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노동시간 축소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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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의원 노동시간 축소부터 시작하자
  • 정형준
  • 승인 2016.07.04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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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정형준 논설위원

한국의 노동시간은 OECD 공식통계에서도 멕시코와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길다.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보다는 무려 4개월가량을 더 일하는 것으로 돼 있다. 노동시간이 긴 이유는 여러 측면을 봐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오래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낮은 임금 때문에 수당과 휴일근무를 종용 받고 있다. 여기에 인력을 조금 사용하고 잔업 및 휴일근무 등으로 노동강도만 높이는 기업문화와 사회적 분위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문제는 이러한 낮은 임금은 차치하더라도, 제대로 휴가를 쓰지 못하게 하는 기업문화는 최악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상사보다 먼저 퇴근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주말에도 단체채팅방 및 개인연락을 통해서 일을 시키는 것이 다반사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는 높은 노동강도를 유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체제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모두 제한된 노동시간을 유지하고, 합리적으로 무한경쟁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노력이 왜 없는지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간계급 전문직과 중상층 자영업자들까지 이런 무한경쟁에 노출되거나 앞장서는 상황은 여타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예를 들면 24시간 편의점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전 세계 어디에 있을 것이며, 밤에도 곳곳의 네온사인이 번쩍이며 늦은 퇴근과 잔업에 지친 노동자들을 환대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런 서비스산업의 무한경쟁이 불러일으킨 구조에서 우리의 가족들, 아이들의 노동시간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고, 우리는 저녁이 없는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특히 최근 들어서 병·의원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야간진료, 주말진료, 휴일진료가 경쟁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우선 노동자들이 그나마 아프면 병원에 간다면서 연차라도 낼 수 있는 여지마저 주말이나, 야간진료에 가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없애버릴 행위이다. 또한, 병·의원에 근무하는 수많은 병원노동자들도 잔업과 야간진료에 노출됨에 따라 노동시간을 늘리는 방향이기도 하다. 여기에 늘어난 노동시간만큼 의료진의 피로도가 증가하고, 환자안전과 진료의 질도 떨어질 여지가 있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도 병·의원 사이의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응급환자진료 및 야간진료를 요구하는 시민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응급환자진료를 제외하고 외래진료를 낮 시간에, 그것도 평일에만 하는 게 사회적 분위기라면 어떨지를 한번 생각해보자.

진료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연차를 내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을까? 주말에 병·의원을 방문하면서 피 같은 휴식시간을 환자들이 쓰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병·의원에 근무하는 병원노동자들의 토요일, 일요일의 삶이 복원되지 않겠는가?

여기에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내원일 수와 행위 수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현재의 진료패턴도 교정할 수 있고, 적정진료로 제대로 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할지 여부를 고민해 볼 수 있다.

즉 현재의 병·의원 무한경쟁을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고 야간, 주말진료와 야간검사, 수술이 계속 늘어난다면 이것은 의료계 전체의 치킨게임만 가중시킬 뿐이요. 나아가 국민들의 휴식시간을 치료시간으로 대체하고, 종국에는 노동시간까지 늘리는 효과를 동반하게 된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협회 등이 내부적인 합의라도 해서, 병·의원 개원시간을 줄이는 사회적 합의에 착수하면 어떨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사회적 40시간 노동시간 합의에 의료계는 지금까지 따라만 가고, 이를 가장 늦게 반영한 바 있다. 이제 거꾸로 의료계가 먼저 주 36시간 근무를 명문화하고 서로 합의해 지켜간다고 가정해보자. 국민의 삶의 질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치과계는 상대적으로 응급환자가 적고, 병원급 진료기관의 비중이 작다. 치과계가 합의해서 전체 개원시간을 줄이는 데 성공한다면, 이는 병·의원 전체의 노동강도를 줄이는 것은 물론, 국민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도 큰 일익을 담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가 치과계 주치의 사업 등이 연계된다면 무한경쟁의 현재 구도를 적정한 치료방향으로 가져가면서, 보상체계에 대해서도 다시 재논의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병·의원의 개원시간과 병원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사회적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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