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길] 몽골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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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몽골에 가다
  • 서대선
  • 승인 200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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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6일간의 몽골의료봉사 스케치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바양주르흐 병원는 국립 제3병원으로 중산층 거주지인 바양주르흐 구(울란바토르시는 6개구로 되어있다)에 위치한 구립병원이다. 어쩌면 서울시립동부병원과 마찬가지로 중산층거주지에 설립된 공공병원임에도 주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이다.

▲ 봉사단의 바양주르흐 병원 치과진료 모습
몽골의 중산층은 우리나라 서민들 수준으로 보면 된다. 의료봉사형태는 바양주르흐 병원 각과를 우리 측 의사들이 전담하고 몽골 측 의사, 간호사는 전부 어시스트가 되기로 했다. 각과마다 한국어에 능통한 현지 몽고인이 통역사로 배치되었다. 봉사기간 동안 진료는 가지고간 장비 및 기구 부족으로 정상적인 치료가 불가능해 응급처치나 약물투여 중심의 진료가 주가 되었다.

현지 바양주르흐 병원의 형편은 이게 병원일까 싶을 정도로 열악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 체제 변화를 겪고 있는 대다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와 시스템은 충분한데, 소프트웨어와 마인드가 없어 보였다. 병원 내 최소한의 응급, 급만성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기초적인 장비조차 없었다.

수술실과 수술베드는 있지만 수술도구와 의약품이 없다. 생리식염수조차 없어 치과에서는 발치 후 생수를 주사기에 넣어 드레싱을 해야 했다. 약이 절대 부족해서인지 약포장기 또한 없었다. 이렇게 병원 내 필수의약품들이 부족한 것은 몽골 현지에서 의약품들이 생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싼 의약품들을 수입할만한 경제력 또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몽골 구 사회주의 관료집단의 부정부패가 상당히 심하여 병원에 제공된 의약품들은 환자에게 가지 않고 관료집단의 부정축제로 쓰인다고 한다. 봉사단이 진료하고 남은 의약품과 전달목적으로 가져간 의약품(대략 6,000만원 상당)들은 병원장과 보건관계자에게 증정식을 통해 전달하긴 했다.

그러나 그 약들이 환자들에게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현지 우리나라 봉사단원의 말을 들으니, 이 나라의 관료적 부패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만 같았다. 6,000만원 어치의 의약품이라면 몽골 울란바토르 시에서 제일 좋은 아파트 3채 값이라 하는데, 그 의약품들이 제대로 환자들에게 쓰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다.

이번 해외의료봉사는 의료봉사적 성격보다는 불교행사적 성격이 짙어 보인다. 다음 불교 해외의료봉사활동부터는 도심지의 병원을 통째로 빌리거나 하지 말고, 도시 외곽의 실질적인 의료소외지역으로 직접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봉사참여자들의 대다수 생각이었다.

또한 해외의료봉사지역에 의약품을 전달하는 것보다는 방문 국가의 정부, 행정관료와 무관한 순수한 민간차원의 의료봉사가 봉사자들 입장에서는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방문국가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관계자, 순수의료봉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지 유력인사들과의 유대관계는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나 종교적, 전시행정적 행사를 위해 봉사가 들러리를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직접적인 의약품 전달 등의 시혜적 행위보다는 현지에서 직접 수술을 하거나 직접적인 의료시술 중심의 의료봉사를 하고, 위급한 환자들은 몇 명 정도 국내 병원으로 초청해 수술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진료 후 약품을 전달해 주려면 현지주민이나 환자에게 직접 의사가 좀 더 많은 약 처방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봉사대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 몽골 현지에서의 주민들 기대는 대단했다. 병원 당국과 현지 주민들의 기대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울란바토르 외곽 오지에서 차로 3~4시간 타고 온 환자들도 있었다. 3일간의 진료 동안 각과 복도는 줄서있는 환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로 먼저 왔다거나, 새치기 하지 말라며 싸우는 몽골시민들의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그 많은 환자들을 다 치료해주진 못했지만, 진료봉사단은 아침 10시부터 저녁 5시까지 화장실갈 틈도 없이 일했다. 약제과에서는 손에 쥐가 날 정도로 약포장기를 눌러댔다. 한국봉사팀이 현지 병원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미쳐 준비해가지 못한 기구 장비들의 부재로 진료에 많은 애로가 있었고, 적절한 진료를 다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된다면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튼 단 3일 동안의 진료이지만, 의료 봉사팀들은 부족한 장비에도 최선을 다해 진료했고, 별다른 사고 없이 귀국하였다. 번호표를 나눠주었으나 번호표를 받지 못해 진료를 못 받은 많은 몽골 울란바토르 시민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의료봉사보다는 우선 바양주르흐 병원 의사, 간호사에게 적절한 의료시술을 가르쳐 주는 것, 부족한 의료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한국에서 의료관계서적을 보내 주는 것이 더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는 어느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몽골 바양주르흐 병원 의사, 간호사들의 의료지식 수준은 10년 전 몽골 사회주의 시대 이후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왔음에도 전혀 발전이 없었던 모양이다. 몽골 현지 의료인의 의료지식, 기술 습득이 우선 급해 보였다.

몽골의 인구는 약 250만 정도이고, 수도 울란바토르시에는 약 85만 정도가 살고 있다 한다. 몽골 현지에 종합병원은 모두 국립인데 10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20여 개정도, 개인운영 치과는 12~15개 정도 있다고 했다.

한 통역 요원에게 물어보니 울란바토르 시민들은 제1국립병원은 불친절해서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시내 개인 의원을 가든지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 가서 치료를 받기도 한단다. 몽골인 전체로 볼 때 이런 식으로 해외 의료비로 지출되는 비용이 1년 3,000만 불정도 된다고 한다. 몽골 국립 공공병원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수치이다.

몽골의 의료전달 시스템은 1차 보건소, 진료소, 2차 구립종합병원, 3차 국립 제1종합병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의료시스템 자체는 잘되어 있다고 하지만, 내부 사정은 너무나 열악해 중산층 시민들은 돈 좀 모아서 해외로 나가 치료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 몽골 제3국립병원 바양주르흐 병원내 치과
몽골 정부주도의 의료 시스템은 거의 붕괴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사회주의 몽골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과도기적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몽골 인구수와 몽골의 수출, 여타의 산업 부문이 성장할 소지가 없다보니 의료체계의 이런 공동화 현상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1차, 2차, 3차 의료서비스 체계는 잘 갖추어져 있어 의료시스템만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문제는 1차 진료소에서 3차병원까지 가기가 너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돈 좀 있는 사람은 웃돈을 주고, 3차병원인 제1국립병원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바양주르흐 병원은 바영주르흐 구에 위치한 제3국립병원이지만 의료장비, 의약품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요양원 수준의 병원으로 중산층 밀집지역에 위치한 병원임에도 고유의 종합병원으로서의 역할은 거의 하고 있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우선 주민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어 환자들은 급행료를 내고 아쉬우나마 국립 1차병원으로 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국립 1차병원도 시민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진 못하고 있으며, 몇 개 안되는 개인병원으로, 중국 등 해외로 질병을 치료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전 국민은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있지만 1차,2차, 3차로 연결되는 의료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는 사람은 드문 모양이었다.

너무 느린 관료주의적 행정절차로 인해 수개월을 기다리다 제1국립병원으로 가느니, 차라리 편법을 써서라도 3차 의료기관인 제1국립병원으로 불만족스럽긴 해도 몰려간단다.

몽골에는 대학교가 100여개 있는데 그 중 의과대학이 10개 정도 있다. 그중 국립대는 2개, 8개는 사립대학이다. 몽골 의료제도 중 재미있는 것은 의사를 <큰의사>와 <작은의사>로 구분한다는 점이다. 큰의사는 6년제를 나온 의사로 국민으로부터 4년제 의사보다 훨씬 존경받고 환자들이 선호한다.

의료봉사팀이 머물던 바양주르흐 병원에도 큰의사와 작은의사의 구분이 있어서 큰의사는 작은의사에 비해 상당한 권위를 누리는 듯 보였다. 의료봉사팀과의 연석회의에서도 큰의사는 앞에, 작은의사와 간호사들은 뒤에 서열에 따라 앉았다. 우리나라 의사들도 마찬가지만 6년제와 4년제의 차이는 꾀 커보였다.

몽골에서 치과의사는 4년제 작은의사에 속해 크게 존경받거나 권위를 누리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울란바토르 시내에 있는 개인치과의원 중에 한국에서 건너와 개업한 치과의원도 하나 있단다. 연세대 의료봉사단이 세운 연세의료원도 있다. 몽골 주재 한인들은 주로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개업한 개인치과의 경우, 치과비용이 한국과 비교해 결코 싸지 않았다. 이런 개인 치과에서는 교정치료도 종종 하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몽골에서의 의사 월급은 우리 돈으로 한달에 10만원 정도이다. 바양주르흐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의사나 간호사, 진료요원들 모두 다 똑같이 1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몽골에서 의사들은 주로 여성들이 많은데, 적은 월급 때문에 남자들이 의사되기를 기피하기 때문이란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몽골인 수가 10만에서 15만명 정도인데, 몽골 남성들이 한국 중소기업에서 한달 월급 100만원을 받으면 몽골에서의 10달치 월급과 맞먹는 꼴이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몽골 사람들은 한국에 들어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다.

바양주르흐 병원은 그들 말로는 2,500베드의 종합병원으로 180여 명의 의사, 간호사, 진료요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나 실제 병상 수는 250병상 정도. 그나마 의약품 부족이 심각한 모양이었다. 이번 의료봉사단이 주고 간 상당액의 의약품을 관료들이 빼돌리지 않고 바양주르흐 병원에서 환자에게 직접 처방되길 바랄 뿐이다.

환자를 치료하면서 느낀 거지만 몽골인들은 한국인과 거의 똑같이 생겨서 나중엔 통역이 없이 대충 의사소통이 되는 것 같았다. 한국인과 유사한 표정, 같은 우랄 알타이어 언어를 쓰다보니 뜻은 알아들을 수 없어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대충 알아들을 것만 같았다. 그래도 복잡 미묘한 속내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몽골인은 우리와 매우 흡사한 유사인종이지만 그 속내는 전혀 알길 없는 다른 민족일 수밖에 없다.

몽골에 대한 국제적인 의료봉사 또는 의료지원은 몽골의 의료현실로 볼 때 매우 시급한 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나라 고유의 관료적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서 섣부르게 접근하면 많은 곤란을 당할 것 같다. 관료주의라는 부정적 요인 말고도, 몽골 고유의 독립정신과 자립정신, 혁명정신 등 그들의 문화와 역사의 이해를 전제로, 대등한 관계 속에서 그들 스스로 의료시스템을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상생할 수 있는 의료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몽골에는 자본주의 시간 개념이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은 바쁘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았다. 몽고의 시계는 울란바토르 한 복판을 흐르는 토르강처럼 천천히 흘러만 간다. 단 4일을 머물고 왔지만 한달은 족히 머물다 온 느낌이다. 여유가 있고 삶의 관조, 혹은 포기(필자의 시선), 또는 초월적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만큼 필자가 속한 한국 자본주의 시계가 빠르다는 것이다. 몽골국민의 70~80%가 불교도라 한다. 그중 몽골 사회주의 성립 당시 수십만의 스님들이 학살당했다. 탄압을 피해 일부의 스님들은 티벳 쪽으로 흘러들어갔다는데, 몽골의 불교는 티벳의 불교와 매우 유사하다.

몽골에서 의료선교사업을 펼치는 한국단체는 한국 기독교 4단체가 벌리고 있다는데, 울란바토르 시내에는 연세대 의대에서 지원한 연세의료원도 있다. 불교를 믿는 몽골인들도 죽을 때는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로 개종하고 죽는 이가 많다고 한다.

한국불교의 수출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들 민족의 토착 신앙이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한국불교의 대승불교적, 불교복지적 차원, 보살행이 겸손하게 펼쳐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이번 해외의료봉사가 갖는 주된 의미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순수한 의료봉사 활동에 과도한 종교적 색채가 낀다면 이 또한 봉사의 순수성이 변질되기 십상이다. 가능하면 몽골국민들의 불교 정서에 맞는 범위 내에서 의료봉사활동이 펼쳐질 필요가 있다. 이번 한국불교의 해외의료봉사 활동으로 여타 불교국가들이 그들의 전통종교를 좀더 공고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귀국길에 봉사 팀 40여 명의 얼굴을 보았다. 봉사기간 중 현지에서 해맑고 순수했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초조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몽골의 여유롭고 느리게 가는 시간에서 초고속 한국 자본주의 시간으로 옮겨 타는 봉사 팀들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인천국제 공항에 내리자 봉사팀원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무적으로 돌변하더니 점점이 흩어져 버렸다. 몽골의 시간 속에서 어린애였던 봉사 팀원들의 얼굴은 한국의 시간 속에 내리자마자 표정이 딱딱해졌다. 무표정, 긴장, 걱정들이 얼굴에 갑자기 산더미처럼 싸이는 것이다. 한국의 시간은 초고속 무한경쟁의 궤도 위를 달리는 떼제배 기관차 같고, 승객들은 숨차다 못해 질식사하기 직전의 환자들 같았다.

서대선(서울 동부시립병원 치과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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