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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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에 관하여
  • 김광수
  • 승인 2015.10.20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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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비가 국민생계비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국민 생활에 큰 고통이 된다고 한다. 또한, 사교육비의 과중이 젊은 주부가 출산을 기피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는 국가 경영에서 작은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 중 사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것을 중요한 선거공약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교육비는 우리나라 출산증대를 위해서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인구는 지금도 너무 많다. 꼭 한민족의 인구가 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위 국력이란 것은 유치하고 집단 이기적인 논리이다, 국력이란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전쟁과 범죄가 저질러졌다.

그게 아니라면, 사교육비 문제는 국민생계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가계 경제를 위해서 해결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사교육이 “의식주와 같이 국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는 사교육을 줄이는 여러 가지 조치를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이것은 경제와 소득의 문제인가. 그런데 사교육이 줄어들면 그나마 가난한 대학졸업자의 생계도 막연해진다. 요즘은 일류대학을 나와서 할 수 있는 것이 학원 선생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며 가난한 학원선생이 부유한 집의 가계부에 주름살을 주는 것이 사회적 부정인가? 오히려 이는 분배와 평등을 위한 기회일 수도 있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 과외시장마저 없다면 청년실업은 더 가중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과외가 국가 경제를 파탄 낸다는 이야기는 배부른 강남 아줌마들의 얌체 짓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강남 표를 얻기 위한 레토릭일 뿐이다. 물론 서민경제에도 주름이 간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이 서민경제를 걷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어도 빈자들 사이에서의 소득 이전일 뿐이다. 소위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강남 자식들이 과외선생 하겠는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사교육은 이대로 좋다는 말인가?

사교육은 가난하거나 부자인 엄마들의 입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처지에서 생각해야 한다. 사교육의 당사자는 아이들인데 아이들의 입장에서 사교육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이들은 영어학원, 수학학원 가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한다. 치를 떤다. 영어가 무엇이고 수학이 무엇이기에 아이들의 행복할 권리를 이다지도 박탈해 가는가? 요점은 두 가지이다. “영어 그렇게 배워서 뭐할 건데?” 또 “그런다고 배워지는가?”

첫째, 아이들을 그토록 학원에 보내고, 생활비의 반 이상을 학원에 쓰면서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인성훈련이나 가치교육, 도덕교육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반 일리이치는 그래서 일찍이 학교는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죽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 가계비와 어린 시절의 행복을 그토록 희생해야 하는가? 그 좋은 대학이란 무엇인가? 일류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안 된다는 현실은 이미 오래되었다. 또 대학을 나와도 그것이 직업과 연결이 거의 안 되는 일이 현실이 된 지도 오래 되었다. 그렇다면 왜 대학에 보내는가. 그건 그저 안 보낼 수 없으니 보낼 뿐이다. 그런데 그러한 결과를 얻자고 아이들이 그토록 큰 희생을 치러야 하는가.

연간 고교졸업생 50만 명 중에서 일류대학 (2.5만 명이라고 하자) 가는 아이들은 5%, 그들 중 원하는 직업을 갖는 사람은 1/5(5,000명). 확률 1/100이다. 5,000명이 되기 위해서 49만 5천명의 아이들이 초등학교부터 과외와 학원에 치를 떨어야 하는가. 오죽하면 초중등학생이 자살까지 하겠는가. 이건 부모들의 죄악이다. 일류병은 일종의 병인데, 대다수의 부모가 걸린 중병이다. 자녀의 행복보다 자신의 위세와 욕심이 더 중하다는 말인가. 문제는 그런다고 해서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일류대학을 나와도 자녀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들 부모를 이렇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경쟁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독약이다. 경쟁은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 그것은 서로 돕고 함께 즐거워야 할 동료를 이웃을 떨어트리는 공부일 뿐이다.

둘째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아이가 학원에 간다고 해서, 과외를 받는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 학교생활에서 충분히 경험했던 바이다. 단지 아이를 매일매일 고통 속에서만 살게 할 뿐이다. 그 공부가 우리 인생을 살찌우는 공부가 아님은 물론이다.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하는 공부가 그 아이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제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경쟁이 지나치게 심해져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본가가 되거나 출세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사교육이나 과외는 불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이제 우리는 남들이 경쟁하더라도 나부터 경쟁을 불식시키고 자발적으로 경쟁의 궤도에서 이탈해서 함께 잘사는 공동체를 모색해야 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다.

그러므로 남의 자식을 패퇴시키고 내 자식 잘되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망상에서 깨어나서, 물질이 아니라도, 소비가 아니라도 인생 자체가 즐거울 수 있는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김광수(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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