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했던 삶’에서 ‘알아가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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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했던 삶’에서 ‘알아가는 삶’으로
  • 정진미
  • 승인 2016.04.2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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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정진미 사무차장

본지는 지난 3월 12일부터 8박 9일 간 진행된 베트남평화의료연대(이하 평연) 17기 진료단에 참가한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정진미 사무차장의 글을 게재한다. 정 사무차장은 진료단 활동과 더불어 베트남 전쟁 희생자의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베트남에 대한 긴 여운을 느끼고 돌아왔다. - 편집자-

▲베트남평화의료연대 17기 진료단

올해로 17번째 진행된 평연의 베트남 진료단에 처음 참가하게 됐다. 낯선 곳에 찾아간다는 설렘과 더불어, 베트남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치과진료를 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방진료를 하는 상황에서 보건의료인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됐던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진료단에 참가하기 전까지 일상에서 여러 고민으로 복잡했던 머리 속이, 베트남에 오면서 새로운 자극으로 맑아진 느낌도 들었다.

진료현장에서의 역할을 고민하는 와중에 도착한 베트남 다낭은 예상 밖의 쌀쌀한 날씨로 나를 당황케 했다. 또한 낯선 곳이기에 설렘도 일었다. 물론 설레는 마음은 진료단 활동을 진행하면서 금세 현실감각으로 다가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생한 일상을 살아내는 느낌이 들었달까.

다사다난했던 진료단 활동과 더불어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진료단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흔적을 더듬는 과정이었다.

베트남은 나에게 ‘베트콩’과 ‘베트남 전쟁’으로 기억되는 나라였다. 베트남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 전쟁 와중에 무분별한 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몰랐다. 때문에 평연활동 첫날, 첫 답사지인 한국군 증오비에 대한 설명부터 내게는 큰 충격이었다. 옆에 있던 통역단 학생에게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들킬까봐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했다.

한국군 증오비를 시작으로 쭈옹딘 위령비, 열사묘역, 밀라이 박물관, 학살재현공간, 퐁니 마을 위령비 참배, 그리고 당시 전쟁상황에 대한 탄 아주머니의 증언까지...답사지를 이동할 때마다 머릿속은 온통 “도대체 뭘 위해 이런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맴돌았다.

밀라이박물관 방문에서 처음 본 희생자들의 사진은 맘속에 너무나도 깊숙이 박혔다. 희생자들의 마지막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왜 그들은 죽어야만 했을까? 죽을 당시 희생자들은 그 날이 자신의 삶에서 마지막 날임을 미리 예감했을까?

그간 이런 사실들을 몰랐다는 것에 한없는 쏟아지던 죄책감은 탄 아주머니를 뵙는 순간 부끄러움과 미안함까지 더해졌다. 생각해 내기조차 싫을 기억을 연신 괜찮다고 웃으며 봉사단 단원들에게 말씀해주시는 탄 아주머니의 목소리는 가끔씩 떨렸다.

아주머니는 해설자와 맞잡고 있던 손을 한참 만지작거리고 나서야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이미 벌어져 수습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을 묵묵히 말하는 아주머니의 용기가 존경스러웠다.

아주머니의 증언을 들으면서, 평연의 활동이 그저 진료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 내가 느낀 여러 감정들, 그리고 변하지 않을 역사적 사실을 접하게 됐다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런 기억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음 평연 진료단에 참여하려 한다면 기회가 되는 대로,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일주일 동안 진료단원들과 현장을 함께 느끼고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시길.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을 증언한 탄 아주머니
▲한국군 증오비의 모습
▲진료단 활동 당시 마니또였던 정태환 선생님이 촬영한 내 모습
▲진료단 일정 도중 잠시 둘러봤던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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