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된 생명: 극미인(極微人; homunculus)
상태바
결정된 생명: 극미인(極微人; homunculus)
  • 강신익
  • 승인 2005.10.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명공학과 줄기세포 연구의 담론구조①

▲ 파라케수스의 부적
연금술사이며 의사였던 파라켈수스(Paracelsus)는, 천년 이상 지속되어 온 고대의학의 권위적 체계를 거부하고 근대적 의미의 경험의학을 세운 16세기 유럽의 풍운아였다.

그는 몸의 건강을 체액의 균형으로 보는 고대의 담론체계를 전복하고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리적 변화를 중시했으며, 연금술사답게 동ㆍ식물뿐 아니라 광물에서도 약의 소재를 구했다. 그는 신비의 영역에 가려져 있던 생명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의 처방에 따르면, 만들어내고자 하는 동물의 뼈, 정자, 피부와 모발을 자루에 넣고 말의 분뇨로 둘러싸인 땅 속에 40일간 방치하면 작은 동물 또는 인간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해서 30센티미터밖에 안되는 극미인(極微人; homunculus)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작은 인간은 결국 주인을 배신하고 도주했다고 한다.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18세기 기센대학의 데이비드 크리스티아누스 (David Christianus)는 다음과 같은 처방을 제시하기도 했다. 검은 암탉이 낳은 계란에 작은 구멍을 뚫고 흰자를 콩 크기만큼 제거한 다음 그 부위를 사람의 정자로 채우고 처녀막으로 밀봉한다. 이것을 음력 3월 1일에 동물의 거름 속에 묻어두면 30일 후에 작은 사람이 생기는데, 이 작은 사람은 그 주인을 보호하고 도와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들에게 전 과학 시대의 자유로운 그러나 우스꽝스런 상상력의 결과로 기억될 뿐이다.

하지만 과학혁명의 시대에도 인간의 발생이란 현상은 무척 설명하기가 곤란했던 것 같다. 17∼8세기의 과학자들은 여전히 사람의 정자 속에 극미인(極微人)이 들어있고 이것이 여성의 자궁에서 어린아이로 자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토대로 인체발생의 신비를 풀기위한 '과학적' 노력은 계속되었고 니콜라스 하르트소커 (Nicolaas Hartsoeker)는 인간과 동물의 정자 속에서 작은 동물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발견의 진위를 떠나서 이러한 주장에는 치명적인 논리적 모순이 들어있다. 정자 속의 극미인(極微人)이 자라서 정상적인 사람이 된다면, 정자 속의 극미인(極微人)은 그 속에 또 다른 정자들을 갖고 있어야 하고 그 정자 속의 정자는 또 다른 정자를 그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적 무한회귀가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강신익(인제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