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흑자와 복지축소
상태바
건강보험 흑자와 복지축소
  • 정형준
  • 승인 2015.02.10 1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 정형준 논설위원

 

국민건강보험 흑자가 2014년 말까지 12조원을 넘었다. 작년 한해에만 4조원의 흑자가 또 발생했다. 흑자의 원인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면 여러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있겠지만, 간단히 보면 경제위기로 인해 국민들의 의료이용이 줄거나 비용지출이 적은 쪽으로 이동한 것이 크다. 즉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남겨진 흑자를 사용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쉬쉬하거나, 대안논의가 거의 없다.

우선 정부가 2월 3일 발표한 중장기 보장성 강화안을 보면, 대략적인 건강보험예산 사용내역이 나온다. 연평균 1.3조(공약이행사항 제외 시 연 3500억 원 수준) 정도의 예산만 건강보험 재정에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한 해에만 4조 원의 흑자가 났고, 만약 이런 의료이용행태가 유지되면 올해도 4조 가량의 흑자가 발생할 것인데 말이다. 즉 계속 엄청난 흑자를 내겠다는 이야기다.

원래 건강보험재정계획은 지출과 수입이 일치하게 세워야 한다. 건강보험은 매년 전년상황을 고려해 보험요율 및 수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의 이번 계획은 이해할 수 없다. 근데 여기서 잘 봐야 할 지점이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22일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건강보험 재정지원 만기도래('16년 말)에 대비하여 재정지원 방식 등을 재점검"을 언급했다.

실제로 2016년까지 국민건강보험재정 지원이 명시되어 있을 뿐, 지난 법안 도입 때(2010년)도 국고지원을 줄이려 한 세력이 많다.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국고지원을 축소할 것을 시사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낸 보험료를 계속 저축하면 국고지원금 축소의 명분이 커지므로, 정부는 남는 건강보험 흑자를 쓰지 않을수록 이득일 것이다.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면 건강보험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73.6%에서 2005년 이후 80%를 넘어섰고, 2012년에는 85.7%로 증가했다. 즉 국고 지원 비율은 계속 줄어들었고, 노동자•서민의 부담으로 보험 재정이 메워졌다. 사실상 복지긴축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 병원들은 이런 흑자 국면에서 최대한 자신의 몫을 늘리려 한다. 대표적으로 3대비급여 해결의 일환으로 시행되는 기준병실확대와 선택진료비 축소건은 조정되는 만큼 이상을 보상받았다. 보상액이 과다하다는 비판이 있는 정도다. 여기에 상대가치점수 조정을 앞두고, 전반적인 재정순증을 기대하는 상황이다. 수가인상협상과는 별개로 병원이 수가항목조정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국면이다.

그리고 그간 비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각종 항목 등도 급여범위로 이참에 집어넣으려 한다. 물론 정부는 저축을 하고, 정부지원을 줄일 궁리중이라서, 의료계의 요구를 일방적으로 들어주려 하지는 않는다. 의료계가 원하더라도, 의료이용이 증가하거나, 비용이 급증할 사업은 제외한다. 대표적으로 노인본인부담금 정액 상한선은 올리지 않는다. 여기에 입원일수와 법정본인부담금 비율을 연동하는 개악안까지 입법예고했다. 모두 국민들의 병원이용을 어렵게 하고, 치료비의 국민부담을 증대시키는 조치들이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은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가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국민들의 입장은 반영될 경로도 없다. 부자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병원을 이용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병원 이용을 점점 더 자제하게 되는 구조다. 사실상 부자들에게 유리한 의료제도인 셈이다.

따라서 의료복지와 관련해서는 재정흑자에도 현재 긴축이 추진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긴축의 칼날은 서민과 빈곤층을 향하고 있다. 그런데 ‘진보’세력의 대응은 변변치 않다. 건강보험 흑자에도 강하게 복지확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복지를 재정 탓으로 돌리는 정부여당의 주장에 일부 시민단체들은 증세운동까지 전개하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건보재정이 많이 남아도, 왜 쓸 곳을 정하지 못할까? 재정확충을 해도 어떻게 사용할지를 우리가 결정할 수 있을까?

현재 흑자하의 의료긴축상황이 보여주는 지점은 복지는 결국 돈 문제가 아니고, 세력문제(‘정치’문제)라는 점이다. 돈이 없어서 복지를 못한다는 주장에 진보는 동의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보험흑자를 보장성 확대로 이끌 운동이다.<끝>
 

 

 

정형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