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귀 못 알아먹는 구세대의 항변”
상태바
“말귀 못 알아먹는 구세대의 항변”
  • 정원균
  • 승인 2016.03.28 18: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 정원균 논설위원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대화하다보면 이들이 사용하는 낯선 말과 줄임말 때문에 세대 차이를 실감하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이 뭐라 뭐라 하는데 필자가 가는귀가 먹었는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뭔 소리냐고 되물으면 실은 별 얘기도 아니어서 피식 웃어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런 해괴한 말을 쓰지 말라고 뒤돌아 나무라기도 한다.

학생들의 이런 언어 습관이 내심 마뜩찮지만 일견 귀엽게 봐줄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론 요즘 세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탓도 있으려니 싶어 학생들만 뭐라 할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당시의 신세대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셨으리라 생각하면 학생들에게 싫은 소리 했다가 괜히 구세대라는 뒷이야기나 듣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 인터넷을 뒤적이던 중에 한 연예 기사가 번뜩 눈에 띄었다. 어느 음악방송을 예고하는 관련 내용이었데, 이 글의 제목이 “팀배틀 2라운드 쇼미더머니 시즌4”이었다. 필자가 그 뜻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이 표제를 보면서, 야~ 아무리 신세대라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 장탄식이 나왔다.

도대체 뭐 길래 싶어 그 내용을 들쳐보니, 이 방송에 참여한 이른바 ‘래퍼’들의 국적불명의 이름은 점입가경일 뿐 아니라 관련된 동영상 자료에 올라있는 ‘2nd 티져, 4th 티져, 디스전’ 등의 문구는 가히 그 절정이었다. 필자가 아무리 이런 음악에 문외한이라 한들 그래도 된장찌개 먹는 한국 사람인데 이처럼 심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망측한 말을 버젓이 내거는 것이 세대 차이나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인지, 우리말로 옮기기 어려운 최신의 전문용어이기 때문인지, 케이 팝의 한류 열풍을 빙자한 편승인지 이래저래 답답하고 우울한 일이다.

공중파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보고 듣는 대중매체에서 어찌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남발할 수 있는지 아무리 고쳐 생각해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굳이 문화의 정체성이니 한글의 우수성이니 거창한 명분을 언급할 것도 없다.

이런 세류가 우리 것을 스스로 깔보고 업신여기기 때문인지, 미국 문화를 숭앙하는 사대인지, 그저 겉멋일 뿐인지 알 수가 없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오히려 이러한 신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쾌쾌한 구세대가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필자가 특정 문화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우리의 자세를 말하는 것이다. 남의 흉내를 낸다고 일류가 되고 한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외국문화를 여과 없이 추종하는 것이 세계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미국 물 좀 먹었거나 글깨나 배웠다는 일부 사람들이 천박한 영어식 표현으로 자신을 치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체불명의 외국어 남용이 예능이나 방송이나 할 것 없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너무도 흔하고 무감각한 일이 되어버렸으니, 안타깝고 부끄러운 현실이 아닌가.

언어는 그 사람의 수준을 보여준다. 언어는 세상을 보고 듣는 눈이자 귀이다. 우리는 누구나 언어를 통해 배우고, 상상력을 키우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이는 언어가 행동을 규정하는 틀이고, 생각을 드러내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욕이 딱 그렇지 않은가…. 좋은 언어를 쓰고 배우면 그에 걸맞은 인격이 길러진다. 우리 사회의 언어 환경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최근에 어떤 정치인이 전화 대화에서 상소리를 뱉은 게 밖으로 드러나면서 호된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주변을 둘러보면 비단 이런 정치인만 비난할 일도 아닌 듯하다. 정작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짚어볼 일이다.

 

(연세대학교 치위생학과, 본지 논설위원)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