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의 경박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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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의 경박성에 대하여
  • 김광수
  • 승인 2014.08.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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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광수 논설위원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일이 우리의 지상 과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박정희 일당독재의 타도와 올바른 선거제도의 확립을 뜻하였다. 이제는 박정희 일당독재 시대도 끝났고, 선거도 제법 제대로 치러지고 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이 과거에 비하면 수백분의 일 밖에 안 되는 이 시대에도 그것을 일년이상 문제 삼는 아주 자유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었고, 이제는 수동 개표와 전자식 개표의 차이가 불과(!) 수백표 밖에 안되는데도 부정선거라고 악악댈 수도 있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가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고 느끼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과제는 더욱 늘어났고 민중의 삶은 더욱 퍽퍽해졌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주장한다. 과연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30년 전에 생각했던, “독재자 박정희만 처단하면” 좋은 나라가 될 것이라는, “선거부정만 없다면” 민주주의가 확립될 것이라는 (그리고 민주주의의 확립이 정치제도 발전의 지상과제라는) 그런 생각이 완전 오류였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누구나 쉽게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쉽게 우리의 과거를 오류라고 인정해도 되는 것일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미래가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것도 그리 쉽게 “오류였다”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박정희 일당독재에 항거해서 그 결과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 고문을 받다가 미친 사람, 매일매일 악몽에서 평생 동안 시달리는 사람, 고문과 감옥생활에서 얻은 병으로 평생 가난과 불구로 사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는 한동안 그런 사람들에게 줄 보상금을 깎는 국가기관에서 판정위원 노릇을 했다). 그 사람들의 목숨, 그 사람들의 평생 동안의 정신질환과 악몽, 그 사람들의 평생의 가난과 불구를 그렇게 “오류”였다고 쉽게 말하고 끝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것이 오류였다면, 지금 우리가 하는 지역운동이나, 소그룹운동, 안철수 현상이나, 후보선출방법에 관한 힘겨루기나 이런 것들은 오류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박정희만 몰아내면 우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던 그 생각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이 말은 또 그들을 얼마나 서운하게 할 것인가). 그에 견주어 본다면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 지금 지상과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불과 얼마 안가서 오류라고 판명났을 때, 또 그렇게 손쉽게 “그때는 오류였다”라고 털어버리지는 않을까? 나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제 5년에 딱 한번 딱 한 표씩으로 한 나라의 지배자를 뽑는 일이 민주주의와는 매우 거리가 먼 방법이라는 것도 알만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또 박근혜 당선, 손학규 노회찬의 탈락 등을 보면서 선거라는 제도가 매우 어리석은, 우매한 제도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 우매한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었다니! 그것도 불과 삼십년 전에!). 또 그래서 선거제도는 나쁘고, 직접민주주의니, “무정부주의 다시보기”니 뭐 이런 것들이 회자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 또한 얼마나 경박스러운가! 80년대 사회주의와 북한에 지나치게 경도되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지극히 현실주의자가 되었거나 보수 쪽으로 경도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에 와서 사회주의를 실패한 제도라고 말하는 것은 그 또한 얼마나 경박스러운가.
 
이쯤에서 도대체 필자가 무엇을 주장하느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어려운 난국에 내가 뭘 주장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자신이 주장하는) 신념들이 얼마든지 틀릴 수 있고 오류 일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매우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 하는 사안들에 대해서) 또다시 오류를 범하고 나서 손쉽게 “그때는 오류였다” 라고 치부해 버리는, 그 경박함이 싫고, 그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일이 두렵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이른바 운동권과 소위 진보진영의 가장 큰 오류이자 국민들이 운동권과 진보진영에 등을 돌리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경박성과 무책임성 아니었겠나, 내게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광수(본지 논설위원, 한국산업구강보건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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