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책을 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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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책을 안 읽었다
  • 한동헌
  • 승인 2005.07.22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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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치과계 2030세대, 무엇을 말하나 ②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얼마 전 봄에 개원한, 치과이름과 잘 어울리는 친구다. 93년에 치과대학을 들어온 90년대 사람, 책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친구 중 하나이다. 그의 독서 목록을 확인했다.(한동헌)

퇴근하면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바로 소파에 누워 채널을 돌려가며 멍하게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녹색평론 5-6월호의 서평부분을 읽다가 문득 ‘이런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영희, 임헌영의 대담 <대화>.

<대화>의 서평을 쓴 박경미란 사람은 말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내 또래의 웬만한 사람들은 ‘리영희’라는 이름을 그냥 의미없이 부르지 못한다. 70년대,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리영희’ 라는 이름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인생의 한 길목에 서 있는 이정표이고, 수많은 지적 지진아들에게 ‘세계인식’의 세례를 베푼 사제의 이름이다. 그 시절 ‘리영희’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마치 두 갈래의 길에서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는 ‘대화’하기 어렵다."

나는 리영희라는 사람을 잘 몰랐다.

그냥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이다.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 되어서, 내 주변엔 리영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잘 아는 사람들보다 더 많았으니까.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 세 권은 다음날 병원으로 바로 배달되었다. 마침 환자도 없어서 <대화>부터 읽기 시작했다.

우려했던 만큼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어릴 때 이야기, 청년기의 이야기들을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풀어나가는데 재미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대학 다닐 때 대자보엔 왜 그렇게 ‘반미’, ‘자주’ 가 많았는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았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잘 모르던 한국 현대사가 신선하고 흥미롭게 읽혔다. 마치 소설을 읽듯이.

▲ 이영희 선생
조선일보 외신부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대한 회고를 읽으면서부터는 조금씩 웃음이 나왔다. 사실이라 하더러도 나에게는 약간의 ‘자기자랑’으로 보여 속으로 ‘이런 대단한 어른도 인간적으로는 좀 유치한 면이 있는 거 아니야’란 생각도 했다.

"어둡고 야만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이 ‘한때’ 시대에 대해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발언을 할 수는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시적’ ‘한때’ 가정생활의 안락함을 포기하는 것에 더해서 끝없이 불안하게 쫓기는 삶이 이어지고, 노년의 평화까지 저당 잡히느니 차라리 깃발을 내리고 현실에 투항하고 만다. 이들에게 ‘한때’의 투쟁은 가슴에 달린 훈장일 뿐, 현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타협적 거리를 유지하게 하는 살아있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 박경미"

하지만 리영희 선생은 자신의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가슴 뜨끔한 이야기다. 긴 세월을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겠지.

나 같이 시대에 대해 비판적이고 저항적이었던 적이 ‘한때’도 없었던 사람으로서는 숙연해질 따름이다.

이동정(서울봄빛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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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돈 2005-08-05 04:27:26
동정이에게 이런 면이...
맨날 신변잡다 수다만 떨었더니...ㅋ
출산 잘 하시고, 총명한 아이 낳으셈. ^^

한동헌 2005-07-26 12:05:58
제 도입부 글 한 단락은 다른 색깔로 처리해주시고 제이름을 넣어주시던지 해야 혼동이 안될것 같아요...

애독자 2005-07-25 12:18:29
앞부분이 조금 이상한데요. 한동헌 선생글과 이동정 선생 글이 섞인거 같은데 구분이되어야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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