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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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과 김치
  • 이주연
  • 승인 2005.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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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치의학 120년 : 역사가 보인다]

요즘 신문과 방송에는 연일 중국산 김치에 대한 기사로 가득하다. 한국인의 밥상이 세계화된 것이다. 밥과 된장국이 한국인 밥상의 주인공이 된 것은 천년(벼농사시작, 10C)이 넘는다.

삼국시대에 장젓갈·절임류가 반찬으로 정형화되었으니 김치도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 고유의 전통식이라 할 수 있다. 자고로 이러한 한국의 전통음식은 맛이 좋고 영양이 풍부하며 구강건강에도 좋았다.

먼저 김치를 살펴보자.

소금과 젓갈, 붉은 고춧가루로 버무려진 김치는 짭짤하고 화끈하면서도 곰삭은 맛이 있어 한국인들의 입맛을 돋우어왔다. 구강학 측면에서도 짠 맛은 입안을 알칼리성으로 만들고, 매운 맛은 타액분비를 촉진하는데다가 섬유질을 씹을 때 세정작용까지 하는 충치예방식품이다.

주식인 밥은 어떠한가?. 옛날에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백미, 현미, 콩, 기장, 보리, 감자 등의 위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탄수화물로 다당류인 녹말이 추출되어 충치유발세균이 대사에 직접 활용하지는 못했다.

전통식단에서 단맛을 내는 것은 야생꿀 또는 쌀이나 기장으로 만든 엿이었다. 꿀과 엿은 과당이다. 그러나 이러한 음식들은 매일 먹는 것이 아니고 왕실이나 상류층 가정에서만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전통식단에서 충치유발 세균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당류인 설탕과 유당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개항과 더불어 한국에 설탕이 정식으로 수입되기 시작했다. 개항기(1884) 인천항에 수입된 설탕의 가격(1근:20전)은 소고기(1근:8전)의 2.5배에 해당할 정도로 고가였다. 적설탕이 백설탕보다 조금 더 비쌌다. 같은 해 부산항에도 설탕 72되가 575원에 수입되었다.

수입 초기 설탕은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을 중심으로 유통되었다. 서양인들에게도 설탕은 고가품이어서 커피에 가끔 설탕을 넣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면 자신이 경제적으로 부유하며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이 시기 조선의 왕실과 부유층에서도 커피, 홍차 등 서양식 차와 위스키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특히 고종은 저녁 식사 후에 반드시 커피를 즐겼다. 호박엿을 좋아하던 고종의 커피에도 설탕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1890년대 한국의 설탕 수입량은 다소 증가한 반면 설탕가격은 1근에 12전으로 40%가량 하락(1893)했다. 당시 서울을 방문했던 비숍(1894)이 한국인 여인이 개천가에 좌판을 펼쳐놓고 외국인을 상대로 팔았다고 기록한 사탕도 설탕을 사용한 일제 사탕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한국에는 치과의사보다 충치를 유발하는 설탕이 먼저 들어왔다. 서양식 차와 다과를 즐기는 왕실을 중심으로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고, 갑오경장 시기에는 거리에서 외국인 방문객이나 어린이들을 상대로 사탕으로 유통되었다. 이러한 설탕수입은 소량이기는 했으나 꾸준히 증가하였다.(1897년 1533근, 1901년 16,800근).

이렇게 개화기에 등장한 설탕은 한국인들의 전통적인 식생활 속에 천천히 침투해 100년이 조금 지난 현재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식품(2005)으로 부상되었다.

이주연(세브란스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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