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부른 민영화! 그리고 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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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부른 민영화! 그리고 의료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4.05.20 2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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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이 만난 사람들]⑦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민영화 중단·‘돈보단 생명’ 가치 회복 없인 제2,3 세월호 참사는 계속된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안이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로 전국이 들끊고 있는 시점, 본지는 『전민용이 만난 사람들』 7번째 인터뷰이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의료영리화 정책이 의료계를 넘어 전사회적 이슈로 자리 잡기까지, 이 문제로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인물이다. 의료민영화 추진과 세월호 참사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우석균 위원장과의 인터뷰 속에서 그 무서운 연관성을 찾아보자.

 
세월호 국면에도 추진되는 ‘의료민영화’

전민용(이하 전)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우석균(이하 우) : 세월호 사건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게 맞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미룰까도 생각했어요. 도대체 일에 손에 안잡힌다는 느낌?

워낙 큰 일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거의 처음에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에요. 울다가, 언론 기사들 막 찾아보다가…. 인터넷이나 페이스북 들여다보고 그러다 울고… 이런 것들의 반복이었던 것같아요.

또 하나 괴로웠던 것은 이 와중에도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거에요.

애초 정부는 4월 16일 즈음에 의료민영화 관련 영리자회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했었어요. 화요일(15일)이 국무회의였기 때문에 16일 발표될 가능성이 컸죠.

당시 정부가 그걸 발표해버리면 ‘막을 방법이 없겠구나’라고 걱정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사건이 터졌죠. 그래서 의료영리화를 안하고 있는 거예요. 2008년에는 중·고등학생들이 나와서 촛불로 막았던 게 이명박 정부 시기의 의료민영화였죠. 지금은 고등학생들의 억울한 죽음이의료영리화를 멈추고 있는 게 사실이예요. 잔인한 현실이죠.

 
그 와중에도 이 미친 정부는 4월 24일날 병원 부대사업 확대를 위한 시행규칙 개정을 위해 의협, 병협 등 직능단체 모임을 갖겠다고 했어요. 세월호 사건이 터진지 일주일도 안지났는데…. 황당했죠. 이 와중에도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하는 성명을 냈어요. 성명에 대한 온라인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니까 정부가 취소시키더군요.

그런데도 정부는 4월 23일과 5월 2일에 은근슬쩍 의료신기술 평가를 간소화시키고, 4차 투자활성화대책에 들어있는 규제완화 조치 중의 하나를 처리해 버렸어요.

그러면서 느낀 게 세월호 참사로 시민단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인데, 그 와중에도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를 보면서, 이 정권이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한편으론 정말 끔찍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참사의 핵심원인 ‘규제완화와 민영화’

전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무엇보다 안전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인터뷰를 추진한 게, 세월호 참사와 의료민영화 문제를 연관 지을만한 고리가 꽤 많은 것같아서 였어요.

의료민영화라는 게 국민 건강권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정책인데, 정부가 탐욕의 매커니즘에 사로잡혀 있고, 모든 정책을 수익·이윤 관점에서 밀어붙이고 있는데, 극복이 과연 가능할까요?

우 : 세월호 참사에는 2가지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규제완화이고, 둘째는 민영화입니다.

먼저, 규제완화를 지적하자면, 2008년 8월에 국토해양부가 행정규제 개선과제를 발표하면서 “20년으로 획일화된 여객선의 선령(船齡) 제한을 완화하면 기업 비용이 연간 200억원 절감될 것”이라고 밝혀요. 이후 2009년에 해운법 시행규칙상 '진수일로부터 20년'이던 여객선 운용 시한(선령)을 30년까지로 늘려버리죠.

배들이 너무 낡았는데, 낡은 배가 사고율이 높은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규제완화를 해버린 거에요.

두 번째 더 황당한 것은 서서히 밝혀지고 있고, 또 더 밝혀져야 할 일이지만 해경이 자기가 구조를 안한 거잖아요. 구조작업을 민영화한 거지요.

이명박 정부가 2012년 해난구조법을 만들면서 해경이 아닌 '민관협력'이라는 이름으로 민간기업에게 구조를 맡길 수 있게 했고, 사고를 일으킨 회사가 구조전문회사를 선정해 구조와 수습책임을 지고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어요. 그러다보니, ‘뒤집힐 때까지 왜 구조작업을 안했느냐’, ‘구조작업에 참여한 ‘언딘’이라는 민간회사가 구조를 소극적으로 할 수밖에 없도록 계약이 이뤄졌다‘ ’언딘은 구조가 아닌 인양이 목적인 회사다‘ 등등의 보도가 나오고 있는 겁니다.

왜 구조작업을 소홀히 했냐고 물어보니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레카차인데, 버스안에 300명이 갖혀 있더라” “인양작업을 하는 게 우리 일이지 구조작업을 하는 건 우리 일이 아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언딘'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 같자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언딘의 책임자가 한 말이에요.

또 “구조를 해경이 아니고 왜 민간기업이 하느냐”고 물어보니까 정부 관계자가 “해난사고가 1년에 몇번 나지도 않은데, 국가가 그 장비를 어떻게 다 갖추느냐”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민간기관에게 맡기기로 되었다구요.

그런데 그게 바로 ‘민영화’의 논리에요. 국가가 기본적으로 장비를 갖추지 않을 만큼 드물게 일어나는 사고라면, 그 장비를 기업은 왜 갖추고 있겠어요? 그런데 그것마저도 민간기업에 떠넘겨 버린 거에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인 구조작업까지도 민영화함으로써 ‘참사’로 이어진, 민영화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규제완화를 넘어 심지어 국가기관의 업무조차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에 넘기는, 이러한 정책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구호 또한 지켜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전 : 돈보다 생명이다. 공공성이 필요한 것은 민영화해서는 안된다는 평소의 입장이 세월호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거군요.

우 : 2008년 촛불 때 가장 유명했던 사진 중의 하나가 건치 김의동 선생(현 건치 서경지부 사업국장)의 딸이 ‘돈보다 생명이다’는 피켓을 들고 있는 사진이잖아요. 그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이번 만큼 뼈저리게 느끼게 된 때가 없었던 듯 해요.

황당한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어요. 심지어 5월 8일. 어버이날이죠. 밤에 청와대로 찾아간 유가족들이 청와대 바깥에 앉아 밤을 새는 그 와중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긴급민생회의라는 것을 열어 장관들을 모아놓고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가 위축됐다’, ‘규제개혁은 지속돼야 한다’는 등등의 발언을 했잖아요. 이게 도대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상황인가요?

전 : 물론 규제 중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완화할 것은 완화해야죠. 그러나 강화냐 완화냐의 대표적인 기준은 공공성이나 인권이나 안전이 돼야 겠죠.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네요.

우 : 정부가 최근 발표한 규제개혁조치를 보면, 영리자회사는 가이드라인으로 허용하겠다고 하고 있죠. 최근 영리병원을 반대해오던 치협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와 친하던 의협까지도 반대입장을 표명했는데, 의료법은 물론 시행령 시행규칙도 아니고 가이드라인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어요. 조만간 국가개조를 발표하겠다고 하는데, 규제완화를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입니다.

 

 

‘돈보다 생명’ 가치가 상실된 이유

진 : 사회가 생명이나 건강, 안전보다는 이윤에 쫓아가다 보니,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발생했다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같은데요. 왜 우리는 사회운동을 통해서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을까요? 아직도 선거 때만 되면 재개발이나 부동산 등이 공약으로 나오고 있으니….

우 : 그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영리를 추구하게 되면, 더 많이 죽는다’는 사실이에요.

어느 정도로 죽냐면 미국에서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사망률이 연 2% 차이난다는 통계가 있는데, 약 1만2천명 정도에요. 사망률은 건강위험이라는 빙산의 맨 끝부분에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 그 숫자만 무려 매년 1만2천명이라는 거에요. 그러면 사망까지는 아니지만 병원감염이나 다른 병들은 얼마나 더 많겠어요?

최근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그것보다 많다”고 얘기해서 물의를 일으켰는데, 머리를 더 써서 “철도민영화와 의료민영화를 하면 얼마나 더 죽을 것인가”는 왜 생각하지 않을까요? 완전히 전도된 가치관이죠. 이 가치관이 현재의 여당과 언론, 정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굉장히 끔찍한 일이에요.

국민들은 ‘이게 국가냐? 나라냐?’고 묻는데, ‘그래 맞아. 이게 국가야. 이게 우리 가진 사람들 국가야’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 현 한국 사회에요. 지금도 국민들은 계속해서 상처를 받고 있는데 ‘미개한 국민’이라는 둥…. ‘그래 맞아. 그거 인제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것같아서 아주 끔찍하죠.

전 : 세월호 사건과 의료민영화는 계속 얘기가 섞이는 것같네요.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는 우리 사회에 적용할 곳이 많은데, 왜 사회의 주된 가치로 승화시키지 못했을까요?

우 : 결국 어떻게 이 사회를 바꿀 것이냐는 질문 같은데, 사실 의료민영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면 반대가 70%가 항상 넘어요. 심지어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네이버나 다음에서 의료민영화를 치면 원격의료 및 4차투자활성화대책이라는 정부 사이트가 제일 먼저 뜨는데, 거기를 들어가면 ‘대한민국 정부는 의료민영화를 반대합니다’라고 씌어 있어요.

대놓고 의료민영화를 하지는 못하고 있는 거지요. 예전에는 논쟁이 벌어지면 민영화가 더 좋은 거라는 식으로 홍보했는데, 지금은 민영화가 아니라고 말해요. 그건 우리가 바꿔낸 쉽지 않은 성과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현재 그 가치를 추동할 역량이 많이 무너졌다는 거에요. 심지어 놀라웠던 것은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직접 찾아갔는데, 시민사회단체? 정당? 그 사이에 아무도 없었잖아요.

전 : 시국회의가 서울광장을 막고 있는데, 거기다 (세월호) 상황실을 만들자고 해서 만든 상태에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미약한 건 사실이죠.

또 여당 야당 다 지지율 떨어진다고 하는데, 진보정당은 거의 무력해진 상황이에요. 국민은 진보정당하고도 정서적으로 멀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우 : 양 면이 있다고 생각돼요. 저는 크게 봐서는 진보정당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져야만 한다고 여전히 생각해요.

또 하나는 거대담론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정책도 중요하다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지난번 박원순 시장이 출마했을 때 선본에 찾아가서 정책을 하나 제안한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 공공의료부문 중에서 제일 취약한 부분이 ‘저녁이나 주말에 응급실 갈 정도는 아닌 경증환자가 물어볼 곳도, 갈 곳도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런 경우 유럽에서 많이 하는 ‘경증질환에 대한 공공의료기관 및 전화삼담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7대 공약 중 하나로 들어갔죠. 물론 유일하게 그 공약만 이행이 안됐지만 말이죠.

진보세력이 훨씬 더 커지려면, 거대담론 뿐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 아까도 얘기했지만, 여도 야도 죽쑤고 있지만, 진보는 더 지지를 못받고 있는데, 진보가 뭘 잘못했을까요? 뭘 바꿔야 될까요?

우 : 민주노동당이라는 한번의 실험이 있었죠, 그런데 실패했어요. 왜일까요? ‘분단’이라는 상황이 가진 객관적 한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제 1야당은 진보적인 가치나 정책들을 표명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어요. 이 한계를 넘으려면 여전히 진보정당 외에는 해답이 없다고 보여요.

그러려면 진보세력 내에도 다양한 입장이 있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연대해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실패한 거죠.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제1야당이 메꾸지 못한 정치적 공백을 안철수 세력이 메꾼 형국이에요.

촛불시위 정국과 진보운동의 한계

전 :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네요? 최근 건강이 안좋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시나요?

우 : (성수의원을) 일주일에 두 번 쉬어요. 재작년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세 번 쉬었어요. 경제학을 다시 공부해서 늦은 나이지만 모대학의 경제학 박사과정까지 마쳤어요. 일주일에 3일만 일하니까 굉장히 행복하더군요.(웃음)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삭았냐, 배가 많이 나왔냐 해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고, 건강검진을 받으면 다 정상이에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 혈액아니냐면서 의심을 하고 있지만 말이죠(웃음)

전 : 운동을 한다면서 배는 그대로인 거 같은데요?

우 : 작년 진주의료원 사태 때 단식을 해서 6킬로가 빠졌는데, 요요현상이 와서 다시 쪘다가, 다시 뺐는데, 조금씩 조금씩 찌더니 지금은 더 많아졌어요.

전 : 치아가 많이 안좋으시다고 하던데?

우 : 대학 본과 3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공장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그때 너무 힘들었던 것같아요. 너무 못먹었고…. 몇 개월 지나니까 이가 들뜨고 매우 아프더라구요. 급성치주염이었던 것같아요.

너무 아파서 치과에 갔더니 ‘하나만 씌우면 되겠네’ 해서 씌웠고, 그래도 너무 아파서 또 갔더니 '신경치료가 하나 안되었군...이 신경하나만 더 죽이면 되겠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치료해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빨이 다 망가졌어요. 결론은 이게 다 건치때문이라는 거죠(웃음) 그 치료를 해준 건치 회원 이름을 말하고 싶진 않은데, 연대 나오고 장관까지 하신 분이에요.(웃음)

전 : 유명한 사회운동가 한분이 치과에 오셨는데 오시기 전에 어떤 진보교수의 치과 치료 받으려면 건치선생들에게는 가지마라 사회의식은 높지만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해서 진료실력은 없을거라 는 말을 들었지만 자신은 건치 선생님을 믿고 이곳에 왔다 하시더군요. 그 분 집이 멀어서 건치회원 치과에 소개해서 치료 진행했는데 매우 만족스럽게 치료 잘 받았다 하시더군요. (웃음) 그 분이 시인이기도 하셔서 이런 내용을 시로 쓰시기까지 하셨고요.

우 :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웃음)

전 : 살아오신 얘기를 더 해 보죠. 공장은 왜 들어갔나요?

우 : 뭐. 그때 운동권들이 다 그랬잖아요. 내가 80학번인데, 83년에 성남에 있는 고무공장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80년대 후반이 되면서 내가 속해있던 그룹이 각자 알아서 갈 수 있는 데로 가라고 하더라구요. 89년에 복학해서 91년도에 졸업하고, 가정과 예방의학 2개를 전공했어요.

조희연 교수 아시죠. 당시 풀빛 출판사 사장이셨는데요. 제가 공장에서 나와서 먹고 살게 없어 출판사에 취직을 하려고 찾아갔었어요. 찾아가서 취직 좀 시켜달라니깐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고 해놓고는 연락이 없더군요. 나중에 들어보니 ‘의대 휴학한 얘가 무슨 취직을 시켜달라 그래’라고 하셨다더군요. 당시에는 학교를 다시 다닐 생각도 없었고...나는 나름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는데….(웃음)

전 : 다행히 구속을 당하신 적은 없네요?

우 : 제 주변에는 다 한번씩 들어갔다 왔다고 봐야죠. 제가 속해 있던 곳이 몇 번 털렸는데, 한번은 내가 쉬는 사이에 다 잡혀간 적도 있고… 엄청 운이 좋았죠. 한번은 웃겼던 게, 경찰서끼리 실적 경쟁이 치열해서 서로 정보를 안주기도 해서 한 경찰서가 수배를 내려도 다른 경찰서는 모르기도 했어요. 그 덕분에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풀려난 적도 있었어요. 물론 몇 대 맞기는 했지만.

 
전 : 인의협이나 보건연합 활동은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건가요?

우 : 복학한 후 노동건강연구회에 처음 들어갔어요. 노동운동 쪽을 했었으니까. 인의협 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의협을 만들던 입학 동기들과 같이 정기적으로 만나고는 있었죠.

전 : 우석균 하면 한미FTA와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빼놓을 수가 없죠.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진 것도 촛불시위 때인데요. 한미FTA는 미리 대비하고 계셨던 건가요?

우 : 보건연합이 처음 만들어진 것 자체가 2001년이었는데, 의약분업 때 보여졌던 직능간 이해관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이유와, 민주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과는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이유 두가지 때문이었어요.

당시 신자유주의에 대해서는 진보진영에서도 잘 몰랐어요. 지금은 ‘신자유주의 반대’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구호지만, 당시에는 논란도 굉장히 많았죠.

FTA를 처음에 어떻게 알았냐면, 글리벡 반대운동을 하다가 변혜진 선생(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실장) 소개로 브라질에서 열리는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게 됐는데, 거기서는 FTAA(남미 FTA)를 반대하는 운동이 한창이었어요.

'미국 아랫 마당이니까’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신자유주의 문제를 망라한 황당한 협정이더군요. 그런데 몇 년 지나보니 한국에서도 FTA를 한다는 거예요. 건강과 신자유주의간의 문제, FTA와 의약품이나 건강문제 등등은 브라질 세계사회포럼 때부터 주목하고 있었어요.

전 : 광우병 문제는요?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요?

우 : 전 2003년 미국에서 광우병이 처음 터졌을 때부터 매우 큰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남들은 황당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미국산 쇠고기를 한국에 수출한다고 했을 때 신자유주의 문제의 핵심적인 문제가 될 거라고 어느 정도는 예측했죠. 물론 그게 그 정도로 뻥 터질 줄까진 생각하지 못했지만….

또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막 일어나기 시작했을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이건 막을 수 없다고 했는데, 전 생각이 달랐어요.5월 2일인가요. 당시 처음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서는 ‘지금의 대중을 봐라. 운동권이 아니다. 그야말로 쌩으로 처음 나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거야말로 대중운동 자체이기 때문에 더 큰 운동으로 흘러갈 거다’ 이렇게 생각했죠.

지금도 후배들이 그때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봐요. 당연히 87년 경험 때문이죠. 2008년 메이데이 때 거리행진을 하는데, 그 때 87년 6월 항쟁 직전의 사람들의 반응을 봤어요. 6월항쟁 전의 전야와 비슷했고 이렇게 한번 터지면 정권이 아무리 힘이 커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았죠.

저는 건치나 인의협이나 보건의료단체연합이나 한 단체라는 게 조직체계나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의 경험들을 보존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단체는 역사적 경험을 담는 그릇이고, 현재의 운동은 6월항쟁의 결과물이며, 보건의료단체들은 이런 싸움이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전 : 하지만 촛불시위가 정치적 결과물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어요. 뭐가 잘못됐을까요?

우 : 우여곡절이야 많았죠.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저는 지금도 촛불이 어떤 의미에서는 끝나지 않았다고 봐요. 좀 더 크게 보면 87년 이후로 우리나라의 정치적 세력관계는 크게 바뀌지 않았어요.

87년 어정쩡한 타협으로 6공화국이 생겨났고, 그 이후 5번째 대통령인데, 2008년은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운동이었어요. 미완의 운동이 어떻게 끝날 것이냐는 박근혜 정부 때에 판가름이 날지 아니면 아직도 이른 것인지도 모르죠.

촛불시위 정국 당시 미국산 쇠고기 문제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의료민영화 반대도 있었고, 잠 좀 자자 밥좀 먹자는 교육문제도 있었고 대운하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 언론장악 반대의 6대 의제가 있었죠. 의료민영화와 공기업 민영화 반대의 두가지만 이명박 정부가 다 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뀌었죠. 그걸 박근혜 정부가 시도하고 있구요.

지금도 이 의제들은 우리 사회문제의 핵심이구요. 그 때부터 대중들은 사회의 핵심문제들을 꿰뚫고 있었다고 봐야죠.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대중의 자발성 보다는 여전히 촛불 때도 모자랐던 사회운동의 지도력이라고 봐요.

경제위기 탈출해법의 ‘위험한 진실’

전 : 이젠 보건의료운동 얘기를 해보죠. 대중과 함께 하는데 있어, 직종 이기주의를 버리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어요.

우 : 직능 이기주의라는 게 보건의료 전체 직능의 이해라는 것도 있고, 의사와 약사, 의사와 치과의사 등 직능간의 대립문제도 있죠. 객관적으로 보면 운도 좋았던 것같지만 제일 잘 하는 게 건치라 생각해요. 직능간 긴장관계가 없을 수는 없는데, 다른 단체들은 보건의료계 사이의 직능간 갈등도 많았고 직능의 이해 때문에 이른바 협회와의 갈등도 많았던 반면 건치는 잘 극복해왔던 것 같아요.

보건의료운동은 장기적으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의료인의 자율성 전문성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 생각해요. 때문에 건치 등 4개 보건의료단체들은 직능협회와 긴장적 협력관계, 독립적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사회의 모든 윤리적인 것들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지식인들의 전문성과 독립성, 자율성을 지켜내는 것이 핵심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 직능 속에서는 긴장관계 속에서 진보적인 부분과 얽히는 역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운동 속에서 진보적인 지식인 운동, 그람시의 말을 빌면 유기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2가지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 자! 마지막으로 의료영리화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 :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위기 국면에서 재벌들이 살아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타개책이 바로 ‘공공부문 민영화’에요.

삼성이 향후 먹거리를 의료라고 선언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인데, 한국 GDP의 33%를 삼성과 현대가, 44%를 4대 재벌이 차지하고 있어요. 원격의료하면 개인질병정보와 IT영역을 삼성, 현대, 엘지, SK가 다 가져가는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건강보험재정 국고지원분을 현재 14%(17%인데 이중 3%는 담배에서 가져오는 거죠)인데, 2018년까지 10%로 깎겠다고 하고 있지요.

그렇게 국가가 책임을 덜 지고 나머지를 재벌들의 돈벌이로 넘기는 게 ‘경제위기 타개’의 기조이고, 때문에 그렇게 전 국민들이 반대하는데도 추진하는 거에요.

그렇다고 저들이 이기기도 쉽지는 않아요. ‘의료민영화가 아니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영국의 경우는 ‘뒷문민영화’(back door privatization)라고 부르던데, 보장체계는 놔두고 공급체계만 바꾸는 식으로 NHS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우리도 건강보험 체계는 그대로 놔두고 공급체계부터 바꾸고 정부 책임을 줄이는 식으로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거든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의료민영화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전체 사회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한 절대 이길 수 없어요. 보건의료운동만으로는 힘들고, 흔히 하는 말로 광범위한 연대가 필요한 것이고, 그 속에서 보건의료운동은 자기 역할을 더 키워야 합니다. 광범위한 연대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루 이틀에 끝날 싸움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인내를 가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추가로 세월호와 원격의료를 연계해서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에서 더 필요한 것은 구석구석에 사람과 시설, 즉 기본적인 인프라를 늘리는 것이지 IT로 땜방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호에서 카톡은 가능했지만, 구조할 수 있는 인프라는 없었어요.

‘규제완화와 민영화가 사람을 잡는다.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다’를 세월호가 우리에게 보여준 거고, ‘규제완화와 민영화는 더 이상 안된다.’ 이게 세월호가 주는 교훈이어야 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게 살아남은 우리에게 남겨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 : 오늘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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