이다. 누구와 경쟁하는가? 바로 이웃과, 동료와, 친구와, 동포와 경쟁한다. (흔히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결국 가장 가까운 경쟁상대가 된다고 한다.) 그 경쟁의 목표는 무엇인가? 결국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이다.

좋은 학교도 역시 좋은 직장과 직업을 위한 것이니까, 결론은 좋은 직장이다. 그러나 좋은 직장의 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월급 높은 직장을 좋은 직장으로 본다. 그래봐야 고작 수십만 원 차이다. 아니 지금은 그저 취업만 해도 성공이라고 한다.

그런데, 과거에는 학교에 안 다녀도 먹고 살았고, 그것도 대충 행복하게 살았다. 인간은 그렇게 경쟁을 안 해도 살았다. 오늘날 인간의 의식주가 해결되고, 질병이 정복된 것이 치열한 경쟁의 댓가인가? 그건 아니다. 그런데도 이토록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러한 문명 전체에 대한 총체적인 의문과 반성을 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 경쟁이란 것이 너무나도 가혹하고 참담하기 때문이다. 공자님도 소크라테스도 대학은 물론 유치원도 안 다녔다. 그건 알렉산더나 나폴레옹도 그렇다.

그러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이 문명은 무엇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학원을 나와도 결혼을 못하는 이 문명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중학교 초등학교부터 선행학습을 해야 하고, 야간자습을 하지 않으면 대학을 가지 못하는 현실, 그렇게 간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못하는 현실은 누가 만든 것일까?

이 현실 앞에서 무역 10위의 경제대국은 과연 무슨 가치를 갖는 것일까? 이러한 현실 앞에서 과연 우리는 한사람의 부모로서,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나중에 고생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사람의 선생으로서 (나는 부모이고, 선생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그 공부란 건 무엇일까? 나는 선생으로서 정말로 쓰잘떼기 없는 것을 가르쳐야만 하는 현실에 불만이 많다. 교육의 내용이 결국 그 사람의 인생에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다. 과연 우리들의 교육이 얼마나 인생에 가치있는가? 학교에서 목숨걸고 가르치는 것들이 과연 인간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현재 교육부에서 다루는 교육내용의 최우선순위는 취업이다. (교육부는 현재 취업으로 모든 대학의 가치를 순위 매긴다).

그런데, (외국 자료인데) 대학의 전공학과와 그 사람의 직업과의 연관도는 20%가 안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 대부분의 대학 졸업생들이 5년 이내에 자기 전공이 아닌 직장으로 이직한다고도 조사되었다. 대학이 직업을 위해 있는 것일까? 취업률이 50%인 대학은 좋은 대학이라고 하는데, 그 취업은 초봉 150만원 기준이다.

고작 150만 원짜리 직장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유치원 때부터 고생을 했더라는 말인가? (나는 고작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건 훌륭한 직장이다. 지금 20-30대들은 이 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런 직장이 없어서 결혼을 못하고 있는 청춘남녀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취업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 치위생사 면허시험 합격률은 약 88%인데, 국가는 이것이 매우 높다고 해서 70% 이하로 줄이라고 한다. 그러면 낙방한 30%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것이 당신들 딸이라면 어쩌겠는가? 떨어질 아이들 30%를 놓고 해마다 가르쳐야 하는가? 보건의료계의 합격률이 너무 높다고 정부가 주장하는데, 결국 그것은 의도적으로 교육낭비를 하자는 말이고, 동시에 그것은 인권탄압이기도 하다.

뻔히 떨어질 아이들 30-50%를 놓고 어떻게 학기마다 등록금을 받고 시험을 보고 출석을 부르는가? 그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당신이 그 아이들의 부모라면, 그것을 납득 하겠는가? 이젠 더 나아가서 교육부는 의대나 치대 졸업생의 국시 합격률이 높다고 주장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을 낙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 안 있어서 그런 정책이 나올 가능성도 많다. 그들은 필리핀의 치과의사 면허 합격률이 20%라는 것을 들먹인다. 그런 야만적인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해마다 낙방된 치대졸업생 80%는 어디로 가는가? 당신의 자식이라면 그것이 옳은 정책이라고 하겠는가?

나는 지금 교육부의 정책을 규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가치관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그런 것들을 당연시하는 가치관이 우리 뇌리 속에 자리 잡고, 아이들 때부터 훈련되고 내면화 되어오는 끔찍한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비인간적인 경쟁관계가 강요되고, 이 사회를 압도하는 가운데서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들이 자살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학교와 부모에게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경쟁논리에 의거한다. 자살을 안 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즐겁게 매일매일을 사는 것도 아니다. 대학교 졸업 때까지 고생하고도 취업을 못해서 낙망해 있는 이땅의 수많은 청년들이나, 혹은 취업을 했다고 해서 150만원을 받고 출근하는 대다수 직장인들도 우울하고 힘겹게 생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성공한 사람도 있다지만 극소수 성공인을 바라보며 국민 모두에게 지옥 같은 경쟁을 강요하는 체제가 옳은 것인가? 경쟁에서 탈락하는 대부분의 국민은 어떻게 되어도 좋고 그 사람의 인생은 무참히 짓밟혀도 좋다는 이러한 끔직한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도 당연시 통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그 사회에서 고통 받는 대다수는 과연 누구인가. 결국 우리의 가족이고 형제이고 이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쟁은 과연 누가 만들어내는가? 이러한 권력의 정점에는 자본이 있고, 더 구체적으로 이러한 경쟁은 결국 대기업이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우리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자본이 만들어내고, 그리고 그것이 우리 속에서 내면화된 “성장과 소유의 가치관” 그를 위한 “경쟁의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우리 젊은이들이 행복해 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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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홍 2014-04-02 16:23:09
치과위생사 88% 합격률이 너무 높다? 97~98% 치과전문의 합격률은? 잘 읽었습니다.

김형성 2014-04-02 10:46:20
잘읽었습니다. 항상 선명하신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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