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춘사送春詞 봄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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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춘사送春詞 봄을 보내며
  • 송학선
  • 승인 2016.06.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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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밝 송학선의 한시산책 19] 송춘사送春詞 봄을 보내며 / 왕유王維(당唐699-761)
ⓒ 송학선

송춘사送春詞 봄을 보내며 / 왕유王維(당唐699-761)

일일인공로日日人空老 날마다 사람은 하릴없이 늙어가건만

년년춘갱귀年年春更歸 해마다 봄은 다시 돌아간다네

상환유준주相歡有尊酒 술통에 술 있으니 서로 즐기세나

불용석화비不用惜花飛 꽃 날린다고 애석해 해봐야 쓸데없다네

 
봄 전송餞送을 핑계로 동무 몇을 집으로 불러 집 사람을 귀찮게 했습니다. 그리고 송춘시送春詩 몇 수와 송춘시조送春時調 몇 수를 같이 읽었습니다. 누가 보면 호사객기好事客氣를 부린다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들 봄 꽃 볼 해가 몇 번이나 남았겠습니까?

해동가요海東歌謠를 엮은 김수장金壽長이 시조에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꽃 지자 봄이 저물고 술이 다하자 흥興이 난다 / 역려광음逆旅光陰은 백발白髮을 재촉 하는데 / 어디서 망령妄伶의 것들은 놀지 마라 하느니…

왕유王維(당唐699-761)는 자가 마힐摩詰입니다. 산시성山西省 출생이지요. 9세에 이미 시를 썼으며, 서書와 음곡音曲에도 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왕유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궁정시인의 전통을 계승한 시인이라 하여 장안長安 귀족사회에서는 칭찬이 자자하였고 존경도 받았습니다. 그의 시는 산수 · 자연의 청아한 정취를 노래한 것으로 수작秀作이 많은데, 특히 남전藍田의 별장 망천장輞川莊에서 지은 일련의 작품이 유명합니다. 맹호연孟浩然 · 위응물韋應物 ·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왕맹위유王孟韋柳로 병칭되어 당대 자연시인의 대표로 일컬어집니다. 또 그는 경건한 불교도이기도 해서, 그의 시 속에는 불교사상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특색입니다. 《왕우승집王右丞集》(28권) 등이 현존합니다.

그림은 산수화에 뛰어나, 수묵水墨을 주체로 하였는데, 금벽휘영화金碧輝映畵에도 손을 대고 있어 화풍 또한 다양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순정 ·고결한 성격의 소유자로, 탁세濁世를 멀리하고 자연을 즐기는 태도 등은 남송문인화南宋文人畵의 시조始祖로 받들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송나라의 소동파蘇東坡는 왕유를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평하였습니다. 장안長安에 있는 건축의 장벽산수화牆壁山水畵나 《창주도滄州圖》 《망천도輞川圖》 등을 그렸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확실한 유품은 전하여진 것이 없습니다.

또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이야기로 왕유는 스무 살에 실크로드를 관할하는 안서절도사에 올라 이슬람과 당나라가 맞붙은 동서양 최초의 전투 탈라스전쟁의 총사령관이었던 고선지高仙芝(?~755년) 장군의 서기書記였답니다. 고선지 장군이 싸워서 기지 못한 이는 없었다고, <왕우승집 王右丞集>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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