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 피치못할 변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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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길에 피치못할 변수를 만나다
  • 김광수
  • 승인 2016.04.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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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의 중국기행⑤] 소흥과 용화사

여행지에서 변수(變數)는 상수(常數)일지 모른다. 여행지의 상황을 현지인처럼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예상치 못한 이유로 계획이 틀어지는 것은 여행과 일상이 매 한가지다. 다만 쫓기는 일상에서와 달리, 여행에서는 돌발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이번 여행기에서 김광수 원장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의외의 즐거움과 만난다. -편집자-

 

고속열차를 타고 소흥으로 갔다. 소흥은 녕파(닝뽀) 가는 길에 천동사와 아육왕사를 보러 가는 것이다. 녕파는 크고 유명한 도시인 데다가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은 곳이고(당시 이름은 명주), 현재도 한국과 중요한 무역대상 지역이다.

녕파는 또한 서구열강의 대륙침략 때 강제 개항을 해야 했던 다섯 개의 항구, 상해, 광주, 청도 중의 하나이기도 할 만큼 대표적인 도시이다.

녕파로 가기 전에 노신의 고향인 소흥을 가보기로 했다. 소흥은 강남 문화가 깊숙이 젖은 곳으로, 전통적인 강남 문화의 중심지이다. 오나라의 중심지가 소주라면 강 건너(전당강) 월나라의 중심지가 소흥이었다.

두 나라를 합쳐 오월이라 했고, 나중에 삼국지의 손권과 주유의 주무대가 되었다. 전국시대 월왕 부차가 오나라왕 구천에게 복수하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 하던 곳이 이곳이다. 또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운명이 한 배를 탄 것과 같다는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 이후 강남의 중심지는 항주가 됐고(남송 때- 臨安), 그 이후에는 남경(金陵)이 강남의 중심지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소흥은 깊숙한 강남 문화의 흥취를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가기로 했다.

지금 소흥은 노신의 고향, 근대 중국에서의 문화운동에서 수많은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채원배와 주은래의 고향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소흥에는 볼거리가 많다. 소흥의 토속주인 황주로도 유명하다나. 소흥의 볼거리는 노신의 고향, 난정, 심원, 동호 그런 데인데 다 볼 수 있을까 싶었다.

고속열차(까오띠에 高鐵-G)가 홍챠오 역에서 9시 10분에 있었다. 여유 시간을 가지려고 일찌감치 지하철을 탔다. 푸동과 홍챠오는 상해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하남시와 김포공항 거리쯤 될까 싶다(상해는 서울보다 크다).

나는 기차표 예매를 한국 C-trip site에서 한다. 카드로 결제하고 나서, 중국 현지에서는 매표소에서 다시 현지의 표를 받아야 한다. 그냥은 못 들어간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대개 표 사는 줄에 늘어서서 길게는 30분 이상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외국에서 표를 샀기 때문에 내국인이 표를 새로 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중국인은 기계에서 직접 표를 사기도 한다. 극장표처럼). 그런 것을 감안해 홍챠오 고철 역에 일찍 도착하기로 했다.

▲유스호스텔의 메모지들
▲공원에서 아침체조하는 노인들

역 시설은 잘 돼 있어서 지하철에서 직접 역사로 연결돼 있다(서울역은 일단 밖으로 나가지만). 지하철에서 내려 바로 안내판을 따라서(고철 표 사는 곳 ⇨⇨) 가는데, 길이 제법 멀다. 지하에서 한참 간다. 중간에 확인을 했는데, 화살표는 계속된다.

그럴 수도 있지. 표 파는 곳에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줄을 섰지만 좀체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시간 여유가 많지도 않겠는데.” 그러다가 시간은 점점 가고 정말로 시간이 긴박해졌다.

“저 급한데요” 할 수도 없는 것이 줄 앞에 선 사람들이 다 급한 사람들이다. 서로 싸운다. 내 앞의 사람은 너무나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 한다. 결국은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발차 시간이 다 되었다. 9시 10분. 딱 9시 10분이 되서야 나는 표를 끊을 수 있었다. 표 파는 사람한테 하소연 하거나 화를 낼 수도 없다. 말이 안 통하니 화를 낼 수도 없지만, 화를 낸다 한들 소용이 없다.

▲이런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헐레벌떡했으나..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경우에 따라 기차가 연발하는 수도 있으니까), 표를 움켜쥐고 뛰었다. 숨이 턱에 닿도록. 그런데 개찰구까지 가는 게 또 장난이 아니다. 지하에서 두층을 올라가서 지상이다. 거기서 또 한 층을 더 올라가서야 개찰대 기실 홀인데, 5분 걸려서 홀에 올라가 보니 개찰 홀이 운동장보다도 더 넓은데 사람들이 피난민처럼 꽉 차서 앉아 있는 것이다.

개찰구는 한 20개가 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개찰구 번호가 23A면 양쪽으로 A, B 개찰구가 23개씩 있다. 거기서 개찰구를 찾아가는 데 또 10분. 뛰어본들 소용이 없다. 개찰구 앞에 가봤지만 아무것도 없다. 결국 그렇게 기차를 놓쳤다. 적어도 한 시간은 더 일찍 온 것 같았는데..

첫날부터 공항에서 꼬박 새우더니 초장부터 영 일이 안 풀린다. 큰맘 먹고 산 고속철도 표 값을 버렸다. 홍챠오역 규모가 확실히 크기는 하다.

한참을 쉬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버스라도 타고 가야지. 버스는 오래 걸리려나? 비싸지 말아야 할텐데...

버스타는 데로 주섬주섬 이동해 물어보니 오후 2시에나 버스가 있단다. 결국 짐을 맡기고 움직이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짐을 맡기는 것을 즈춘(寄存)이라고 한다. 대개 즈춘추(寄存處)가 있거나, 아니면 그냥 가게방에서 맡아준다. 대개 5위안 정도 받는다. 한국 돈 천 원 정도. 즈춘 처를 찾는데도 없다. 한참 찾고 물어보고 해서 겨우 한군데 찾았는데, 돈을 50위안 달란다. “이런 도x놈! 뭣이라? 상해라구? 상해에서는 그렇게 받아도 되냐?” 하지만 더 이상 싸우기도 지쳤다. 무거운 배낭을 맡길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짐을 그곳에 맡기고, 지도를 보고, 길을 나섰다. 이번에는 용화사(龍華寺)란 곳을 가보자.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찾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우 유명한 절이었다. 기차 놓친 통에 그거 하나는 건졌다.

자료를 보니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로, 오나라 손권이 홀로 살던 어머니를 위해 세웠다고 나와 있었다. 특히 40미터짜리 7층의 8각 용화사탑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용화사의 종은 우리나라 보신각종처럼 신년맞이 타종행사를 하는 종이라고. 나중에 용화사에서도 유명한 고승들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많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불구상점이 보이는 걸 보니 가까워진 것 같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걸어서 찾아가는데, 저 멀리서 뭐가 보인다. 불구(佛具) 상점이 나타나는 걸 보니 절에 가까워진 것 같다.

▲탑이 꽤 크다
▲강남고찰, 룡화라고 써 있다
▲고루. 고루와 종루는 대웅전 양쪽으로 마주보고 있다.
▲석등의 부처님
▲부처님인가? 관을 쓰셨으면 보살님이신가?
▲천수천안 관자재보살님
▲채식식당에 들어갔다
▲라한면

마침 채식식당이 있길래 배가 고파서 들어가 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국수 이름은 라한면(羅漢面). 이제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서 소흥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휴게소 전경

‘가소다리’라는 이름의 중간 휴게소에 도착했다. 다리 이름이다. 가흥과 소흥 간을 잇는 다리인데, 바다 위에 건설됐다. 한국으로 따지면 송도대교 같은 것이다. 덕분에 상해부터 절강성 남쪽으로 가는 길이 무척 단축됐다.

이 다리는 바로 전당강 하구에 있다. 전에는 항주 근처까지 가서 전당강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제 이 해상육교의 완성으로 바로 강소성에서 절강성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전당강(錢塘江)은 양자강과는 독립적으로 동쪽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강인데, 항주 시내를 끼고도는 강으로 유명하다. 20년 전에 항주 갈 때도 보았는데, 책에서 보면, 바닷물의 밀물이 전당강으로 차 들어오는 광경이 장관이라고 하고, 그것을 보기위해서 많은 관광객들이 온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전주시(全州市)에서 완주군 용진면으로 가는 쪽에 전당리라고 있다. 한국에 있는 지명에 쓰인 한자와 똑같다. 어찌 아는가 하면, 군대시절(그러니까 30년 전) 출근시간에 지각해 시외버스를 타고 군부대에 출근할라치면 전당리 가는 버스를 타고 갔던 것이다. 덕진공원을 지나서 송천동을 지나간다. 마을 이름이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아마도 여기서 온 이름 같다.

이렇게 해서 어찌어찌 하여 소흥에는 왔다. 와보니 저녁 때다. 소흥 구경은 다 틀렸다. 기차를 놓치는 바람에 소흥에 유명한 볼거리는 다 못 보게 된 셈이다. 그러면 일정에 갈등이 생긴다. 어찌한다? 내일 녕파에 가서 아육왕사와 천동사 보는 것을 포기하고 소흥을 볼까나, 아니면 소흥을 포기하고 녕파를 갈까나.

애라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숙소가 바로 노신(魯迅)의 고향마을이다. 노신과 관련된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지만 시간이 늦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소흥 시외 터미널에 도착했다.

▲소흥 시외버스 터미널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유스호스텔의 모습

유스호스텔 찾아가니 벌써 밤이다. 그래도 마파두부에 탕국물을 먹을 수 있으니 행복이다. 그만하면 이날 여행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비록 기차를 놓치기는 했지만. 다음날 소흥을 볼 것인지, 녕파를 갈 것인지는 일단 자고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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