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기요틴, 단두대처럼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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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기요틴, 단두대처럼 사라질 것이다.
  • 김형성
  • 승인 2015.01.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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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김형성 논설위원

 

정부가 작년 12월 28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관합동회의를 열어 ‘경제혁신의 지름길, 규제기요틴(단두대, 이하 규제 단두대)에서 찾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민관 합동회의라지만 '민'에 속하는 자들은 기업가들의 이해를 모아 정부에 로비를 벌이는 이해집단이다. 민관합동회의는 '기업의 이해를 관이 함께 모여 해결을 도모'하는 회의이다.

여기서 다뤄진 내용들은 한해를 마무리하는데 새로울 것은 없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의 가면을 내버린 이후 기업가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낸 각종 '민원' 사항들의 총 정리 판일 뿐이다.

총 153건의 기업들의 민원 중에서 114개를 추진하기로 확정하면서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키로 하였기에 이를 '규제 기요틴' 회의로 규정했다고 전했다.
 
기요틴, 길로틴으로 부르기도 하고 우리말로 단두대라고 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한때 사용되었던 사형집행 도구의 명칭이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시기에 기존의 사형도구들이 사형수와 집행관들에게 비인도적이고 불편감을 주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당시 왕의 주치의였던 조세프 기요탱의 건의로 제작되었으며 1981년 사형제 폐지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프랑스에서 참수형은 특권층에게 제한된 명예로운 형벌로 여겨졌으며 그런 측면에서 기요틴은 평등한 사형제도의 의미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아마도 신자유주의 규제철폐에 있어서 기요틴을 갖다 붙이려는 심정에는 '규제=사형죄', '시장=천부인권'이라고 믿고 싶은 시장만능 자유주의에 대한 맹신이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기요틴의 존재이유인 사형제도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미 폐지된 것과 다름없는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규제단두대(이제 공부는 끝났으니 쉽게 단두대로 쓰겠다) 회의에 올라온 기업가들의 요구항목 114개 중에는 보건의료에 관련된 중요한 항목 12건이 포함되어있다. 이 중 뻔하디 뻔한 속내를 들여다보이는 8가지 항목을 챙겨보면 다음과 같다.

-보건복지 분야를 경제부처(기획재정부)에 모두 넘겨버리게 되는 의료민영화 핵심법안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개정요구

-아직도 부족한지 더 요구한 메디텔 기준완화, 경자구역 의료법인설립 기준완화 요구

-무분별한 사용으로 안전성이 위협될지 모를 미용기기 분류신설 요구

-줄기차게 몰아붙이는 의사-환자간 원격진료 규제개선

-원격의료기기 업체의 민원을 꼼꼼히 챙겨 넣은 디지털 헬스기기 인증제도개선요구

-의료기기 시장 확대가 목적인 카이로프랙틱, 문신허용

-개인정보 유출사고가 연이어짐에도 불구하고, 더 큰 위험성이 내포된 의료정보에 대한 외부보관 및 공유요구

-의료민영화에 반대해온 직능단체에 내분도 일으키고, 의료기기 시장 확대에도 도움이 될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및 보험적용 확대 요구

단두대는 프랑스에서 벨기에, 독일 등에도 전해졌다. 단두대에 희생된 것은 범죄자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히틀러는 수많은 반나치 정치범들을 단두대에 희생시켰다고 한다.

규제단두대 아래 세우려는 규제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를 저 민관합동회의의 보고서를 살펴보며 갑론을박하는 것은 덧없다. 이 보고서는 이미 경제민주화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제 이권을 어떻게든 이 정권의 로비에 관철시키려는 '이해관계 로비보고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서 한국을 규제단두대의 성공적 사례로 들고 있는 세계은행 보고서에서도 IMF 당시 한국의 신자유주의 규제철폐들은 기존에 만연했던 정부관료-기업 간의 고리(정경유착)를 끊기 위한 규제철폐를 통해 시장효율성을 높인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면 규제단두대 민관합동회의 보고서는 어떤 시장의 효율이 느껴지는가, 아니면 특정 기업집단의 이해관계가 더 느껴지는가?

(물론 IMF 시절 규제개혁의 결과는 정경유착을 질펀하게 요정에서 벌이던 3공, 5공 시대에서 보은성 관리출신 임원을 제도화한 회전문인사로 바뀌었다는 정도, 그리고 그 규제철폐란 것의 핵심은 지금도 악화일로에 있는 세계 최고의 비정규직제도와 민영화였다.)

 단두대는 사형제 폐지라는 인간사회의 더 높은 차원의 합의로 사라졌다. 규제 개혁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려면 기업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국민을 무시하는 (기업에게는)작고 (국민에게는)강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규제개혁이라는 접두어가 사라져야 한다.  신자유주의를 프래임에 두지 않으면 우리 보건의료인들의 반의료상업화 투쟁이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도 한 순간일 것이다. 

 

 

 (김형성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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