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전문의 공청회 참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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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전문의 공청회 참관기
  • 전양호
  • 승인 2015.09.04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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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반하장 (賊反荷杖)

두 번의 치과의사전문의 공청회가 열렸다.

77조 3항의 위헌판결 직후,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특히 공직지부의 교수님들과 현재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교정과 중심의 임의수련의 그룹의 선생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치협은 다시 한 번 이전의 전면개방안을 들고 나왔다. 공식적인 치협의 안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동안의 행보와 소수전문의제를 주장해왔던 패널들과 발제자에 대한 공격적인 질문들은 이들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미뤄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경과조치를 통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길 원하셨던 분들 역시 날선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일반의들에게는 마지막 기회다. 교수들과 임의수련자들에게는 경과조치를 시행하고, 일반의들은 신설과목의 전문의 취득해라.’ 점잖은 말투였지만 나에겐 왠지 고압적으로 들려왔다. 이 분들 역시 소수전문의제를 주장해왔던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책임추궁을 빼놓지 않았다.

2003년 치과의사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당시 애초에 복지부와 치협이 합의했던 수련치과병원 지정기준은 ‘구강외과, 보존과, 치주과를 포함한 5개과 이상’이었다. 그리고 레지던트 수련치과병원은 구강외과, 보철과, 교정과, 소아치과 등 4개과에 2명 이상의 전속지도 전문의를 두어야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병원협회의 요구를 수렴한 후 치협이 최종 제출한 안은 수련치과병원 기준은 ‘구강외과 포함 5개과 이상’으로 레지던트 수련병원은 구강외과만 2명 이사의 전속지도전문의를 두는 것으로 대폭 완화된 안이었다.

건치를 비롯해 소수전문의를 주장했던 이들은 전공의 수를 줄이지 않고서는 소수전문의제는 불가능하다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99년의 국시거부와 학생파업의 서늘한 기억들이 잊히지 않았고, 2001년 총회의 의결이 시퍼렇게 살아있던 시절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병원협회와 교수님들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첫 전공의 선발 때 년차가 올라가며 줄이는 식으로 해서 최종 8%를 맞출 수 있다고 자신해서 35%를 선발해 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떻게든 될지 알았다',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2007년 첫 번째 전문의 시험을 앞두고 당시 치협 전문의시행위원장이었던 이수구 협회 부회장의 발언이다. 2003년 치협과 병원협회 간에 어떠한 논의들이 오고갔는지 능히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2009년. 2차례 전문의가 배출되고, 전속지도전문의에 관한 특례규정이 다시 한 번 연장된 직후 교수님들은 자신들에게도 전문의 자격을 달라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아직 치과계의 합의가 살아있는데 교수님들이 나서서 이러시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2009년 7월 14일 헌법재판소는 청구기간 경과를 이유로 전원일치 각하 처분을 내렸다.

몇 년 전 치과계를 혼란에 빠뜨렸던 AGD. 양질의 일차 의료인 양성이라는 긍정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애초에 제도가 제안되었던 것은 소수전문의제도와 전공의 수의 감소로 인한 대형병원의 인력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였다. AGD가 일차의료인 양성이라는 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전문의 수련병원들의 외면 때문이다.(패널로 나오신 교수님 한분이 병역문제를 거론하셨는데 이는 지엽적인 문제일 뿐이다.) 전공의 수를 줄이지 않고 있으니 전문의 수련병원들은 AGD를 운영할 필요가 없어졌고, AGD는 수련병원 이외 3차병원을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2001년 대의원 총회 이후 14번의 대의원 총회가 있었다. 거의 매년 전문의제와 관련된 의제가 올라갔지만 단 한 번도 다수개방안에 대한 의결은 없었다. 가장 치열하게 대립했던 올해의 대의원 총회에서도 치과의사들은 소수전문의제를 선택했다. 이러한 치과계의 결정을 준수하고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향해 이를 뒤흔들어왔던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난이 불편하다. 소수 전문의제를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음에도 자신들의 입장과 다르면 현실불가능하다며 일축해버리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자세가 불편하다.

전문의 수를 시장에 맡기자는 한 패널의 발언이 쉽게 넘어가지지 않는다. 치과의사의 수를 줄여야 한다는 치과계의 염원을 무색하게 하고, 보건의료 인력체계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 수준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발언이다.

치과계는 의료상업화를 반대하고, 동네 치과의원들이 중심이 된 치과의료 전달체계를 지향한다. 최남섭 집행부의 역점 사업인 ‘우리동네 좋은치과’ 캠페인도 같은 맥락에 있는 사업일 것이다. 이는 불법 네트워크 치과 몇 개 때려잡는다고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치과계의 모든 사업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같은 목표를 향해 수렴되어야 한다. 치과의료인력 양성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적절히 통제되지 않은 전문의제는 좀 더 수입이 많은 과의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한 피 튀기는 경쟁을 유도할 것이다. 그리고 경쟁에 뒤쳐진 대다수의 치과의사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패배의 고통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환자의 구강건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일차적인 치료를 담당해야 할 동네 치과의사에게는 전문의 교육보다는 일차 치과의료에 대한 폭넓은 교육이 더욱 절실하다.

어느 토론회 자리에서 치과계의 한 인사가 똑같은 수가를 받는데 다수전문의제가 되면 왜 의료비가 상승하느냐며 항의한 적이 있다. 불법 네트워트 치과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괴물도 아니고, 그들에게 맞는 또 다른 룰을 적용받고 있는 이들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키운 괴물이다. 앞에 가는 사람들을 잡아채야만 승리할 수 있는 욕망의 사회가 만든 괴물이다.

 

 

전양호(본지 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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