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제를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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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제를 다시 생각한다
  • 정형준
  • 승인 2016.03.10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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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정형준 논설위원

전국민 건강보험이 도입된 이후 보건의료의 진보적 개혁과제에는 항상 주치의제가 포함되어 왔다. 그러나 건강보험 통합, 의약분업, 그리고 항목별 보장성 강화, 더디지만 시범사업에 일부 진행된 지불제도개편 등과 달리 주치의제는 간단한 시범사업도 잘 진행되지 않았고, 이제 와서는 정부의 중장기 보건계획에 포함되지도 않고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초기의 시범사업조차 제대로 못한 것은 의료계의 반대가 컸다. 개별 의원들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환자만을 진료해야 하는 주치의제가 매우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거기다, 새롭게 의원을 개업하려는 의료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자신의 환자를 가지고 있는 선배들에 비해 어려운 환경에 처할 수도 있다. 또한 많은 환자를 짧은 시간에 진료하는 한국의 외래현실은 주치의제에 대한 막연한 반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대 외에도 그간 정부가 주치의제에 진지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데 있다. 우선 주치의제가 도입되면, 의료전달체계가 자연스럽게 확립된다. 이는 의료산업화에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팽창한 병원의 각종 이윤사업은 병원 이용의 자율성이 담보되어야 했다.

자유로운 병원 이용이 제한되고, 소견과 필요에 의해 이용되는 외국에서 한국처럼 대형병원이 대도시에 집중되기도 어렵다. 의뢰와 필요를 중심으로 이용되는 병원이라면 접근성이 중요(지역거점병원)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병원 부대사업확대와 메디텔 허용등도 병원이용이 자유로울 때 빛을 발한다. 병원의 베이커리, 커피숍, 그리고 투숙호텔은 주치의제가 도입된다면 망할 수 있다. 병원의 외래 이용객이 급감하고, 문병객이 줄어든다면 수익이 줄어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가 병원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관점 때문에 주치의제도는 구체적인 정책순위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여기다가 일차의료기관조차 네트워크화 하고, 특히나 원격의료까지 도입하려는 마당에서 ‘주치의제’는 걸림돌로만 느껴질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이명박 정부 때 무산되었으나, 올해 2월 다시 꺼내든 ‘건강관리서비스’를 들여다 보면, 1차의료기관에서 해야 하는 예방, 재활, 사후관리 등을 모조리 민간기업, 특히나 생명보험회사에서 할 수 있게 하려는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애초에 주치의가 있다면 생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주치의제 도입은 한국의 무분별한 1차의료기관 난립으로 말처럼 정책결단만으로 수행될 만큼 쉬운 문제가 아니다. 또한 국민들도 ‘주치의’라고 하면 유명한 의사, 대학병원 교수 등의 전문의들만을 생각하고 있어서, 주치의제에 대한 교육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와 국민들의 요구순위에서 뒤로 밀린다고 해서 차일피일 밀어 둘 수 있는 상황이 이제는 아닌 듯하다.

우선 지금 1차의료기관의 현실이 과거 같지 않다. 의원들의 무한경쟁은 병원에서 전임의까지 마친 전문의마저 동네에서 경증진료를 하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전체의사의 80%가량이 전문의인 기형적인 의료공급구조가 계속되면서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되려 한다. 국민들은 의료비지출을 높이고 있지만, 의료결과는 그 만큼 좋아지기는커녕, 환자-의사관계만 나빠지고 있고 의료불신이 곳곳에서 싹트곤 한다. 물론 과거 의사수가 부족할 때 지역 일차의료기관에 작은 병상이라도 두고 입원치료를 독려하던 역사적 맥락이 있지만, 이젠 이런 구조를 벗어나야 한다.

여기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기재부독재법’에 ‘보건의료’가 빠져서는 안된다는 청와대의 광분은 앞으로 보건의료가 훨씬 더 영리화되고 수익성있는 사업으로 개편될 압력에 봉착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과정은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부익부 빈익빈의 자본집중 현상과 경쟁격화로 나타날 것이 뻔하다.

지금도 대형병원의 외래독식으로 동네의원들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 국민들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의료계가 주치의제에 대한 공감대를 다시금 형성해야 한다. 허울뿐인 ‘의료전달체계개편’이 아니라 주치의제를 기반으로 한 1차의료지대를 강화하고, 환자-의사 관계를 복원해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최근 치과계가 우선적으로 솔선수범해서 나서고, 성남시도 주민주치의제도 등을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일은 긍정적인 과정이다. 이제 이런 과정을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전반적인 변화에 큰 축으로 재구성할 시점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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