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행복해야 아이가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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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행복해야 아이가 건강하다
  • 류재인
  • 승인 2015.02.16 1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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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교수의 논문한편] 류재인 교수

 보건의료를 둘러싼 현상의 판단과 대안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중요한 결정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류교수의 논문한편'은 치과의사이자 연구자로서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류재인 교수가 보건의료에 대한  논문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류재인 교수가 소개하는 논문들을 통해 보건의료관련 정책과 판단들이 얼마나 근거에 기반하고 있는지 살피고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연재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최근 보건복지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치과부분에 대한 보장성확대계획을 발표하였다. 이에 따르면 아동의 경우 2018년부터 12세 이하 광중합형 복합레진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 2017년부터 치아홈메우기의 경우 본인부담금이 현행 30%에서 10%로 인하된다. 또한 노인의 경우에도 임플란트, 완전틀니, 부분틀니 모두에 대해 대상연령이 낮아져서 2015년 70세, 2016년 65세까지로 기준이 완화된다.

일단 환영할 일이다. 무조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가면 될까. 이렇게만 하면 아이들이 치과 서비스를 정말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걸까. 진짜 그럴까?

최근 한 논문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고 있다. 카라카-맨딕(Karaca-Mandic)이라는 저자에 따르면 아동의 미충족 혹은 지연된 의료서비스에 대한 요구도, 즉 치료를 받지 못한 수요가 아동 자신의 본인부담금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 반면 가족 내 다른 구성원의 본인부담금 액수에는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즉 아이에 대한 치료비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치료비 부담이 많은 경우 아이에 대한 치료도 자연적으로 미뤄진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가족이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무작정 아이에게만 치료비를 퍼부을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니. 더 씁쓸한 것은 의과서비스나 약처방의 경우 이러한 경향이 미약하나 치과의 경우 매우 뚜렷하고 특히 특수한 의료서비스가 필요한 아동(이하 특수아동)의 경우 그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다.

이에 대해 그들은 다음과 같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특수아동은 의과 및 약 처방 진료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치과진료를 덜 받게 된다는 것이다. 혹은 보험에서 특수아동의 의과서비스와 약 처방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하여 이로 인해 가족의 재정적 부담이 줄어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 메디케이드(미국에서 시행중인 일종의 의료보호제도로 주로 빈곤층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에 의과와 약 처방은 포함되어 있으나 치과는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치과진료가 메디케이드에 포함되지 않은 경우 이에 대한 재정적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또한 의과서비스와 약 처방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업에서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어 가족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러한 서비스는 지원받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건치 서경지부의 성남지회에서는 2010년부터 틔움과 키움이라는 이름으로 치과주치의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인 지역아동센터 아동을 대상으로 본인부담금 일부를 보조하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 아이들의 경우 치과치료에 대한 경제적 장벽이 상당부분 사라진 셈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치과에 부담 없이 오는가? 다시 말해서 미충족 혹은 지연된 치과 진료가 사라지는가?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전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치과에 왔고, 지금도 다수의 아이들이 이전에는 받지 못했던 치료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남아있다. 왜일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른들도 무서워하는 치과진료를 혼자 올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서 오게 된다. 그런데 그 아이들을 인솔해서 치과에 데려와야 하는 부모들이 아이를 치과에 데려올 시간이 없다면, 또는 일부긴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치과진료 본인부담금이 아직도 부담이 된다면 그들이 치과에 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의 부모가 일용직인 경우가 많아서 치과에 방문하려면 하루일당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이 하루 일당을 포기할 만큼 치과진료가 시급한 것이라 여길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사업을 통해 아이들의 구강건강상태가 좋아져야 하는데 그것은 치료로 해결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아이들의 구강건강상태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물려받은 유전적 요인 및 이닦이 습관 같은 행태요인 이외에도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있다. 사실 사회경제적 요인은 경제적 상황 그 자체만으로도 영향을 미치지만 밥 벌어 먹는 것조차 힘겨운 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한 간식을 먹는지, 칫솔질을 했는지 확인하고 함께 해줄 시간이 부족하다.

필자가 치과주치의 사업을 하면서 검진했던 아이 중에는 부모들이 온전히 돌볼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구강검진 설문지에 유전적 요인을 물어보기 위해서 어머니나 형제자매의 구강건강상태를 물어보는 항목이 있는데, 그 항목에 어머니가 안 계시다고 답한 아이도 있었고, 또 다른 아이는 전신질환 여부를 알기 위해 만들어놓은 항목에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입원 중이시고, 본인은 어려서부터 건강이 안 좋았단다. 부모 모두가 우울증인 경우도 있고. 그래서 사업만 순조롭게 진행되면 아이들이 치과진료를 모두 부담 없이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고민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성공적이라는 성남지회의 틔움과 키움 사업은 아직도 고민 중에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저출산으로 미래가 암담한 지경이다. 아이만 낳으면 백만 원씩 주겠다는 지자체도 있고, 정부는 아이를 위한 각종 서비스에 무상이라는 이름들을 붙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OECD 중 우리나라가 꼴찌 혹은 최하위권인 항목이 무려 9가지나 있다고 한다. GDP 대비 복지예산 비율, 국민행복지수, 아동의 삶의 만족도, 부패지수, 조세의 소득불평등 개선 효과, 출산율, 노조조직률, 평균 수면시간, 성인의 학습의지, 모두 꼴찌. 이런 국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적인 꿈을 꿀 수 있을까.

이 지표들이 꼴찌에서 벗어나는 날, 진짜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는 날 어쩌면 우리는 그토록 우리를 괴롭혔던 문제들을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그네의 옷을 벗긴 해님처럼 말이다.

가족의 본인부담금과 아동의 미충족 혹은 지연된 치료 요구도
Karaca-Mandic P, Choi-Yoo SJ, Lee J, Scal P. Family out-of-pocket health care burden and children's unmet needs or delayed health care. Acad Pediatr. 2014 Jan-Feb;14(1):101-8.
원본링크: http://www.ncbi.nlm.nih.gov/pubmed/24369875
번역본링크: 구강보건정책연구회 논문한편 http://cafe.naver.com/policyteam

 

 

 

 

류재인 (구강보건정책연구회 연구위원, 신구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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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5-02-23 11:19:5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거의 무복지 상황이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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