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셈법과 다른 할매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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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셈법과 다른 할매들의 세계
  • 김랑희
  • 승인 2014.08.27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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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랑희 인권활동가, '불온하고 위험한 인권이야기'

 

얼마 전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다. 밀양 할매들의 이야기를 담은 <밀양, 반가운 손님>이라는 영화다. 할매들은 영화 속에서 한국의 근‧현대를 살아온 삶의 역사를 들려주고, 공사를 막기 위해 매일같이 산을 오르는 마음을 보여주고, 자신들을 버린 국가에 대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면서도 서로를 보듬는 애정과 믿음으로 굳건함을 드러냈다.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할매들의 삶과 밀양이라는 공간은 하나다. 그래서 할매들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할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할매가 송전탑을 보면 가슴이 턱 막힌다는 표현은 자신의 가슴에 송전탑이 박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큐멘터리「밀양, 반가운 손님」스틸컷

할매들은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면서 ‘재산’을 지킨다는 말을 한다. 우리는 보통 ‘재산’이라고 하면 그것의 가치가 금액으로 어느 정도가 되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런데 할매들은 돈을 얼마를 줘도 송전탑과 바꿀 수 없다고 한다.

송전탑 반대투쟁이 맘에 들지 않는 이들은 할매들이 더 큰 보상을 바라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매의 얘기를 들어보면 돈도 싫다고 하고 그대로 살게만 해달라고 한다. 공사를 꼭 할 수밖에 없다면 땅 밑으로 가게 해달라고 한다.

할매들이 지키고자 하는 ‘재산’을 우리는 가늠할 수 있을까? 나는 할매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나도 ‘재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몇 번의 이사를 하고 서울의 변두리 동네에 정착했다. 그곳은 새로 지어진 비슷하게 생긴 빌라들이 언덕길을 따라 줄줄이 이어진 동네였다. 나는 그 동네, 그 집에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30대 초반까지 20년을 살았다.

그동안 그곳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수명을 다한 보일러와 벽지, 장판이 바뀌었을 뿐 많은 것들은 내가 나이를 먹어가듯이 함께 시간의 흐름대로 따라갔다. 집 앞 대추나무와 은행나무가 점점 키가 커지고 잎과 열매가 무성해졌고 이웃들도 같이 나이를 차곡차곡 쌓아갔다.

여전히 이웃들은 뒷마당에 빨래를 널었고 아침마다 차를 빼달라는 전화에 서로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옆집 친구는 같은 학교에 다녔고 우리는 직장인이 되었고 결혼을 일찍 한 친구는 새로운 가족과 휴일에 놀러 왔다. 내가 그 집을 떠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몇 년 전부터 소문만 무성했던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재개발은 그곳에 오래 살던 이웃들에게는 기대이기도 했지만, 갈등이기도 했다. 어떤 건설사의 브랜드가 들어오느냐는 첨예한 문제가 되었다. S사의 브랜드를 추진하던 주민은 내게 ‘엄마가 좋은 아파트에서 사는 게 좋지 않겠냐’며 이미 결정된 건설사를 바꾸자고 했다. 그 주민이 말하던 ‘좋은’ 아파트는 브랜드가치가 높은, 즉 부동산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집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내게는 낡았지만 여전히 좋은 동네였기 때문에 아파트 브랜드보다는 재개발 뒤에 동네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가 더 걱정이었다.

지난한 갈등의 연속 속에 드디어 재개발은 끝났다.

새집에 대한 기대에 이삿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부모님을 따라 오랜만에 옛 동네에 갔다. 내가 알던, 익숙한 그 동네는 더 이상 없었다. 고만고만한 빌라들은 고층 아파트로 변했고 이웃들은 떠났다. 가을이면 아삭한 초록열매를 따먹게 해주던 대추나무도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에 걸어오던 언덕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됐다.

봄이면 밤공기를 가득 채운 라일락 향기도 더 이상 맡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길일뿐이겠지만 내게는 20년의 시간이 쌓여 있는 특별한 언덕길이다. 이제는 다른 공간이 되어버린 낯선 길을 걸으며 슬퍼졌다. 가장 슬픈 건 길을 걸으면 떠오르는 기억을 되새길 수 있는 것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다.

애인과 손을 잡고 걸었던 기억도,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고 우르르 몰려다녔던 기억도, 술에 취해 혼날까봐 집에 못 들어가고 서성거렸던 기억도. 어린 시절 흠모했던 남자아이의 집을 쳐다보며 ‘그 아이는 잘살고 있을까’하는 생각도 이젠 사라졌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달리 한순간 오랜 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흔적과 기억의 상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자란 동네의 주소는 그대로지만 나의 그리운 동네는 사라졌다.

고층 아파트는 마치 나의 20년의 시간과 추억을 묻어버린 무덤의 묘비 같았다.

한평생을 일구어 온 터전을 그저 몇 평의 땅이나 시가 얼마의 땅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가난해서 입을 것, 먹을 것이 없었지만 열심히 노동했던 그들, 글을 모르고 셈에 어둡지만 얕은꾀를 쓰지 않고 정직하게 노동했던 그들은 이제 굽은 허리와 휘어진 손가락으로 자신의 한평생 노동으로 보낸 세월을 보여준다. 그 정직한 노동을 차곡차곡 쌓아 논밭을 일구어온 자부심이 할매가 말하는 재산이다.

 

▲다큐멘터리「밀양, 반가운 손님」스틸컷

정답고 살가운 이웃의 정이 재산이고 철마다 아름다운 풍광과 풍요로운 결실을 주는 자연이 재산이다. 정직한 노동을 배신하지 않는 땅의 수확물을 자식과 이웃과 나누는 기쁨이 재산이다. 이 재산들을 소중하게 가꿔 이제는 자식들의 품으로 이어주며 미래의 재산으로 이어지길 소망했다. 할매의 재산은 생애 최고의 보물이었다.

자신의 온 삶을 통해 남겨주려 했던 보물은 송전탑 때문에 흩어지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평생의 삶과 밀양의 산과 땅을 떨어뜨려 놓고는 생각할 수도 없는 할매는 이제 송전탑이 들어서면 자신의 삶이 허튼 것이 되어버린다며 슬퍼한다. 생을 향해 살아왔던 할매가 지금 가슴에 죽음을 품고 하루하루를 보낸다. 삶과 평화를 기대했던 할매들에게 죽음과 전쟁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국가는 원망스럽다. 86세, 말년의 할매는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하루라도 ‘내 나라’였던 날이 없었다고 말한다. 여러 전쟁을 겪었지만 지금 같은 전쟁이 없었다고, 제일 큰 전쟁이라고 말한다.

할매들은 매일 산을 오르고 길목을 지킨다. 10명도 채 안 되는 할매들이 수십 명의 경찰과 한전직원들을 막을 수 없는 것은 해보지 않아도 뻔 한 일이다. 그런데도 할매들은 매일 되지도 않는 싸움을 한다.

마치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어떤 의식처럼 느껴진다.

이곳을 함부로 짓밟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지이자 경고처럼 보인다. 공사장으로 향하는 그 길은 할매들의 일터로 가는 길이었고, 이웃과 정담을 나누는 길이었으며 반짝이는 잎을 보며 위로를 받던 길이다.

 

▲ 경찰과 대치중인 밀양 '할매들'

송전탑을 건설을 위한 길이 되어 인부들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게 할 수 없는 것이 할매의 마음이다. 그 할매의 마음은 경찰의 보호 아래 인부들이 그 길을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짓밟히고 있다.

할매들의 ‘재산’에 국가는 얼마간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국가의 보상이란 것은 땅값을 주겠다는 것이다. 그 보상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터무니없는 액수 때문만이 아니라 할매들이 소중하게 지키고자 한 ‘재산’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산을 돈의 가치로만 환산하는 세상에서 할매들의 ‘재산’ 지키기는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물질적 욕망으로만 해석된다. 그러나 할매의 세계는 물질이, 돈이 전부가 아닌 세계다.

사람은 ‘울력’으로 사는 것이라고 믿는 할매의 세계는 돈으로 계산하는 세상과 화합할 수 없다. 울력 대신 돈의 세계가 마을을 점령해 마을 사람들이 갈래갈래 찢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할매들의 고통이다. 돈의 가치와 경제적 이득을 따지는 숫자의 세계에서 할매의 재산의 가치는 사라졌다.

모든 것이 경제적인 수치로만 따져진다면 우리가 삶에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일까? 경제성과 효율성이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만 인정되는 사회에서 사람의 마음과 삶은 누가 돌봐줄 수 있을까?

밀양만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도 우리는 생명보다는 돈의 가치를 우선해서 더 많은 화물을 실었고, 수익을 위해서 법을 고치기도 하고 편법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군대에서 벌어진 사고 역시 군인의 인격보다는 군대 유지의 효율성이 우선이었고 군인은 소모품으로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과 삶을 돌보지 않을 때 생명은 사라지게 된다.

할매들은 국가가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와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설마 농민들의 삶을 망치는 그런 사업을 우리가 반대하는데 쉽게 할 수 없으리라, 설마 목에 사슬을 매고 있는데 함부로 공구를 들이대며 끊어버리지 않으리라.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절망스런 배신감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일이 저마다의 가치가 다를 것이고, 남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설령 같은 상황에 처해졌더라도 서로 다른 결정과 행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가 오랜 시간 자신의 삶과 생명을 걸고 말도 안 되는 싸움을 버티고 지키고 있다면 무언가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란 짐작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런 짐작으로부터 귀 기울여 목소리를 듣고 마음을 헤아려보기 시작한다면 그들이 그렇게 서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정치는, 국가는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사라진 곳에 정의도 사라지고 지켜야 할 공동체도 사라진다. 사람의 마음, 연민과 위로의 마음이 없는 정치와 국가는 비수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김랑희(인권활동가, 인권운동공간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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