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조3항 위헌 판결 -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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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조3항 위헌 판결 - 누구를 위한 판결인가
  • 신호성
  • 승인 2015.06.03 15:4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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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원광대학교 인문사회치의학 신호성 교수

 

헌법재판소는 지난 28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의료법 77조3항은 치과의사 전문의의 직업수행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함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치과 전문의는 전문과목을 표시했다는 이유로 전문과목 이외의 환자를 진료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보다 상위의 자격을 갖춘 치과의사에게 오히려 더 좁은 범위의 진료행위만을 허용하는 것이어서 (…) 이에 따라 환자들은 어느 치과의원에 어떤 전문의가 있는지 알 수 없어 치과의사 전문의제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있다”

판결문은 국민의 알권리와 직업의 자유, 평등권 보장을 옹호하면서 일견 국민과 치과의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판결인 것처럼 이해된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논리 추론으로 이번 헌재의 판결로 국민과 치과의사 모두 큰 부담을 안고 말았다.

먼저 전문의 수련은 수련의 개인적 선호나 학문적인 필요성과 상관없이 수련 후 ‘성공적 개업’의 경영적인 이유로 특정과로 몰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교정과를 제외한 나머지 전문 과목 중에서 보철서비스가 치과의료서비스의 중요한(경영적인 측면에서 핵심적인) 전문과목이기 때문에 모든 치과의사들은 모두 치과보철과 전문의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따라서 ‘돈’이 안 되는 나머지 전문 과목들은 전문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더 나아가 학문적 발전의 재생산 구조에 걸림돌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의사가 전문의가 될 필요는 없다. 의료서비스 공급에 있어 일반의가 담당해야할 몫이 있듯이 전문의가 의료전달체계에서 맡아야 할 측면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판결로 모든 치과의사는 이제 전문의가 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장래의 치과의사뿐만 아니라 기존의 치과의사들도 새로운(임시적인-경과조치) 제도를 만들어서라도(어떻게 해서든지) 전문의를 ‘쟁취’하고야 말 것이다.

결과적으로 의료서비스의 필요 양에 의해서 전문의 수급(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영적인 필요에 의해 전문의 수련과 공급이 이루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치과의사 개인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낭비이다. 하지 않아도 될(전혀 변할 것이 없는) 의미 없는 ‘타이틀’ 따기 위해 한바탕 큰 혼란만 발생할 뿐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예비 치과의사들은 치과대학 6년, 전문의 수련 4년, 군의관‧공중보건의 3년 전체 13년의 수련/훈련 기간을 거친 후에 비로소 지역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만회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학문적 연구에서 밝혀졌듯이 이는 의료의 질 하락으로 귀결될 것이다.

장래 치과의료기관의 환자인 국민의 측면에서, 헌재 판결의 중요한 논거인 알권리는 허울뿐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치과의원이 보철과를 비롯하여 치과 분야 메이저 전문과목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전문의 간판을 달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 선택권은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 없다.

오히려 모든 치과의사들이 전문의 수련을 받는 동안 지불하는 기회비용으로 인해 치과의료 수가의 상승만 가져올 것이다. 기존 제도에서 졸업생의 40% 정도만 전문의가 될 수 있었던 그리고 전문의 시험 응시 자격이 상실된 2004년 이전 수련자들의 전문의 포기 ‘자기희생’ 결단으로 달성 되었던 일반의와 전문의의 적절한 비율이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일순간 무너져 버렸다.

모든 치과의사가 일시에 전문의가 됨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비용은 사회적 부담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치과의사가 전문의가 되면 국민에게 어떤 이득이 돌아갈 것인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사회에서 개원하고 있는 치과의사는 이미 충분한 지식과 실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에게 전문의 자격은 남들에게 뒤떨어지지 않는 개원의 ‘증’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현실에게 변할 것이 없는 ‘종이(타이틀)’를 따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판결로 이득을 보는 집단은 없는가? 있다. 이들은 치과대학이나 수련치과병원에서 일하는 임상치과의사들이거나 이미 배출된 치과의사전문의들이다. 그러나 경과제도가 만들어지는 순간 기존 전문의들의 이익도 일순간 사라질 것이다. 결국 최종 혜택은 수련기관 지도치과의사들이다. 사실 치과의사 전문의 제도는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수련의는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좋은(값싼) 노동력이며 도제이다. 이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이번 헌재 판결로 대다수 치과의사와 국민들은 변할 것 없는 단지 ‘자격증’을 위해 많은 기회비용과 실질적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일부의 이익을 위한 노력이 단지 ‘알권리’와 ‘직업적 자유’와 ‘평등권’으로 가려졌을 뿐이다.

*위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호성(원광대학교 인문사회치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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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호 2015-06-05 17:25:05
김철신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제가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치과계 전체의 다수결을 통한 결정'이 있었을 뿐, 이전수련자들이 자기희생을 하기로 결단한 적은 없다는 점일 뿐입니다. 과거 대의원회 산하 특위에 이해당사자인 이전수련자들을 위원회에서 배제한 것이 저는 두고두고 아쉽네요. 자격갱신제는 정말 좋은 안이었거든요.

김철신 2015-06-04 17:52:02
치과계가 가지고 있는 대의원총회라는 의사결정구조를 다수에 의한 결정과 횡포라고만 치부한다면 전문의뿐아니라 여타의 많은 갈등을 어떠한 방법으로 논의하고 조정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정민호 선생님께서 소수의견으로 배제당하는 것에 대한 비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갈등들도 치과계는 대의원총회같이 치과계의 의견을 모을수 있는 통로를 활용할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김철신 2015-06-04 17:47:43
모두가 동의하시지는 않았겠지만 치과계의 의견은 치협의 대의원총회라는 기구를 통하여 모아지고 표현된다고 생각됩니다.(대의원총회가 진정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는 별도로 하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50차 대의원총회에서의 결의들(소수정예, 기수련자 기득권포기)은 기수련자들을 포괄하는 것이었고, 그 결정에 참여한 이들의 자기희생이 수반된 것이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한 분들도 계셨겠지만 말입니다

정민호 2015-06-03 20:23:12
'일 것이다'로 점철된 예상들에 대해서는 뭐라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하나는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전 수련자들이 자기희생의 결단이라니요? 치과계에서는 단 한번도 이전 수련자들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치협이 조사한바에 따르면 치과의사의 18%정도가 이전수련자인데, 전체가 다수결로 결정하고나면 18%는 자동으로 결단한바가 되는건가요? 건치는 박대통령을 지지하기로 결단했다는 주장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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