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 첫 인터넷 신문 창간으로 바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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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계 첫 인터넷 신문 창간으로 바빴죠”
  • 강민홍 기자
  • 승인 2014.10.29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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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주년 특별기획] 역대 편집국장 릴레이 인터뷰…장현주 6대 편집국장

 

 
2003년 건치신문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 편집국장을 맡으셨는데, 각오가 남다르셨을 것같은데요?

선출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연차별로 편집장을 맡게 되는 분위기라 나에게 차례가 돌아오게 됐죠. 연차로 치면 문세기 선생이 신문사 생활을 저보다 1년 먼저 시작했지만 학번에 밀렸고 당시 같은 학번이었던 최덕형 선생은 기여도가 낮다는 이유로 밀렸죠. 저울질할 여유나마 있었던 그때가 참 좋았는데…(웃음)

편집국장 자리가 할 일만 많고 생기는 것 없는 자리라 딱히 각오를 가지고 도전할 일은 아니었지만, 당시 신문사에 얼마 안되는 여성인력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여성주의적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해요.

때가 되었고, 기회가 왔고,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았는데, 각오보다는 부담이 더 많았어요. ‘그저 욕먹는 일은 없어야 할텐데’ 정도?

편집국장을 맡았을 당시 건치신문 상황은 어땠나요?

타블로이드판 종이신문을 32p로 격주로 만들다가 건치신문 재정이 점점 어려워져 기자도 4명에서 2명으로 줄이고, 종이신문 발간도 격주에서 월간으로 전환한 시기였어요. 말 그대로 최악의 시기였죠. 동시에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었는데, 바로 온라인 신문으로의 변신을 모색하던 시기였어요.

‘인터넷 건치’ 준비는 2003년 초부터 진행했던 것으로 아는데, 창간까지 왜 근 2년이나 걸렸나요?

1차로 홈페이지 구축을 맡았던 업체가 시민사회단체들에게 저렴하게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던 곳이었는데, 인터넷 신문이 갖춰야 할 시스템까지 소화하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같아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많은데, 소화하지 못한 채 일정을 계속 맞추지 못하고 지지부진하게 근 1년여를 그렇게 질질 끌다가 결국 업체를 바꾸게 됐죠. 전성원 선생님 소개로 엔디소프트라는 온라인신문 서버 전문업체와 계약을 하게 됐고, 곧바로 홈페이지 구축을 본격화 했어요.

인터넷 신문 창간 준비로 많이 바쁘셨을 것같은데요?

이듬해인 2004년 5월에 홈페이지가 구축돼서 4개월여 동안 시범운영을 하고, 10월에 정식으로 창간을 했는데, 시범운영을 하면서 어떠한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던 것같아요.

한 예로 인터넷 신문은 ‘속보성’과 ‘컨텐츠’가 생명이잖아요. 그러려면 같은 기사가 화면에 오래 떠있는 일을 피하고 다양한 읽을거리를 게재해야 하는데, 기자 2명만으론 역부족이었죠. 그래서 다방면으로 필진을 확보하려 노력했었던 기억이 나요.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건치 중앙운영위에도 가급적 참가하면서 시도지부장들에게 지역별 필자들을 발굴하고 지역회원들이 접속을 많이 해주도록 독려해 달라는 부탁을 열심히 했죠.

다양한 기사 컨텐츠 확보를 위해 위생사협회와 기재산업협회 기관지와 기사교환 협약을 맺기도 했구요. 하여튼 인터넷 신문 창간을 위해 해결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회의 결과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여부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같아요.

편집국장 맡은 이후 재정 상황은 어땠나요?

당시 재정부분은 편집국이 아닌 이사회 회의에서 많이 고민했던 시기였는데, 재정난 해결을 위해 후원회원을 처음 모집한 게 아마 이때였던 것같아요. 전·현직 편집위원들을 포함해 건치신문에 특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됐던 회원들을 중심으로 매월 10만원의 특별회비를 걷기로 한 거죠.

당시 기자단은 이인문 수석기자와 강민홍 기자가 있었는데, 기자 분들이 배너광고 확보한다고 동분서주 했던 게 기억나요.

 
당시 건치와 치과계 내에서 건치신문은 어떤 위치에 있었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건치신문은 언제나 치과의사들만의 신문은 아니었어요. 치과계 내에서는 관련이슈마다 언제나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고, 치과계 뿐 아니라 보건의료, 사회 불평등 등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뤄왔고, 대선 등 한국사회의 중요한 시기마다 치과의사 대중들에게 시대가 가야할 방향과 흐름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물론 재정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론 치과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인터넷언론으로 거듭나며, 치과계 여론을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건치와의 관계 속에서 본다면 건치신문은 건치의 왕성한 활동력을 기반으로 건치의 기관지처럼 오랜 시간 인식돼 왔어요. 기관지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편집위원들 사이에 늘 암묵적 동의로 존재했지만, 건치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역할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죠.

최근 건치의 활동력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건치신문사의 역할이 부각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건치의 중요한 사업주체 중의 하나 그리고 재정지원 부담 때문에 약간의 골칫거리였던 것같아요.

기억에 남는 기획이나 기사는요?

이라크 전쟁 때문에 한국군 파견 반대 등 반전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였고 당시 건치에서 이라크 의료지원 활동에 동참했었기 때문에 관련 기사 또는 기획이 매 회마다 이어졌고,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으로 현재 건치신문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솔직히 (편집국회의에 거의 안나가다 보니) 현재의 건치신문을 평가하거나 조언할 만큼 잘 알지 못해요. 그저 언제나 아쉬웠던 점을 지적하자면 발로 뛰면서 쓰는 기사가 적다는 점. 현장의 직접적인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보다 언제나 정리된 차갑고 드라이한 논리적인 기사들로만 주로 채워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맨 파워의 부족이 큰 이유라는 걸 알지만 기자들이 인터뷰하는 걸 두려워하는 건 아닌지 가끔 생각하기도 했어요.

건치신문은 한때 전임 대통령과 현직 서울시장과도 독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파워를 가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물론 그 분이 대통령이 될 줄 그땐 몰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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